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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불황'까지 만들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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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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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늦가을은 낙엽 하나 바라볼 여유도 허용치 않았다. 충격적이고도 뜨거웠다. 그간 찌라시보다 못한 헛소문으로 치부되었던 일들이 하나둘씩 사실로 밝혀지면서 광화문의 촛불도 거세어졌다. 판타지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은 실제로 존재하고, 더 나아가 "시크릿 가든"이라는 공간도 실재하여 "길라임"이 즐겨 찾았다고 하니, 우리가 사는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지를 서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은밀한 공간은 이제 서서히 해체되고 있다. 하지만 해체되는 곳은 음습한 권력만이 아니다. 시민의 일상도 무너지고, 먹고 사는 일에도 균열이 생기고, 급기야 경제에도 그림자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주변부터 살펴보자. 얼마 전에 OECD가 발표한 경제동향 분석을 보자면, 세계경제의 먹구름은 여전하며, 더 어두워 질 위험도 크다. 작년에는 3.1% 성장했는데, 올해는 2.9%로 내려 앉을 것으로 보았다. 올 초만 하더라도 OECD는 3.3%를 자신 있게 예상했으니, 왕창 틀렸다. 이젠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지만, "내년부터는 경기 회복 조짐"이라는 낙관은 다시 한번 "역시나"로 끝난 모양이다.

물론 이번에도 고장난 자명종처럼, 내년 2017년부터는 3.3%로 회복하고 급기야 2018년에는 무려 3.6%로 올라선다고 전망했다. 믿는 이는 많지 않다. 번번이 틀리는 경제전망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수백명의 경제학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도 매번 오답만 낼 만큼 세계경제 상황이 엄중하다는 것이다.


한 달 사이에 '조심스러운 낙관'에서 '명백한 비관'으로 대전환한 셈이다.


한국이 이런 세계경제의 우울을 피할 방법은 없다. 올해에는 2% 중후반 대의 경제성장을 예측하는 이들이 많았다. 너무 짜게 잡는다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자칫하면 섣부른 희망가가 될 조짐이 크다. 청와대에서 시작된 불확실성이 경제와 서민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현재로서는 조심스러운 짐작만 할 뿐이다.

경제는 크게 보자면, 소비, 투자, 수출입, 그리고 정부지출의 합이다. 각종 정부통계에 기록된 10월과 11월의 경제는 이렇다. 먼저, 소비를 보자.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는 10월과 11월 사이에 101.9에서 무려 6.1포인트가 떨어져 95.8을 기록했다. 낙폭이 전례 없이 크다. 지수가 100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경제상황을 비관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한 달 사이에 '조심스러운 낙관'에서 '명백한 비관'으로 대전환한 셈이다. 향후 경기 전망도 최악에 가깝고, 취업기회 전망도 어둡기는 매한가지다.

소비자의 비관은 청와대를 배경으로 한 귀곡산장을 보고 우울해진 심사 때문이 아니다. 집안 살림을 보자면 낙관의 이유는 전혀 없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3/4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가구당 평균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0.7% 증가하는 데 그쳤는데, 그마나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실질소득은 0.1% 줄었다. 찜통이었던 여름철 한전의 '무더운' 전기료 정책 때문에 주거용연료비 지출이 대폭 늘어난 탓도 크지만, 실질소득 감소는 1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현상이다. 3/4분기는 9월까지다. 따라서, 대통령의 퇴진 요구가 높아질수록 소비자 심리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던 10월 이후의 상황은 예측마저 두려워진다. 명목소득마저 내리막길 신세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업률은 계속 오르막이고, 특히 청년실업률은 전년 동월 대비 최고 기록을 경신 중이다.



노동시장은 이제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길라임 대통령이 야심 차게 내세웠던 고용률 70%를 이제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다. 당장 실업률 증가를 막기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10월 고용통계"를 보면, 실업률은 계속 오르막이고, 특히 청년실업률은 전년 동월 대비 최고 기록을 경신 중이다. 실업률이 최고점에 달하는 겨울에는 11%로 훌쩍 넘어설 수도 있다. 노동연구원은 아예 내년 실업률이 15년 만에 초고치에 달할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그럴 만도 하다.

