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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맛까지 알게 됐어요" | 전통 방식으로 술 빚는 장인정신 이진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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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계룡에서 전통 방식으로 술 빚는 장인정신 이진태 씨

"술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어요.
지금도 많이는 못 먹지만 매일 한두 잔씩 먹지요.
전에는 '어떻게 술 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만큼 내가 살면서 힘든 일이 더 많았다는 거겠죠.
내 의지대로 안 풀리고, 곤궁하고.
그럴 때 술을 마시면 시름을 잊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술은 그런 게 아니고
삶을 함께 즐기는 벗이에요."

글 이선미(살림이야기 편집부) | 사진 류관희

막걸리 한 잔,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계룡 나들목을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인정신 양조장을 찾았다. 고속도로와 가까워 물류가 꽤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진태 씨의 안내를 받아 실내에 들어서니 고두밥 찌는 냄새가 훅 끼쳤다.
올해 쉰여덟 살인 이진태 씨는 본디 술을 좋아하는 사람.

"어려서 어른들 술심부름을 많이 했어요. 우리 어릴 땐 단 음료가 없었어요. 사카린을 물에 타 먹던 시대니까요. 그럴 때 막걸리 한 잔씩 얻어먹으면 달고 맛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술이 입맛에 맞았나 봐요."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좀 하다가 1993년부터 10여 년간 전통주 유통업을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술을 많이 팔까 하는 생각만 했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갖다 파는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심이 생겼어요. 전통주 빚는 법을 배워야겠다 싶었죠."

그러면서 전통주를 공부하고 고문서에 따라 재연도 하며 연구했다. 지역 농업기술센터와 대학 평생교육원, 기업체 등을 다니면서 강의하고 전통주 교실도 6~7년 동안 운영했다. 그러나 전통주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수입이 적어 교실을 제대로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공부하면서 빚은 술을 판매해 보자 싶어 2010년에 양조장을 열었어요."

양조장을 차리고 1년 뒤인 2011년부터 한살림에 찹쌀막걸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한살림은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대학 다닐 때 가톨릭 학생운동을 좀 했는데, 그때 가톨릭농민회와 교류하며 지냈거든요. 거기 있던 분들이 한살림에 많이 참여하더라고요. 또 한살림 설립에 함께한 장일순 선생을 좋아해서 관련 책은 다 읽었고요."

그러던 중 아는 사람이 한살림에 술이 없는데 공급해 보지 않겠냐고 소개해 줬다.

"그때부터 석 달 동안 한살림 실무자들에게 전통주 수업을 했어요. 실제로 술을 빚어서 시음도 하게 하면서 공급을 시작하게 됐죠."

현재 장인정신은 한살림에 찹쌀막걸리와 맛술 '미온'을 내고 있다. 단, 주류는 통신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전화나 인터넷으로는 주문 공급되지 않고 매장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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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쌀을 깨끗이 씻어 고두밥을 짓고, 담아 놓은 밑술에 넣고 섞어서 또 한 번 발효시킨다. "술은 숙성되는 기간이 있어서 주문량과 상관없이 계속 만들어져요. 다행히 주문이 폭주하거나 끊어진 적이 거의 없었어요."

유기 쌀과 우리밀 누룩으로 천천히 빚는다

장인정신의 술은 수확한 지 1년 이내인 한살림 유기 쌀과 우리밀 누룩을 주원료로 한다.

"'전통'이라는 말을 붙이려면 최소한 국내산 쌀을 써야 한다"는 게 이진태 씨의 생각. "유기 쌀을 쓰는 것과 수입산 쌀이나 일반 쌀을 쓰는 건 풍미가 다르기도 합니다."

누룩 역시 시중에서는 대부분 미국산 밀로 만든 걸 쓰는 데 반해 광주 송학국자에서 전통 방식에 따라 자연 발효시켜 만든 우리밀 떡누룩을 쓴다.
먼저 깨끗이 씻어 말린 뒤 빻은 통밀에 물을 섞고 꼭꼭 눌러서 만든 누룩과, 쌀가루에 끓는 물을 넣고 골고루 저어 만든 범벅을 합한 밑술을 닷새 정도 발효시킨다. 그러고 나서 담아 놓은 밑술에 고두밥과 물을 더하고 골고루 버무려 덧술을 담근 뒤 약 4~6주간 발효시킨다. 이렇게 숙성한 술을 제성기에 넣어 분쇄와 거르기 과정을 거치면 완성.

"전통 방식대로 두 번 빚기 때문에 이양주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술맛이 좋아요. 항아리 위에 고인 맑은 술을 청주, 위아래를 섞어서 뿌옇게 된 술을 탁주라고 합니다."

감미료, 인공 향 및 첨가물은 전혀 넣지 않는다.
반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막걸리는 수입산 쌀이나 밀가루, 2~3년 이상 묵은 쌀에 입국을 넣어 만든다. 입국이란 쌀이나 밀가루를 쪄서 식힌 다음 백곡균 등을 배양한 것으로, 누룩이라고 똑같이 표기하기 때문에 전통 누룩과 같은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는 데 비해 술이 실 우려가 적고, 생산량이 많아 원가가 낮으며, 빠르게는 사나흘이면 술이 완성되는 등 작업하기도 쉽다. 그러나 맛과 향이 획일적이라서 이를 차별화하려고 첨가물을 넣게 되며, 쓴맛이 나기 때문에 아스파탐 등 합성감미료를 넣기도 한다.

