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상순 Headshot

레플리컨트와 늑대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the

-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와 책 '철학자와 늑대' 동시후기

1.

연극 무대 위의 배우들은 자신의 대사를 읊으며 연기를 하고 관객들은 이에 몰입한다. 무대 위의 배우와 객석의 관객은 무대를 기준선으로 한 물리적 공간 속에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듯 서로를 대한다. 하지만 가끔은 방백(傍白)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두 차원이 얽힌다. 연극은 이런 컨벤션(convention, 합의 또는 약속) 위에서 존재한다. 배우 일부와 관객은 그 대사를 공유하지만, 다른 배우는 그 대사를 못 듣는(척 한)다.

영화에서는 그 기준선이 연극보다 훨씬 더 분명하다. 관객이 개입할 여지는 더 적거나 없다. 완결된 형태로 감독이 만들어낸 심상(image)들을 관객에게 방해받지 않고 통째로 주입시킬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도도히 흘러가는 스태프롤(staff roll)을 보면서 스토리를 곰곰히 복기하고 분석하는 것은 오로지 관객의 역량에 달렸다. 원작의 존재, 제작과정, 감독의 스타일 등에 관한 배경지식이 풍부하다면 그만큼 분석의 외연이 넓어지고 감동의 질도 깊어진다.

영화나 책 밖에서 제작자들끼리나 저자들끼리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감동을 받은 영화에 대하여 그 영화 속 의미를 분석하고 영화감독의 의중을 논증하는 책을 작가가 서술하는 방법이다. 그 역으로, 감독이 책의 스토리를 토대로 영화를 제작하거나, 제작시 참고한 중요 서적의 저자에 대한 오마쥬(homage)를 영화 속에 삽입하는 방법 등이다.

the

2.

2017년 10월 극장개봉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필립 K. 딕의 소설에 기반한 SF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 1992, 2007)의 후속작이다. 전편(前篇)의 주인공인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속편인 이번 작품에서도 후반 부분쯤 등장한다. 복제인간을 의미하는 '레플리컨트(replicant)'와 인간과의 관계를 다룬, 그리하여 다시 인간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이 명작은 SF영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고전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예전 작품인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와 '컨택트'(arrival)에서 느껴졌던 특유의 답답한 듯 중후한 화면 몰입감은 2049년의 LA가 배경인 속편을 훨씬 더 설득력있게 만들었다. 전편에는 종이접기 유니콘(unicorn)이 상징적인 소품으로 등장하더니 이번엔 목각 말(horse)인가. 전편에서는 펫(pet)이 부엉이(owl)더니 이번에는 개(dog)로 바뀌었네. 요모조모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담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도 더 깊어지고 확장된 듯 보인다. 30여 년간의 전편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분석과 감상이 후편의 스토리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역시 잘 만든 오리지널은 끝없는 파생과 후속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전편이 삶과 죽음의 문제, 그 주체로서의 자아에 관한 철학적 의미들을 두루 건드렸다면, 후편은 연장선 상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싶다. '관계'에 의해 위치 지워지고 비로소 특징을 갖게 되는 자아를 다루고 있다.

4년이라는 한시적 폐기시한을 가진 전편의 레플리컨트들은 살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로이 배티(룻거 하우어)의 명 대사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Time to die."(모든 이런 순간들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겠지. 빗 속의 눈물처럼 말이야. 이제 죽을 시간이야)는 이 영화의 주제에 해당한다 볼 수 있다. 그는 레플리컨트로서 용도폐기(retirement)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망(die)함을 부르짖고 있다. 한편, 후편의 명대사를 꼽으라면 나는 'Who am I to you'(나는 너에게 누구인가)를 고르겠다. '내가 누군인가'는 '내가 누구와 있는가', '그가 나를 무엇으로 위치지우고 관계맺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전편이 주인공 데커드가 인간인지 레플리컨트인지 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후편은 주인공 케이(라이언 고슬링)가 그의 아들인지 아닌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관객들은 각자의 시각에 따라 여전히 갑론을박 중이다). 식욕-성욕-명예욕으로의 각 발전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관계가 확장되는 것과 관계가 깊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가. 나는 이 사회에 어떤 존재인가.

