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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내일 - 책 '미래중독자'와 영화 '영웅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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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이 미래를 말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에 즈음하여 인간이라는 주체를 스스로 돌아보는 일은 트렌드(trend)이자 패션(fashion)이 되었다. 공학자나 개발자(프로그래머)가 보는 인간, 철학자가 보는 인간, 경제학자나 사회학자가 보는 인간은 같은 듯 싶지만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생물학자가 보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떨까. '종의 진화'라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공지능을 복제(replicant)가 아닌 인간의 진화(evolution)라고 볼 수 있을까. 계몽사상 이후로 여전히, 꾸준히, 인간은 인간에게 관심사다.

'미래중독자(The Invention of tomorrow)'의 저자 '다니엘 S. 밀로'는 철학자이고 역사학자다. 여러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정리해 볼 때, "호모 사피엔스보다 150만 년이나 앞서서 탈 아프리카 작전을 감행한 호모 에렉투스는 '어째서 광대하며 풍부한 자원을 간직한 대륙 아프리카를 떠났는가?'(145)" 저자는, 인간은 왜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이주하였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자연선택되고 진화되었는가,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던지며 포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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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생물학적 배경지식들과 인용, 은유를 쉴 새없이 나열하여 종횡무진 설명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인간만이 미래를 말할 수 있다. 생물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종의 기원'이라는 생물학의 금과옥조를 사용하여 자유분방한 지적 폭주를 펼친다. 이미 손녀가 있는 나이의 노학자가 평생 읽었던 여러 문헌의 소재들이 저자 만의 생각방식과 묘사순서로 꿰어지고 나열되어 있다.

"생물학에서 모든 것은 다윈에서 시작해서 다윈으로 끝난다. 생물학을 창시한 아버지로서 다윈은 자연의 과정은 점진적이며 축적되는 성질을 지닌다고 장담한다.(142)", "다윈은 '종의 기원'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판본, 그러니까 1872년판에서야 '진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243)" 인간은 동물과 무엇이 다른가. 일단 개체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70억의 호모 사피엔스는 "20억 마리의 돼지, 15억 마리의 소, 12억 마리의 양, 5억 마리의 개, 5억 마리의 고양이, 6,000만 마리의 말에 비해 증식 분야에 있어서는 단연 챔피언이다.(102)" 양은 곧 질이 된다. "개체수가 많을 수록 유전자가 다채로우며 다양해진다. 유전자의 다양성이 크면 클수록, 가령 갑작스럽게 기온이 내려간다거나 공격적인 다른 종의 출현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그 집단이 사용할 수 있는 해결책의 수도 늘어난다.(105) "

그들에게 '더 나은 내일'이란 무엇이었을까?

책 '미래중독자'의 저자는 초반부에서 동물이라는 범주 속의 인간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인간은 웃고 우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만이 생긴 모습 그대로의 사물과 그것이 어떠해야 한다는 관념으로서의 사물 사이의 커다란 간극에 놀라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영국 출신 작가 윌리엄 해즐릿이 말했다. 그런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 속으로 자신을 투사해야 한다.(93)" 헛.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라는 표현이 질끈 눈에 밟혔다. 아련한 기억 속의 익숙한 표현이다. 사전 뜻 그대로, 나츠카시이(懐かし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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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이 난무하는 의리의 강호는 현대에 이르러 총으로 대체되면서 '느와르'라는 영화 장르를 만들어 냈다. 성냥개비, 담배, 롱코트, 총신이 뿜어내는 화약 연기. 우리의 청춘 기억에 이런 소품들을 각인시킨, 오우삼 감독의 이른바 홍콩영화 '영웅본색(영어 제목 : A better tomorrow)'은 이후로도 여러 후편들이 시리즈로 나왔다. 1편에서는, 등장인물 송자호(적룡)는 과거 암흑 조직의 전직 보스로서 출소 이후 새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마크 리(주윤발)는 송자호와 의형제로서 다시 한 번 조직의 우두머리로서의 미래를 꿈꾸며 재기를 계획하고 있다. 송자걸(장국영)은 과거에 자신이 자랑스러워했던 형이 실은 어둠의 세계인물이라는 점을 알고 크게 실망하여 자기 손으로 체포하리라 다짐하고 있다.

처음 영화포스터에서 영어 원제를 보았을 때, 생뚱맞은 느낌이었다. 'True color of hero'와 'A better tomorrow'가 어떻게 동일한 작품의 영문명일 수 있단 말인가. 성냥개비 물고 주윤발을 흉내내던 철없던 시절을 벗어나 생각해 보면, 주요 인물들은 과거와 현재가 아주 대비되고 있다. 암흑조직과 관련된 삶을 흑, 그 반대의 삶을 백이라고 보았을 때, 송자호의 과거는 흑, 현재는 백이다. 주윤발의 과거와 현재는 흑, 흑이다. 장국영의 심정은 과거는 백, 현재는 흑이다.

자 그렇다면, 이 인물들의 미래는 흑이 될까, 아니면 백이 될까. 프리퀄(prequel)과 시퀄(sequel)이 고루 만들어지는 영화는 아마추어 관객 자신이 예측하고 상상하는 과거, 미래를 프로인 감독의 경지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그런데, 예측해 보고 또 비교해 보는 재미는 영화뿐 아니다. 책은 더 재밌다. 관객이 영화의 주요 장면을 복기할 때는 대개 감독의 의도대로 비슷하다. 그러나, 책은 독자마다 밑줄 긋는 부분의 편차가 더 크고 다양하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과정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몇 가지 점을 짚어 생각을 잠시 하고 난 후에 책을 펼친다면, 훨씬 풍성한 독서를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경로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는가. 저자의 팬인가, 신뢰할만한 누군가의 추천인가. 표지디자인이나 출판사의 홍보 카피문구가 인상적이었는가. 책을 손에서 쥐고 있는 동안 온전히 집중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는가. 여차하면, 읽은 후 독서후기를 짧게나마 메모할 호의는 지니고 있는가. 외국서적을 번역한 것이라면, 원서 제목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살펴본다. 직역인가 의역인가. 아니면 번안이라고 부를만큼 달라졌는가. 한글판 다른 제목은 번역이라기 보다는 해당 외서의 한국적 정체성을 만드는 - 책의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 '새로운 창조'라 볼 수 있다.

