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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준다기보다 일에 주는 | 과거와 달라진 지금의 노동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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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RGY DRINK
Dina Belenko Photography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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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희식_사진 류관희

우리가 일할 때 뭘 먹고 마시는지 보면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사는지, 노동과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자리매김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집에서 빚은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던 시절과 믹스커피와 박카스를 사 마시는 지금의 노동음료는 그 용도가 크게 다르다. 사람을 위한 마실 거리가 일을 위한 마실 거리로 되어 가는 건 아닐까.


노동을 지속하고 효율을 높이려는 용도

영화 〈푸드 주식회사〉(2008)를 보면서 크게 놀랐던 장면이 하나 있다. 카메라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식료품 전문 대형 매장을 비추는데, 진열된 3만 6천여 개 제품 전체가 고작 6개 식품 회사에서 만든 것이었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들 회사의 식품 원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따라가 봤더니 모두 옥수수 밭이었다. 식용유도 비스킷도 엿기름도 원료는 옥수수였고, 심지어 포장지 등 인쇄물도 옥수수로 만들었다. 만 가지 병이 한 가지 독에 기인한다는 뜻인 '만병일독'이라고나 할까. 먹을거리 대부분이 유전자 조작된 옥수수와 콩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실을 보여 준 것이다.

식물성 먹을거리가 그렇지 동물성 먹을거리는 아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소고기나 닭고기, 돼지고기나 양고기도 사실은 옥수수로 만든다. 사료가 옥수수라는 얘기다. 오죽하면 수생곤충이나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바다의 연어까지 유전자 조작으로 식성을 바꿔 내서 옥수수를 먹여 키울까. 식탁에 오르는 고기는 육류건 어류건 옥수수로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일하면서 먹는 것들도 종류를 불문하고 한 가지로 귀착되지 않을까. 음료건 밥이건 오로지 노동을 지속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되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한다. 이른바 '노동음료'라고 하는, 일할 때 마시는 음료는 빠른 속도로 믹스커피가 장악했다. 어떤 일터, 어떤 공간에도 믹스커피가 놓여 있다. 믹스커피뿐 아니라 탄산음료와 박카스 등의 자양강장음료도 용도가 피곤한 몸에 노동을 중단하고 휴식을 주기보다 일시적인 각성 효과를 줘서 노동을 계속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노동을 위한 도구가 될 뿐이고, 그를 위한 수단으로 음료가 작용한다. 노동의 주체여야 할 인간이 노동의 도구가 되는 현실.

집집마다 빚던 막걸리를 시판 음료로 대체

노동음료의 변천사를 보면 방향과 행태가 줄곧 그러했다. 전통적인 노동음료의 대표 격은 막걸리로, 집에서 만들다가 가게에서 사기 시작한 게 1980년대에 들어설 즈음이다. 집에서 만드는 막걸리는 막걸리라는 이름은 같을지언정 맛은 다 달라서 일꾼들이 막걸리 맛을 두고 일하러 가는 집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여기에는 막걸리 맛을 좌우하는 쌀과 누룩 등 재료는 물론이고 솜씨와 정성이 담겨 있었다. 이 시절에는 아래위 논밭에서 일하는 이웃이나 길 가는 나그네까지도 손짓해 불러서 같이 마셨다. 손짓해 부르지 않더라도 지레 다가가서 한 사발 얻어 마실 줄 알았다.

이런 풍속도가 바뀐 게 노동음료를 사 먹기 시작하면서다. 가게에 지불하는 돈이 두 눈 부릅뜨고 쳐다보고 있으니, 객들이 일꾼들 사이로 끼어들어 한 모금 얻어 걸치기가 어려워졌다. 농로가 포장되어 차들이 구석진 논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도 한몫했다. 사람과 음식의 이동이 쉬워졌고 사 먹는 음식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유리해졌다. 기계화가 진행되고 인건비가 오르면서 더 그랬다. 주인이 직접 만들어 제공하기보다 자신도 노동에 참여하고 사 먹는 게 품이 덜 들었다. 이런 변화는 노동이 효율성과 지속성이라는 두 축으로 노골화되는 과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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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중독 부추기는 약물이라면 그만

노동음료는 흔히 노동의 피로를 풀고 새로운 노동에 활력을 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막걸리는 흥과 신명이라는 기능을 가짐으로써 노동과 인간이 하나 되고 일하는 사람끼리도 합심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즘 마시는 노동음료는 어떤가. 인간에게 준다기보다 노동에 주는 것이 아닐까. 노동의 양을 늘리고 속도를 높이기 위한, 음식이라기보다 각성제에 가까운 일종의 약물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마트와 약국 매대에서는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진 음료들이 화려한 상표를 바꿔 달고 폭발적으로 소비를 부추긴다. 몸 노동을 갈취하고 정신적·정서적 영역마저 잠식하는 약물. 지친 몸을 강제로 부축하여 작업대에 세우는 물질.

충분히 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미숫가루나 설탕물(꿀물), 그냥 맹물을 마시는 건 어떤가. 당류는 일시적으로 몸에 원기를 보충하면서도 커피나 탄산음료에 비해 중독성은 덜하다. 집에서 만든다면 좋겠지만 사 먹는 경우 막걸리도 대개 아스파탐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어 권할 만하지는 않다.

또 아메리카노 한 잔이 당기는가. 오늘 몇 번째 잔인가.

일할 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멍한 상태를 이겨 내려면 어쩔 수 없는가. 갈수록 진한 걸 찾는가. 한 잔으로는 부족한가. 그렇다면 중독인가? 노동 중독이다. 노동 중독이 알코올중독보다도 훨씬 위험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노동 중독에서 오는 사회적 스트레스는 사회악이 되고 있다. 노동음료가 이를 부추긴다.

피로가 쌓였다는 것, 신체 기능이 저하되었다는 건 무슨 뜻인가. 몸의 순환이 둔화되고 기혈의 작용이 막혔다는 것이다. 막힌 곳을 뚫고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이를 우리 조상들은 '운기'라고 했다. 몸의 긴장을 풀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조식'이라 하여 호흡을 조절했다.

몸은 작은 우주이다. 인체에도 우주처럼 보이지 않는 기운이 작용하며, 이 기운은 혈맥을 따라 흐른다. 호흡은 기운을 생성한다. 자기에게 맞는 특정 자세와 호흡법을 알아내는 것도 좋은 노동음료를 찾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겠다.


전희식 님은 농민생활인문학 대표로, 전북 장수군 산골에 살면서 《똥꽃》, 《시골집 고쳐 살기》, 《소농은 혁명이다》,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 등을 썼습니다.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