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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로서 자유롭게 | 정읍에서 농사짓는 홍정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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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 한밝음공동체에서 생강·감자 농사짓는 홍정희 씨

"'농사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다른 사람 의식 안 하는 게 좋은데, 사람인지라 들리는 말이 좋으면 기분도 좋아요.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지, '못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요. 저는 뭐든 정해진 규칙은 없다고 생각해요. 악천후도, 아픔도 즐기는 편이고요.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며 농사짓고 싶어요."
글 이선미(살림이야기 편집부) | 사진 류관희

귀농하고 3년은 가진 걸 까먹기만

이상하게 길이 많이 막히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는데도 점심때가 좀 지나서야 전북 정읍 산내면에 있는 홍정희·이민수 씨네 집에 도착했다. 'ㄱ' 모양으로 꺾인 집은 부부가 갖은 고생 끝에 지은 거라고 했다. 집을 짓고 나니 하대를 하던 이웃이 존대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단다.

"좀 씁쓸했지만, 어쨌든 우리를 함부로 보지 않는 게 좋았어요."

그만큼 단정하게 공들인 티가 났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정희 씨는 24살에 민수 씨와 결혼해 아이들을 낳고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던 중 민수 씨가 귀농 이야기를 꺼냈다. "도시에서 나름 '성공했다'는 말을 들으며 살면서도, 항상 내 터전을 일구고 싶었다"는 민수 씨의 말을 정희 씨가 받았다.

"저는 싫었어요.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고민됐거든요."

그러다가 부부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운영하는 생태귀농학교에 같이 가 보기로 했다.

"남편이 계속 농촌으로 가겠다고 하니까. 혼자 보내긴 싫었어요. 어쨌든 어디라도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교육을 받으면서 정희 씨의 생각이 바뀌었다.

"귀농학교는 무엇보다 정신을 바꾸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더 나이 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가야겠다' 싶었어요. 제가 원래 결단력이 좀 있어요."

거기에 민수 씨는 소농학교 1기생으로 1년 농사를 경험했다. 농사지을 때 어떤 어려움이 생기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러고 나서 부부는 2010년 귀농했다.

정희 씨가 고민했던 경제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갖고 귀농한 건지 궁금했다.

"서울살이를 정리하면 3년 동안은 벌이가 없어도 먹고살겠더라고요. '3년 안에는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말 그대로 귀농하고 3년 동안은 "갖고 있는 걸 까먹기만 하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서울에 살 때보다 소비를 크게 줄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또 생활한복도 가져다 팔고 청국장과 된장도 만들어 판다.

"여기서는 움직이지 않으면 돈이 안 되니까요. 놉으로도 일하러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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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씨는 농촌에 적응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단다. "어디 가도 잘 적응하는 편이고, 뭐가 잘 안 되도 '아니면 말지' 하고 크게 연연하지 않아요." 가끔씩 너무 힘들 땐 '내가 그 좋은 직장과 월급을 포기하고 도대체 지금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정희 씨는 자신을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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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덮은 생분해비닐을 뽕뽕 뚫어 생강을 심는다. 생강은 병충해에 비교적 강해 친환경 농사짓기에 좋다. 그런데 두더지가 땅속을 쏘다니며 생강 뿌리를 건드려 놓는다고.

지금은 뛰어들어야 할 때

올해 마흔 세 살인 정희 씨와 마흔 아홉 살인 민수 씨 부부는 귀농 7년차, 한밝음공동체 생산자가 된 지는 3년차다.

"홀로 농사짓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농사 기술도 충분하지 않고요. 그런 부분을 배우고 싶어서 공동체에 들어가게 됐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시작했는데, 특히 공동체에 젊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뭐든 의욕적으로 하려는 모습이 좋았다. 현재 한밝음공동체는 회원들이 비교적 젊은 편으로, 40대 생산자가 많은 공동체 축에 든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귀농한 사람이 반반이다.

올해 민수 씨가 공동체에서 생산과 인증 관리를 맡았다. "쓴소리를 또박또박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떠밀리듯 하게 됐단다. 민수 씨는 귀농하기 전의 경력을 살려 생산 관련 내용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활용할 계획이다.

"2월에 회원들한테 생산 계획서를 다 받았어요. 어디에 어느 작물을 심을지, 어떤 퇴비를 넣고 언제 수확할지 작성한 내용들을 데이터로 정리하려고 해요."