속편인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편에 비해 현실세계에서는 30여년, 영화 속에서는 30년의 시간차가 있다. 그 시간의 흐름을 어떤 관점에서 감독 - 각본, 음악, CG, 소품 등을 포함해서 -이 어떻게 표현하려 애썼는지를 쉴 새 없이 생각하면서, 정신없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는 러닝타임을 보냈다.

the

3.

마크 롤랜즈(Mark Rowlands)는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 철학 교수다. 공상과학영화 속 주제와 소재를 통해 철학적 의문을 던지고 이를 설명하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 유명해졌다. 히트작 'SF철학'(Sci-Phi:Philosophy from Socrates to Schwarzenegger, 2003)은 후에 한 챕터를 더 추가하여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The Philosopher at the End of Universe)로 제목을 바꾸어 증보판이 나왔다. 이 책의 제10장에서 '블레이드 러너 : 죽음과 삶의 의미'라는 제목과 함께, 저자가 이 영화에 대한 철학적 설명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자신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11년간 '브레닌'이라는 이름을 가진 늑대를 키우면서 느꼈던 철학적 사유(思惟)를 기록한 '철학자와 늑대'(The Philosopher and the wolf, 2008) 등 여러 책을 썼다.

늑대와 개는 매우 다른 환경을 각각 체화해 온 탓에, 비슷한 듯 보이지만 서로 다르다. 저자는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과 늑대와 개의 다른 점을 설명하고 분석하고 논증하고 있다. 개보다 더 자연상태에 가까운 늑대를 키우면서 역설적으로 인간이 동물과 왜 다른지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다. 그 중 특히, 늑대와 개의 차이에 관한 여러 설명 중 가장 인상적이어서 밑줄을 그었던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개들의 경우 아무리 세련되고 효율적이라 해도, 빠르게 걸을 때는 발이 수직 방향으로도 움직인다. 발이 앞으로 나아갈 때 미세하게나마 위아래로도 움직인다. 그리고 이런 발의 움직임은 어깨와 등에도 전달된다. 자세히 보면 개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어깨가 들썩이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늑대는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발목과 두툼한 발에서 얻는다. 그 결과 다리의 움직임이 훨씬 적으며, 다리는 곧게 뻗은 채로 앞뒤로만 움직이지 위 아래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빨리 걸을 때에도 어깨와 등은 움직임 없이 꼿꼿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공중에 약 2~5cm 정도 떠 있는 것 같았다."

인간과 동물은 차이가 있다. 늑대와 개는 차이가 있다. 늑대를 키우는 인간과 개를 키우는 인간은 차이가 있다. 인간과 레플리컨트는 차이가 있다. 개를 키우는 레플리컨트와 개를 키우지 않는 인간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개를 키우는 레플리컨트와 개를 키우지 않는 레플리컨트는 차이가 있다. 위 영화의 절정 부분의 시작이라 할, 전편의 주인공과 후편의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둘만 있는 건 아니다. 데커드가 키우는 개 한 마리가 등장한다. 은둔의 시간동안 위스키로 추억을 반추하던 데커드는 그의 개를 위해 바닥에 위스키를 두어 잔 분량 쏟는다. 어디선가 개는 달려와 그 위스키를 핥아 마신다. 데커드가 키운 동물이 토끼였다면, 독수리였다면, 거북이였다면, 혹은 늑대였다면 어땠을까. 왜 하필 그 동물일까 하며 더 눈여겨 보았겠지.