일자리의 질도 걱정거리다. '관리자'와 같이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는 없어지고, 그 자리를 '서비스 종사자'가 메꾼다. 또 다른 신기록은 시간제 일자리, 또는 파트 타임이다. 정부의 '열렬한' 정책 덕분에 시간제 일자리는 꾸준하게 늘어나서 고용창출의 '주요동력'이 되었다. '서비스 종사자'가 늘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난 10월에는 주로 17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시간제 일자리가 6% 이상 늘었다. 그리고, 그간 추춤했던 자영업자 숫자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모든 지표가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국내소비에는 더 비빌 언덕이 없다. 그러면 밖으로 눈을 돌려 수출은 어떠한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10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 따르면, 수출과 수입 모두 하락 중이다. 수출지수를 물량으로 보든 금액으로 보든 간에 모두 5% 이상 하락했다. 덕분에 10월에는 98.3억 달러에 달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했다고 한다. 전향적인 "불황형 국제수지 흑자"다. 그리고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형성된 정치경제적 여건 때문에 수출 전선은 도처에 빨간불이다. 국제무역기구 (WTO) 앞 삼거리에 있는 붉은 신호등은 요즘 유난히 짙고 우울하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그야마로 '시계 제로'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으니, 기업이 투자할 유인이 더욱 없다.


그런 상황에서 투자 확대는 난망이다. 가계도 어렵고, 수출도 답답하니, 기업이 투자를 늘려 물건을 만들어도 판로가 만만치 않다. '구중궁궐의 여인'에서 파생된 정치적 불확실성은 그야마로 '시계 제로'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으니, 기업이 투자할 유인이 더욱 없다. 한국은행의 "2016년 11월 기업경기실사지수와 경제심리지수"에 따르면, 기업이 경영애로 사항으로 제일 먼저 꼽는 것은 "내수 부진"이고, 그 뒤가 "불확실한 경제상황"이었다. 그동안 정부가 호들갑에 가까울 정도로 강조했던 "인력난, 인건비 상승"이나 "정부규제"는 뒷전에 밀려나 있다.

그리고 '경제합리성'보다는 '정치은밀성'에 기대어 투자와 성장의 기회를 찾아왔던 기업들은 지금 국민 공분의 대상이고 잠재적 수사 대상이다. 과거의 잘못을 빨리 털고 일어서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계산도 제대로 하고, 장기적 전략도 짜고, 투자도 할 수 있다.

그럼, 남은 것은 정부지출이다. 정부가 나서서 투자계획도 만들거나 돕고, 고용도 창출하는 방법이 있다. 가계 사정이 올 겨울에 악화된다면, 정부의 역할은 그야말로 결정적이다. 한국의 재정 상태는 그리 나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럴 여지는 많다. 정부가 좀 더 참신한 모습으로 구원투수 노릇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벤치로 퇴장당한 상태다. 계획을 짤 힘도 없고, 추진할 힘도 없다. 정치적 힘을 실어줘야 할 청와대가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불황의 그림자를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10월 산업활동 동향 및 평가"는 산업활동의 지속적인 축소를 보고했다. 전월 대비 0.4%라고 하지만, 공공행정 (4.2%)가 아니었다면 수치는 더 처참할 뻔 했다. 제조업 가동률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소비와 투자가 흔들리는 것도 염려했다.


기어코 경제까지 망쳐, "박근혜 불황"이라는 용어를 역사에 남기려 하는가.


그러면서 정부는 제전망에서는 대외 불확실성과 국내발 '하방위험'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파업 장기화" 및 구조조정을 주요 위험으로 적시했다. '파업 장기화'는 '최장기간 철도 파업'을 예시하며 아예 굵은 글씨로 강조했다. 정작 따져야 할 불확실성이나 위험은 보지 않고, 노동자의 생존투쟁에 비난의 화살만 쏘아댄다. 어설프다 못해 서글퍼진다.

이제 어쩔 것인가. 정부가 가장 필요할 때 정부가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이 팔 걷고 나서서 경제에 대한 긴급수혈을 진두지휘해야 할 때 대통령은 저 깊고도 오묘한 "시크릿 가든"에 앉아 "내 잘못은 없으니 그대들이 알아서 하라"며 태업 중이다. 경제의 고통과 서민의 고단함은 보이지 않고, 제 자존심만 부둥켜 앉고 있다.

정치는 이미 망쳤다. 이제 기어코 경제까지 망쳐, "박근혜 불황"이라는 용어를 역사에 남기려 하는가. 조속한 퇴진만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