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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 개똥 같은 카세트테이프가 다시 인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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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테이프가 요새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올해 3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코드 샵 중 하나인 도쿄의 봉주르 레코드는 '테이프/MP3 컨버터'를 내놨다. 테이프의 음원을 MP3로 바꿔주는 장치다. 에미넴이나 블링크 182등의 뮤지션들은 테이프를 내놨거나 내놓을 예정이고 해외의 유명 샵들도 카세트 매대를 들여놓는 추세다. 구글의 연관 검색어에는 카세트를 치면 'MP3 컨버터'가 자동으로 따라붙는다. 대체 왜? 대체 왜 처음부터 MP3를 다운 받으면 되는 것을 테이프를 사서 MP3로 바꾸나?

"인스타그램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검색하면 수만 건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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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Tapes(@tapeheadcity)님이 게시한 사진님,

본론부터 들어가자. '카세트테이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으면, 떠오르는 몇 가지 잔인한 말들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음원 저장 매체', '고등학생의 용돈을 노린 값싼 동정심', '불법 음원 복제의 시초'. 더 잔인하게 얘기하자면, 21세기에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겠다는 건 그냥 '힙질'이다. 음악이 뮤지션의 손과 성대에서 우리 귀에 도달하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렇다.

대체 왜 테이프를 듣느냐? 추정해보자면, 아마도 아날로그에 대한 신봉심 때문일 것이다. 녹음 저장 매체는 크게 카세트테이프, 바이닐 레코드(LP) 등의 아날로그와 CD 또는 하드디스크 등의 디지털 매체로 나뉜다. 아날로그 매체는 음원의 파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예를 들어 LP의 홈을 아주 자세히 보면 음원의 파형이 그려져 있는데 이걸 재생하면 바늘이 그 홈을 따라가면서 음의 형태를 다시 뽑아낸다.

lemonheads
얼마 전 테이프로 발매된 '포스트힙합록그룹' 불싸조의 두 번째 앨범.

테이프도 마찬가지. 그러나 CD나 MP3, 스트리밍 등의 디지털은 이 파형을 매우 유사한 디지털 정보(0 또는 1)로 바꿔 저장한다. 아주 러프하게는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디지털화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음질의 손질이 일어나는데, 그래서 아날로그 신봉자들은 디지털은 절대 아날로그를 따라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곤 최근에 나온 LP나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소리가 따뜻하다'고 말한다.

멍청한 소리다. 왜? 요새 음악은 99.999%가 아예 녹음을 디지털로 하기 때문이다. 녹음을 디지털로 했는데 아날로그 매체에 담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인가? 태블릿으로 그린 웹툰을 필름 카메라로 찍어 놓고 아날로그 느낌이 난다고 말하는 격이다.

물론 아주 오래된 바이닐 레코드라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 있다. 예전에는 '릴 투 릴'이라는 거대한 레코드 장치에 아날로그 형식으로 녹음했었다. 직경이 레코드판 만한 거대한 테이프 릴 두 개를 달아놓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실시간으로 마그네틱을 옮겨가며(초대형 카세트테이프를 생각하면 된다) 녹음하는 무식한 장치로 고등학교 기술 교과서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컴퓨터'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튼 너바나가 네버마인드를 낼 때까지만 해도 모든 뮤지션이 이 거대한 아날로그 레코더로 녹음을 했으니 아날로그로 녹음한 음원을 아날로그 매체인 LP나 카세트에 옮기는 게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나온 바이닐 레코드를 좋은 장비로 감상하면 CD와는 전혀 다른 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다만, 카세트테이프는카세트 테이프는 그런 장점마저도 없다. 왜? 카세트테이프는 예민하기가 개복치 같아서 습기나 열에 의해 손상되기도 하고, 재생하면 할수록 테이프가 늘어져 파형 사이에 잡음이 생기는 등 아주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렇게 손실되는 음질이 아날로그의 장점 따위는 상쇄하고도 남는다.

New #art for the (soon to be) studio wall!! #cassettetapes

Scott(@ascape222)님이 게시한 사진님,

그래서 정말 음질의 특성 때문에 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은 카세트테이프가 아닌 '에잇 트랙'(8 Track) 테이프를 듣는다. 에잇 트랙은 카세트가 나오기 전에 아주 잠시 시장에 등장했던 덩치 크고 휴대하기 아주 불편하지만, 음질은 훨씬 좋은 저장 방법인데, 거기까지 가진 말자. 사람이 적당히 파고들어야지 너무 가면 무서울 수 있으니까.

이렇게까지 욕을 퍼부었음에도 사람들이 테이프를 듣는 이유는 일단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디 밴드 '선결'은 몇몇 트랙을 녹음하는 과정에서 릴 테이프(녹음용 테이프 장치)를 한번 거치는 과정을 넣었다. 나는 이 밴드를 인터뷰할 때 왜 그런 헛수고를 하느냐 물었다. 어쩌면 선결 김경모의 대답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개의 악기가 쌓이면 (디지털과는) 확연하게 다른 질감을 줍니다."

특히나 테이프를 MP3로 만들면, 모든 음원이 다르다. 그러니까 같은 테이프로 내가 만든 음원과 내 친구가 만든 음원이 다르단 얘기다. 왜? 테이프에서 아날로그 정보를 읽는 헤드가, 헤드의 상태가, 오디오 케이블이, 만드는 상황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테이프라는 매체만이 갖은 매력은 생각보다 크다. 일단 모든 감상의 행위가 '연속'한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CD가 나왔을 때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점은 재생하고 싶은 곡을 '숫자'로 단번에 선택할 수 있는 '곡 선택' 기능이었다. 테이프는? 좋은 워크맨은 자동으로 음이 없는 공간(포즈라고 한다)을 찾아 다음 곡이나 다다음 곡을 검색해 주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꽤 걸리고, 대부분의 후진 워크맨은 앞으로 감기나 뒤로 감기를 눌러서 수동으로 원하는 부분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그냥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다 듣곤 했는데, 이런 '앨범' 단위의 감상 때문에 테이프 시절에 들었던 음반들은 곡의 순서가 거의 다 기억난다. 80~90년대 뮤지션들이 앨범 단위의 큰 흐름에 유독 신경을 썼던 이유도 테이프의 감상법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한 음반에 고스란히 핑거 프린트를 남길 수도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CD는 아무리 들어도 음원이 변하지 않지만, 테이프는 변한다. 자주 들은 앨범은 마그네틱이 늘어나서 원래는 4분이었던 곡이 과장 좀 보태서 4분 20초쯤이 되어버리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자연히 테이프가 늘어나면 음높이도 낮아지는데, 간혹 리본이 카세트 플레이어에 끼어서 심하게 늘어난 경우엔 '강'이라는 발음이 '그아앙'으로 들리는 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친구에게 빌려준 테이프를 돌려받을 때 "너도 '루징 마이 릴리전'을 제일 많이 들었나 보더라. 그 부분만 테이프가 늘어났던데?"라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취향을 주고받는 쪽지, 내지는 편지랄까? 시간이 지난 후에 예전에 들었던 테이프를 재생하면서 늘어진 소리가 나오면 '그만큼 내가 이 앨범을 사랑했구나'라는 들기도 했는데, 그런 게 다 정말 소중한 기쁨이었다. 만든 사람들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 작은 매력들에 더해 '21세기에 워크맨'이라는 행위의 희귀성을 생각하면, 테이프의 음질 따위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다만, 에잇 트랙은 절대 아니다. 너무 멀리 가지 말 것.

*이 글은 마리 클레르 코리아 8월 호에 기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