공동체에서 한살림에 내기로 약정한 물량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서로의 경험을 나누어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개선하려고 한다. "약정을 지키는 건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공동체가 총 16가구인데 그중 10가구가 생강 농사를 짓는다. 수확한 생강을 생물로만 내기는 어려우니 저장해 두었다가 가공을 해 보자고 생각했다. 지난해 한살림생산자연합회의 지원을 받아 생강 가공공장을, 지역의 마을만들기 사업 지원을 받아 저장창고를 지었다. 정희 씨가 가공공장을 맡아 편강, 생강차, 다진 생강을 생산하려고 한다.

"지난해 물품 홍보한다고 한살림서울생협 신도림 매장에 갔었는데, 거기 활동가님이 '다진 생강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 데서 착안했어요. 처음부터 욕심내서 여러 가지를 많이 하지는 말자고 했어요. 지금은 노하우를 만드는 기간이에요."

가공공장이라고 하면 제법 큰 규모의 사업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농한기 때 공동체 식구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도만 되어도 만족한다.

"우리 공동체 목표는 회원 일인당 연 3천만 원의 수입을 얻는 거예요. 엄청난 목표죠."

공동체의 각 가구에서 한살림에 내는 양이 적어도 전체 수확량의 60~70%는 되어야 친환경농사를 유지하고 늘려 갈 수 있다는 게 민수 씨의 생각이다. 가공을 시작하는 이유도 이 때문으로,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뛰어들어야 할 때"란다. 하지만 어떤 활동이든 자기의 생활을 너무 많이 희생하면서 하는 데에는 우려가 있다. 서울에서 살 때 일하느라 너무 바빠 가족을 소홀히 했던 과거의 경험이 약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하든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고 정했어요."

이게 뭐든 꾸준히 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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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하기 전 서울에 살 때는 직장 생활에 '올인'하느라 일주일에 하루 저녁 같이 먹는 것도 못 했다. "맞벌이하면서 저 혼자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은 집에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혼하자고까지 했죠." 그때를 만회하기라도 하듯 부부는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병충해에 강한 생강이 효자

귀농한 이듬해 봄 여덟 농가가 공동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옥수수는 멧돼지가 대부분 다 먹어 치웠다. 배추는 완전히 실패였다. 4천200포기를 심었는데, 뿌리혹병에 걸려 100포기만 건졌다. '배추암'이라고도 불리는 뿌리혹병이 생긴 땅에는 배추를 다시 심으면 안 되는데, 그 땅에 배추를 심었던 이웃이 말을 안 해 줘서 또 심었던 거다.

"말을 안 할 수도 있고 잊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 사람이 '직접 겪어 보고 당해 봐야 한다'고 말하는데, 뒤통수 맞는 기분이었어요. 나쁜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밉더라고요."

1년 동안 공동 농사를 하면서 "공동체는 하더라도 공동 농사는 안 된다"는 뼈아픈 깨달음을 얻었다. 부부가 맨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지만 너무 힘들어서 서울로 다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부부를 잡아 준 건 이웃이자 지금은 같은 공동체 회원인 왕정석 씨다.

"우리는 그이를 '농신(農神)'이라고 불러요. 모르는 건 뭐든지 물어보는 농사 스승이고, 지금은 친구가 됐죠. 아무도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을 때, 그이가 우리가 밤에 일하면 라이트 켜 주고 참 갖다 주고 그랬어요. 그이 덕분에 정착했어요."

이때의 경험으로 "뭐든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배웠다.

"사람 때문에 마음을 다치기도 하고, 다잡기도 하죠."

올해 상반기에는 감자, 생강, 참깨, 콩을 짓고 하반기에는 들깨, 배추, 무를 지으려고 한다. 한살림에 내기로 약정한 건 감자, 생강, 참깨.

"심을 때 약정량의 120~150% 정도 수확하게끔 계획해요."

실수할 수 있으니까 약간 여유를 두는 거란다.

주 작물은 생강. 첫 농사 때 땅세를 낼 수 있게 해 주고 씨앗값을 건지게 해 준 '효자'다. 생강은 이어짓기 피해가 있어서 한정된 땅에서 어떻게 피해를 줄일지가 숙제다.

"생강을 계속 지어 온 할머니들은 생강 사이사이에 참깨를 심는다고 하세요. 생강이 음지성 식물이라 열에 약한데, 참깨가 자라서 해를 가려 주는 건가 짐작해요."

그래서 부부도 올해는 그렇게 해 보려고 한다. 생강은 기계로 수확할 수 없고 삽으로 주변을 퍼낸 뒤 손으로 살살 고른다. 비가 오면 퍼낸 흙들이 뭉치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때를 노려 한 번에 수확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공동체 식구들이 순서를 정해서 서로 돕는다.

부부는 처음부터 관행농사는 생각도 안 했다. 귀농학교에서 배운 대로 탈석유 순환생태농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단다.

"남편은 기계를 하나도 안 쓰고 농사지어야 진정한 소농이라고 생각해요."

