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Headshot

날씨도 한결같아야 건강하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D
연합뉴스
인쇄

2016-02-02-1454390445-7764644-salimstory02_7.jpg

겨울과 농사의 상관관계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기후와 토지를 활용하는 농업은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다. 특히 모든 생명이 멈추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태어날 때를 준비하는 겨울이 농사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겨울이 농사를 바꾸고, 농사가 겨울을 바꾼다.
글 이선미(살림이야기 편집부)

추위 속에서 생명력은 강해지는데

전남 담양에서 단감 농사를 짓는 라상채 씨는 1979년부터 농사짓고 일지를 기록하며 겨울을 체감해 왔다. "내가 여기 정착해 농장을 개간하기 시작한 게 1979년인데 1986년까지는 겨울이 굉장히 추웠습니다. 하도 추워서 마스크 쓰고 일하다 보면 입김이 고드름으로 얼 정도였지요."

자연을 경험하면서 겨울철 동식물의 행태도 알게 됐다. "개구리나 뱀 등 겨울잠 자는 것들이 땅속 깊이 들어가 있으면 그해 겨울은 춥습니다. 땅속으로 들어갈수록 지열 때문에 따뜻하니까요. 그들은 느낌으로 아는 거죠. 또 겨울로 들어서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매실나무는 그때부터 꽃눈을 키워 갑니다. 감나무도 줄기 속 파란 부분의 질소 성분이 뿌리로 다 옮아가기까지는 한참이 걸립니다. 그 안에서 생명활동을 하는 거지요. 그래서 감나무 가지치기는 줄기의 '물이 다 내린' 후에 합니다."

겨울 추위는 생명력을 더욱 강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예전 농사법에 보면 아주 추울 때 볍씨를 살얼음물에 넣어 놨다가 심는 게 있습니다. 그 볍씨를 심으면 벼가 굉장히 강건해서 병해충에 강할뿐더러 냉해를 입어 결실이 안 드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잡초들 역시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뎠기 때문에 생명력이 강해졌을 거라는 게 그의 말이다.

시금치 웃자라고 사과 재배지 줄어들어

그러나 어느새 겨울은 점점 따뜻해졌다. 과거부터 농사지을 때 기준으로 삼아 온 24절기의 평균기온을 보면 1919∼2008년 동안 봄, 가을, 겨울 기간에 해당하는 절기의 평균기온은 대체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소한(1월 5일경), 대한(1월 20일경), 입춘(2월 4일경)의 절기에는 과거에 비해 평균기온이 2.0∼2.8℃ 상승했다. "빌려서라도 반드시 오고야 마는 소한 추위"가 약해지는 것이다.

서리 내리는 날도 늦어졌다. "1986년 이전에는 10월 22~25일 사이에 된서리가 왔어요. 그러면 모든 작물들이 생육을 멈추지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는 11월 초에 된서리가 오더니 올 겨울에는 12월 17일에 왔어요. 한 달도 더 늦은 거죠. 추위가 굉장히 늦게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추위가 늦게 오는 만큼 봄도 늦게 온다면 그나마 날씨 리듬은 순조로울 것이다. 그러나 온난화에 따라 첫서리는 늦게 내리고 늦서리는 빨리 내린다. 한국의 평균 초상일(첫서리 내리는 날)은 10년에 2.9일씩 늦어지는 반면, 만상일(늦서리 내리는 날)은 10년에 3.8일씩 빨라져 서리가 내리지 않는 무상기간이 10년에 6.7일씩 길어지고 있다.

그에 따라 노지 작물의 생육 가능기간 또한 길어져 시금치나 봄동이 웃자라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많은 농부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농사를 짓지요. 그럴 경우 상품성을 갖추기 위해 일정한 규격을 맞춰야 하는데, 겨울이 따뜻하면 작물이 예상보다 더 커버려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병해충도 늘어날 수 있다. 포도나무에 큰 피해를 주는 외래종인 꽃매미는 과거 낮은 기온으로 인해 서식이 어려웠지만, 최근 겨울철의 이상고온으로 월동이 가능해져 발생 지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렇게 아열대성 병해충이 출현하는 한편 기존에 있던 해충도 월동이 쉬워져 더욱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겨울을 대표하는 소한, 대한에는 꼭 추워야 한다. 그냥 추워서도 안 된다. 삼한사온으로 추워야 한다. 나흘이나 겨울답지 않게 따뜻하면 흙 속에서 겨울잠 자던 벌레들이 겨울이 끝난 줄 알고 깨어난다. 그러다 다시 몰아닥치는 사흘의 추위로 얼어 죽는다.

장기적으로는 작물 재배지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과수의 경우 재배적지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해안에서 내륙으로, 평지에서 산지로 점차 줄고 특히 온대 과수의 재배적지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사과의 경우 과거 30년 동안의 재배면적과 비교해 앞으로 재배적지와 재배가능지가 모두 빠르게 줄고, 21세기 말에는 강원도 일부에서만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난지형 마늘은 겨울철 저온에 의한 동해 때문에 현재 남부 해안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나 온난화에 따라서 점차 재배가능지가 북상하여 2090년에는 현재보다 재배가능지역이 약 8배 정도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5℃ 이하의 저온에서 100일이 경과하여야 마늘쪽 분화가 가능한 한지형 마늘은 재배가능지역이 점차 줄어들어 2090년대가 되면 현재 가능지역의 2% 정도에서만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사가 걱정이라고? 농사가 답이다

농사를 어렵게 하는 기후변화, 농사로 해결할 수 없을까? 한 가지 방법은 친기후환경적인 '유기농'이다. 북미 지역의 경우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35~50%가 화학기계농법에 의존하는 관행농에서 나오는 반면, 유기농은 0.4ha당 3천175㎏의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격리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장거리 이동에 따른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가까운 먹을거리를 먹고,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많이 사용하는 유전자조작작물(GMO)은 먹지 않는 것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라상채 씨는 막상 농사를 지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알게 된 것들이 많다고 했다. "그때마다 반성만 제대로 하면 됩니다. 후회와 반성은 달라요. 후회는 알아도 못하는 거지만, 반성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를 결과를 분석해서 해결 방법을 찾는 겁니다. 반성을 잘하면 자기 할 바가 바르게 서고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여 겨울 날씨를 엉망으로 만들고,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기자 이제야 어쩔 줄 모른 채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에게 하는 말 같다. '겨울다운 겨울'을 살기 위해 후회는 그만두고 반성과 함께 행동할 시간이다.

2016-02-02-1454390603-7121041-salimstory02_8.jpg

주: 이 예측 지도는 현재 재배되고 있는 품종과 재배양식 등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조건하에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배출될 경우에 예상되는 기후변화 시나리오(RCP 8.5)를 바탕으로 제작됨. 출처: 우리나라의 100년 후 과수 재배지 변화(농촌진흥청, 2015)

 
PRESENTED BY 덕혜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