그 다음에는, 머리말을 읽는다. 그리고 제목에서 느꼈던 저자의 의도가 머리말을 읽은 후에도 유효한지 비교해 본다. 초점이 다르다면, 본문을 읽을 때 유심히 속도조절을 하면서 숙독해야 한다. 재독, 삼독할 시간 여유가 없다면, 저자의 머리말 이후에는 책 말미에 있는 옮긴이의 말을 본문보다 먼저 읽는다. 역자의 변은 해당 외서의 국내 1호 독자의 독서후기에 해당한다. 책을 구입했을 때 내가 예측했던 책의 주제나 전개방식이 전혀 다른지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는지, 저자의 머리말과 역자 후기가 공통분모가 있는지 등을 비교하는 것이 포인트다. 그리고 이제 목차를 훑어본다. 빠른 속도로 훑어진다면, 본문을 읽을 때도 급격한 장면전환이나 논리비약없이 술술 읽힐게다. 목차 훑는 속도가 스타카토로 끊김이 생긴다면, 본문을 읽을 때도 저자의 논리적 변덕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한다.

머리말을 한 번 읽는다면 옮긴이의 말은 두 번 읽는다. 처음은 옮긴이의 생각을 들으려 읽는다. 두 번째는 옮긴이의 프레임이 담긴 번역 속에서 나는 얼마나 다른 생각을 했었는지를 확인하고 그 차이를 음미하기 위해서다. 원저자는 왜 이 제목을 붙였을까, 번역자 내지 편집자는 왜 이 제목으로 한글제목을 달리 붙였을까. 나에게 책 제목을 붙여보라면, 나는 뭐라고 붙일까. 원제를 살리고 부제를 붙이는 편이 낫지는 않을까 등등.

사람에게 호, 자, 아명, 애칭, 예명 등 여러 명칭이 병존할 수 있듯, 책도 그럴 수 있다. 무협소설의 현대판 버전으로만 느껴졌던 청춘시기에는 영화 '영웅본색'의 제목에 '영웅'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편이 나았다는 점에만 집중했다. 우와, 주인공 멋있다 정도의 가슴벅참과 들뜸이 있었다. 철 든 이후에는 '내가 만약 저런 과거와 현재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미래를 계획하고 결정했을까'를 차분히 되씹어 고민하게 되었다. '(각자의 지향점이 전혀 다를, 해석하는 이 저마다 의미부여의) 더 나은 내일'이라는 영어제목이 더 생각의 폭이 넓어져 적확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미래를 '발명'했다

태아의 뇌가 충분히 발육되기 위해서는 자궁 내부에서 임신이 21개월동안 지속되어야 한다는 계산 결과가 있다. 그런데 여성의 골반과 자궁경관은 7개월이 된 태아 크기에 맞도록 형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서로가 만족하기 위해서 산모와 태아는 기대치를 내려잡아야 했다. 임신 9개월 후 힘든 진통을 거쳐 출산하면서 양쪽 모두 높은 사망률을 감수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그러므로 임신 9개월과 생후 12개월이 합쳐진 21개월째, 즉 뇌의 충분한 발달이 이루어지는 최적의 출생기 무렵에야 우리 인간을 특정짓는 중요한 변별적 표시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169)"

21개월 이후로 더 다양해지는 경우에는 이를 구별되는 존재로 한정짓고 특정하기 위해서, 예외적인 것을 평범한 것의 상징으로 삼을 수 밖에 없다. "보스턴의 교살범은 평생 다 합해서 몇 시간이나 목을 졸랐을까? 어림잡아 10시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일생에서 아주 짧은 기간에 해당되는 이 행위때문에 그는 유명해졌다. 재미삼아 매춘부의 배를 가른 잭 더 리퍼도 연쇄살인을 저지른 시간은 고작 몇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158)"

저자의 말에 의하면, 결국 인간은 동물의 차이는 '내일 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미래'에 있다. 동물은 미래(를 알 수)가 없기에 '미래'를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미래를 '발명'한 것이다. 인간은 미래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여러 중요 키워드 중 하나는 '내일 보자'이다. 과거의 예외적인 것으로 현재를 표상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묻는다. 미래는 현재와 같을지, '더 나은 내일'일지. 그리고, 말한다. 내일 보자.

생물 - 동물 - 영장류 - 인간 - 나. 저자의 관심사는 점점 더 줌인되고 정교해진다. 나를 아는 것이 인간을 아는 것이고 인간을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 된다. "벌써 여러 해째 나는 나 자신만을 사색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나 자신만을 제어하고 연구한다. 내가 다른 것을 공부한다면, 갑자기 그것을 나 자신에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 자신 안에 유숙시키기 위해서다. 몽테뉴, 수상록, 2장 6.(154)" 저자는 몽테뉴의 수상록의 한 구절을 발췌 인용하면서, "나에게서 시작하는 진화론"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이 책의 시퀄이 나온다면, 이 지점에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에 그 후속 책에 관하여 누군가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때, 나는 또 다른 괄목상대할만한 제목을 제시할 수 있을까. 더 진화해 있을, 더 나은 어느 내일의 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