경운기를 한 대 갖고 있으니 기준 미달인 셈. 하지만 부부의 노동력만으로는 시간에 쫓겨서 농사일할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정희 씨는 지난해부터 예초기를 멨다. 민수 씨가 허리를 다쳐 일을 못 하게 됐을 때 도저히 혼자 풀을 다 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제일 고민인 건 민수 씨가 제일 싫어한다는 트랙터를 들여야 할지 말지다. 부부가 소유한 땅이 약 4천㎡(1천200평), 빌린 땅이 4천300㎡(1천300평) 정도인데 농기계 없이 한 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재작년까지는 생강밭을 모두 볏짚으로 덮다가 지난해부터는 생분해비닐을 쓴다. "풀과의 전쟁에서 백전백패하면서 수확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옥수수 전분이 주원료인 생분해비닐은 흙에 닿고 2개월 뒤부터 분해되기 시작하고, 분해가 시작되면 종이처럼 찢어져서 걷지 않아도 된다. 일반 비닐보다 5배 이상 비싼 게 단점이지만, 생분해비닐로 밭을 덮고 부직포로 고랑을 덮으니 풀 맬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생강이 풀에 치이지 않아 품위도 높아졌다. 또 병충해에 비교적 강한 생강의 특성 덕분에 친환경 약제는 전혀 쓰지 않지만 퇴비는 넣는다. 자가 퇴비를 만들어 써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까지 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 "외부 투입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부부의 지향이지만 경제적인 자립이 안 된 상태에서 아직은 "모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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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씨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부부의 농사 스승, 왕정석 씨이다.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가족처럼 지낸다. 이날도 정희 씨는 생강을 심고 흙을 덮어야 할지를 스승님에게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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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씨의 외출용 고무신. 가장자리를 꽃무늬로 장식해 멋을 냈다. 이렇게 꾸미면 보기에는 예쁜데 고무신이 잘 찢어지는 단점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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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 산에서 땄다는 두릅이 점심상에 나왔다. 봄맛이 아주 좋았다.

내면의 에너지 막힘없이 펼쳤으면

한살림 조합원들이 건강한 먹을거리를 원하면서도 일반 관행 농산물과 같은 높은 수준의 품위를 바라는 괴리에 대해서도 고민이 크다. 품위를 지키기 위해 비닐도, 퇴비도 더 많이 쓰는 게 과연 맞는지 싶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생산자 혼자서 이 문제를 깰 수가 없어요. 우선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저는 한살림이 우리 농업의 가치를 꾸준히 지켜 온 거의 유일한 단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해 온 걸 기반으로 소비자와 생산자가 토론하면서 품위 기준을 어떻게 합의해 나갈지가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고 봐요."

정희 씨는 자신을 "내면에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농사지으면서 진짜 내가 나오는 걸 느꼈어요.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게 됐죠."

하지만 가끔 답답함을 느낀다.

"저는 '행사 체질'이에요. 아파도 밖에서 일할 때는 힘이 넘치거든요. 그런데 대외적으로 활동하고 싶어도 분명히 '여자'라는 부분에서 막힘이 있어요."

단적인 예로 농협 대의원을 하려면 이용고가 있어야 하는데, 정희 씨 역시 농협 조합원이지만 남편 이름으로만 이용고가 쌓이고 정희 씨한테는 그 내용이 넘어오지 않는다. 일부러 남편과 아내가 각자 따로 농업 경영체 등록을 하지 않는 이상 기본적으로 남편 이름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게 현실이다. 또 하나는 고질적인 '밥' 문제. 같이 일하다가도 정희 씨는 얼른 들어와서 밥해야 한다는 게 때론 버겁다.

"남편이 힘든 일을 더 많이 하죠. 다만 제가 여자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진짜 아무것도 먹기 싫은데도 밥을 차려야 할 때가 있어요. '뭐 먹지?' 고민하고 먹는 게 제일 문제예요."

그래도 지금은 농사짓는 게 좋고, 농사에 충실할 것이다.

"'한살림' 하면 '건강하다'는 인식이 사람들한테 있어요. 그게 고맙죠. 저는 '한살림 생산자'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친구들한테 '내가 생산자야'라고 말하면서 당장 가입하라고 하죠. 누군가에게 내가 지은 농산물을 줄 때 적어도 해가 되는 건 주지 않겠다는 마음을 지켜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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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는 으리으리해 보이는 집이지만 막상 안에 들어서면 꾸밈없이 수수한 공간이다. 거실로 난 창문으로 나와 앉아 바깥바람을 마음껏 쐰다. 집 앞으로 정희 씨가 청국장, 된장을 담가 놓는 장독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