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상순 Headshot

국민적 군중상징 - 산, 불, 바람

게시됨: 업데이트됨:
1
뉴스1
인쇄

1.

2016. 10. 20. 스위스 연방 통신위원회(ComCom)와 연방통신국(OFCOM)은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를 방문하였다. 세계 여러 나라의 방송통신 규제 당국의 수장들이 과천정부청사 내의 방송통신위원회를 가끔 방문하는데, 양 국의 규제 철학과 나아갈 방향, 향후의 협력 방안들에 관한 대화가 주로 이어진다. 회담장에 배석하다 보면, 방문자 개인의 개성 이외에도 방문국의 국민성 혹은 민족성이 느껴질 때가 많다. 마크 푸러(Marc Furer) 스위스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당시 회담에서 첫 인사말을 이렇게 건넸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스위스와 한국은 산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 (후략)"]

나는 이 인사말을 듣고, 여러 국민의 군중상징에 관하여, 엘리아스 카네티(E. Canetti)가 자신의 저서 '군중과 권력'(Masse und Macht)에서 서술한 부분이 떠올랐다.

[한 국민의 모든 성원은 항상 자기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된 특정 상징과의 뗄 수 없는 관련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느 순간 필요할 때마다 그 상징이 정기적으로 나타나는 데서 국민 감정의 영속성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한 국민의 자의식은 그 상징이 변할 때 바로 그때라야만 변한다. 그것은 생각보다는 잘 변하는 편이다. 바로 그런 사실이 인류가 계속 존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이나마 계속 갖게 해준다.]

카네티는 스위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위스인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군중 상징은 산이다. ~ (중략) ~ 지난 두 차례의 대전을 치르는 동안 스위스인들이 세운 방위 계획은 기이하게도 국가와 알프스 산맥을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모든 농경지, 모든 도시와 모든 생산 중심지들은 방어하지 않은 채 포기하고 군대는 산으로 철수하여 그곳에서만 싸운다는 것이었다. 국민과 국토는 희생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스위스는 산 속에 있는 군대가 대표하리라는 것이었다. 이 국민의 군중 상징은 국토 자체이다.]

스위스 연방통신위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나는 '그렇구나. 카네티의 분석대로 스위스 인들은 정말로 산이라는 상징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카네티는 위 책에서, 비록 그 구성원이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도 군중처럼 느껴지는 '집합적 단위'들에 대해 '군중상징'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군중상징으로서의 '불'과 '바람'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전략) ~ 불은 어디서 발생하든 동일하다. 불은 신속하게 번져간다. 불은 전염성이 강하고 만족할 줄을 모른다. 불은 어디서나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불은 중첩적이다. 불은 파괴적이다. 불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또 그렇게 취급된다. ~ (중략) ~ 이번에는 군중의 속성을 설명해 보자. 군중은 어디서나 동일하다. 군중은 어떤 시대, 어떤 문화권에서든 그 구성원들의 교육 정도와 출신 및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일단 형성된 군중은 무시무시한 격렬성을 가지고 성장한다. 군중의 전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군중은 언제까지고 계속 성장하기를 바란다. 군중에게 성장의 내적 한계란 있을 수 없다. 군중의 자생력과 돌발성은 무서울 정도이다. 군중은 구성이 다양하지만 그러나 응집력이 있다. 군중은 파괴적일 수 있다. ~ (중략) ~ 군중과 불은 서로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상호 치환이 가능할 정도다. 불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는 군중 상징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변화무쌍한 것이다.~ (후략)]

[~(전략) ~ 바람은 그 불가시성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군중의 상징으로 쓰인다. ~ (중략) ~ '깃발'은 가시화된 바람이다. 그것은 잘리어져 나온 구름 조각과 같다. 깃발은 구름보다 가까이에서, 더 다양한 색채를 띠고, 주어진 도형을 영원히 유지하며 줄에 매여 휘날린다. 깃발이 진정으로 사람의 눈을 끄는 것은 그것이 휘날릴 때이다. 사람들은 마치 깃발이 바람을 구획지워 줄 수 있는 것처럼 국기를 게양함으로써 자기 나라의 영공을 표시한다.~ (후략)]

3.

2016년 11월경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블로그에 게재된, 프랑스에 사는 어느 한국인 부부의 이민 생활에 관한, '프랑스 이민 7년, 이 부부가 사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그 글 중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아래의 부분이다.

[(전략) ~ (프랑스의) 아이들이 어릴 때 전반적으로 얌전해요. 그러다가 중학교 교과과정에 포함된 자기 권리, 자율성을 배우고 나면 격렬히 저항하기 시작하죠. 그때는 누가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아요. ~ (후략)~ ]

이 부분에서 눈길이 멎으며, 카네티의 위 책에서 프랑스의 국민적 군중상징으로 '대혁명'을 꼽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참고로 카네티는 독일의 국민적 군중상징으로 '숲'을 꼽고 있다).

[~ (전략) ~ 대혁명을 이처럼 프랑스인들의 국민적 군중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에 몇 가지 이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징은 영국인 선장이 배를 타고 있다는 구체성도, 진군 중인 독일군의 숲과 같은 질서도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막연한 것이다. 영국인의 배에는 파도치는 바다가 따르고, 독일의 군대에는 물결치는 숲이 따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상징들이 그들의 감정을 살찌게 하고 그 감정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대혁명의 군중 감정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운동과 대상 속에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다. ~ (후략)~ ]

[영국인은 가장 안정된 국민감정을 보유하고 있는데, ~ (중략) ~ 영국인은 자신을 자신의 주위와 발밑이 바다로 둘러싸인 채 소집단의 사람을 배에 태우고 있는 선장으로 생각한다.]

4.

2016년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한 이후, 매일 끊임없이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 집회와 특검 관련 소식도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TV뉴스의 화면은 '촛불'과 '태극기'를 나란히 배치하면서 도심의 풍경을 전한다. 탄핵심판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하여, 그 이후에 일어날 분열이 더 염려된다는 이야기들을 주위에서 많이 듣는다. 최근의 여러 기사나 칼럼 등에서도 그런 우려를 느낄 수 있다. 한편, 앞으로는 매 정권마다 촛불이 등장하는 것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인지,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특정 진영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이 타당한지 등에 대한 토론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촛불이 가지고 있는 '불'의 상징과, 태극기 휘날리는 '바람'의 상징은 일종의 천적관계다. 그래서, 불과 바람으로 국민을 비유하고 대립시키는 일은 융화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 우리 국토의 수많은 산들이 나무와 숲을 품고 있다. 그 나무들은 싹, 줄기, 가지, 나무, 낙엽, 단풍, 숯, 재 등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 변환을 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무쌍한 계절의 변화를 가진 국가로서 이러한 태세변환이 유연하여 포용할 수 있는 것이 국가 상징의 키워드(keyword)로 부각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분열이 잘 봉합되고 치유되어, 불과 바람이 공존할 수 있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산'으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

앞의 카네티의 말을 다시 한 번 옮겨 천천히 읊으며, 시간의 흐름에 희망을 싣는다.

[한 국민의 모든 성원은 항상 자기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된 특정 상징과의 뗄 수 없는 관련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느 순간 필요할 때마다 그 상징이 정기적으로 나타나는 데서 국민 감정의 영속성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한 국민의 자의식은 그 상징이 변할 때 바로 그때라야만 변한다. 그것은 생각보다는 잘 변하는 편이다. 바로 그런 사실이 인류가 계속 존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이나마 계속 갖게 해준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