the

4.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와 책 '철학자와 늑대'의 동시 후기를 쓸 생각을 한 것은 실은 이 영화의 엔딩크레디트(ending credits)때문이다. 수많은 참여자들의 이름이 열거되고 슬슬 지겨움의 끝이 보일 때쯤, 'AHA 인증' 문구가 등장했다. "No animal were harmed." 어떤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아메리칸 휴메인 어소시에이션(American Humane Association, 이하 AHA) 이라는 아동 및 동물 보호 자선단체에 의한 "No Animals Were Harmed®" 인증은 영화 촬영 과정에서 동물학대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정보를 관객에게 자막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아무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다고? 아까 개가 위스키를 핥아 먹었었는데? 인터넷 검색 창에 '개에게 술을 먹여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입력한다면, 이구동성의 검색 결과가 나올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술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가벼운 무게를 가진 개에게, 당연히, 해롭다.

엔딩크레디트의 끝 부분에서 본 'AHA 인증' 문구는 나를 영화 속 스토리의 흐름에서 흠칫 빠져 나오게 만들었다. 인증 문구에 비추어, 영화 속 개는 위스키를 핥아 먹지 않았다. 실은 배우들이 위스키를 마신 것이 아닌 탓일 게다. 배우들은 위스키를 마시지 않으면서 마시는 척 연기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배우는 관객들을 기만했던 것일까. 연극의 방백처럼 영화 엔딩크레디트의 'AHA 인증' 문구는 관객들에게 '술을 마시지 않은 배우의 술 마신 듯한 연기를 음미해 보세요'하고 넌지시 속삭이는 것은 아닐까. 내게 그 문구는 '영화의 방백'으로 들렸다.

그 방백을 듣고 흠칫 하던 순간에, 나는 시선은 여전히 화면에 둔 채로 머리 속으로 상상을 했다. 장기간의 공백 끝에 명작으로 칭송되는 영화의 속편을 제작해야 하는 이의 심사숙고와 부담과 고민을 상상했다. 각본을 쓰면서 얼마나 많은, 전편 이후의 독자들의 반응을 묻고 또 들었을까. 철학적 상징장치들이 잔뜩 버무려진 전편이었던지라, 이 장치들을 속편에서 반영하고 승화시키기 위하여 숱한 문헌을 읽었겠지. 나의 상상은 빠른 속도로 계속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SF영화 속 철학적 생각거리에 관한 철학교수의 'SF철학'이라는 유명한 책을 당연히 읽었겠지. 그리고 그 책에 등장하는 '블레이드 러너' 챕터의 분석과 사유에 일부 수긍하면서 고개를 끄덕였겠지. 그리고 그 철학교수의 다른 책들도 읽었겠지. 비슷한 듯 보이는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고민하던 터라, 비슷한 듯 보이는 늑대와 개의 차이를 쓴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도 당연히 연달아 흥미 있게 읽었을 테지. 전편보다 주제를 확장시키는데 영감을 준 이 책에 대하여, 맥거핀(MacGuffin)의 형태로든 아니면 직설적 비중을 두어서든, 그 오마주를 담고 싶었겠지.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엔딩크레디트의 'AHA 인증' 문구는 '전편에 대한 훌륭한 철학적 분석을 한 책을 잘 읽었습니다. 속편 제작에 참고할 귀한 인사이트를 얻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크 롤랜즈 교수의 브레닌 대신에, 전편의 올빼미 자리에 개를 넣었습니다'라는 방백으로 내게 들렸다.

영화 속의 배우와 객석의 관객은 스크린을 기준선으로 하여 다른 물리적 공간 속에서 존재할 뿐 아니라, 각본 촬영 편집 당시와 관람 당시의 다른 시간대 속에서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와 책 '철학자와 늑대'를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서 동시에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십 수 년의 시간이 흘러 나의 레플리컨트인 꼬마 아들들이 자라서, 여전히 명작일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아빠가 쓴 이 후기를 인터넷에서 찾아 읽으며, 시간을 거슬러 2017년의 아빠를 만나는 '행운'을 갖기를 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