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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죽음과 우리의 졸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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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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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남에서 젊은 여성이 무참히 죽어갔을 때, 우리는 "여성 살해"로 좀처럼 받아들이질 못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시간이 지날수록 길어졌다. 정신병자에 의해 저질러진 우연하고도 불운한 개별적인 죽음이라고 하고 싶었나 보다. 한강에 목숨을 던진 자살의 사연 많고 고달팠던 사연은 간단히 무시하며 "의지박약"이라고 하면서도, 이리도 분명한 살해를 "여성 살해"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라이" 남자의 개별성만 물고 늘어진다. 그렇게 드센 말 속에는 그가 "또라이"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도 숨어 있다. 그러면 내가 위험해진다는 본능, 그리고 방어기제 때문인가. 참, 우리는 졸렬하다.

젊은 남자가 지하철 일터에서 죽어갔을 때, 우리는 "노동자 살해"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의 피가 마르기 전에도 그의 죽음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작업 원칙을 지키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하면서 생긴, 개별적 과실에 따른 불행한 죽음이다." 그가 혹시 친구와 잠시 말다툼이라도 벌이고 일하러 왔다면 혹 평소에 술이라도 간혹 했다면, 죽음의 수식어는 더 늘어날 것이다. 졸지에, 그의 개별성은 모두 죽음의 이유가 된다. 참, 우리는 졸렬하다.

위로의 말은 많지만, 젊은 노동자들이 쓴 글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청년유니온에서 낸 성명서는 이렇게 말한다.

"유품으로 남겨진 작업 가방에는 작업에 사용하는 공구들과 컵라면, 그리고 나무젓가락이 들어 있었습니다. 깊은 꿈을 간직했을 또 하나의 귀한 삶이 지하철 문틈에서 바스라졌습니다.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더 이상 '개인의 과실'이라는 말로 고인과 유족들의 가슴에 더 깊은 슬픔을 안겨서는 안 됩니다. 죽음의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합니다. 일어나서는 안 되었을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은 사회의 책임이다. 그들을 사지에 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고, 혹 그랬다고 해도 그들을 품에 껴안고 사회의 넉넉한 등짝으로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다. 그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 참, 우리는, 졸렬하다. 징그럽게 졸렬하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