생탁주인 찹쌀막걸리와 달리 증류주인 미온은 '맛 좋은 술'이라는 뜻으로, 이진태 씨가 한살림을 위해 새롭게 개발한 것이다. 알코올 도수 20%로 유기 쌀과 우리밀 누룩에 약쑥, 양파, 파, 생강 등 국내산 유기 재료를 넣어 만든다. 막걸리와 달리 유통기한이 따로 없고 냉장 보관할 필요도 없어 편리하게 쓸 수 있다.

"공급하기에 앞서 전국의 한살림 조합원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특히 술이라고 하면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데, 미온은 술이라기보다는 음식으로 인식되고 활용되기 때문에 장인정신의 '효자' 역할을 한다고.

쌀 소비 측면에서 보면 장인정신도 효자. 1년 동안 소비하는 쌀은 12~13톤 정도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5년 양곡소비량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2.9㎏로, 30년 전인 1985년의 128.1㎏에 비하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계산해 보면 장인정신은 해마다 약 200명이 쌀을 소비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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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이라는 이름은 이진태 씨가 직접 지었다. "언론에 음식이나 술 명인이 나오는 걸 보면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일해요. 나는 그런 게 어색해요. 평소대로 옷 입고 현장에서 스스럼없이 일하는 게 진짜 장인 아닐까요?" 옷이 아닌 술이 그를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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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쌀에서 맑은 술을 솟아 올렸다. "독에서 바로 뜬 술을 먹어야 얼마나 맛있게 빚었는지 알 수 있어요." 요즘엔 잘 만들지 않는다는 커다란 술독은 문 닫은 양조장에서 구해 온 것. "석 달 이상 숙성시킬 때 항아리에서 하는 게 차이가 커요."

전통 방식 지키며 다양한 술 선보일 것

이진태 씨는 술 빚는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한다. "아직은 다 혼자 할 수 있을 만큼 생산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양조장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가 전통주 교실을 열었던 자리에요. 30~40평 되는 데서 시작하다 보니 좁아요. 구역 정리가 명확하게 되어 있지도 않고 자동화도 안 되어 있지요."

하지만 시설이 현대적이지 않다고 해서 비위생적인 건 아니라고.

"외적으로 잘되어 있으면 깔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있어요."

외연보다는 내실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

"겉으로 보이는 데 철두철미한 것도 좋지만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가 더 중요하겠지요."

규모가 작아서 좋은 점. 유지하는 데 큰 비용이 들지 않으니 욕심 낼 필요 없이 초심을 지킬 수 있다.

"한살림에서 우리 술을 선택한 이유는 전통 방식으로 빚기 때문이에요. 시중의 주류 기업들도 전통주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전통 방식을 따르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무엇보다 술 빚는 재료나 방식을 처음처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물론 시설까지 잘 정비한다면 더 자신 있죠."

이진태 씨는 앞으로 연구 개발에 더 힘쓸 계획이다. 현재 찹쌀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8%짜리 한 가지인데, 6%짜리도 연구 중이라고. 미온도 다양한 종류로 만들어 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약초와 채소를 가감해서 생선용, 고기용 등으로 세분하고 싶어요. 한식용으로 개발했지만 양식이나 중식 등 어떤 요리에 넣어도 좋거든요. 요리 방송을 보면 먹다 남은 소주나 맥주를 맛술로 쓰는데 우리 미온을 써 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또 새롭게 모주를 개발하려고 계획 중이다.

"시중 모주의 알코올 도수 1.5%에 맞춰서 건강음료처럼 마실 수 있게 해 보려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살림 유기 쌀과 약재를 써서요."

이렇게 되려면 먼저 한살림 조합원들에게 장인정신의 술이 더 알려지고 쓰여야 할 것이다.

"한살림에서 두세 배 더 나가는 게 1차 목표예요. 한살림 매장에 가서 보면 우리 술을 잘 모르더라고요. 한번 쓰면 계속 쓰는데 진입이 잘 안되는 것 같아요. 홍보가 잘되면 좋겠는데, 물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쉽지는 않을 거예요. 생산자 입장은 다 마찬가지죠. 자기 물품이 멋있게 홍보되길 바라요."

그러나 이진태 씨가 술에 너무 집착하는 건 아니다.

"나는 술을 통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인생의 맛까지 알게 됐어요. 그러나 술은 살아가는 수단일 뿐, 중요한 건 어떻게 의미 있게 사느냐죠. 장일순 선생도 '너나 나나 거지다'라고 말했지요. 거지는 행인이 있어 먹고살고, 나는 물건을 사 가는 손님이 있어 먹고사니 서로 겉모양만 다를 뿐 속은 다를 게 없다는 거예요. 육십 평생 살다 보니까 우리가 각자 어떤 일을 하든지 참인간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오명을 쓴 술이 안쓰러워 조금 변호해 본다.

"술 자체가 아니라 과욕을 부리는 게 문제죠. 욕심 부리고 술을 많이 마시면 실수하고 다음 날 힘들잖아요? 그러면 내가 조절하지 못하고 조화롭지 못한 걸 탓해야지 왜 술만 욕하는지 모르겠어요. 과식한다고 음식을 탓하지는 않는데 과음하면 술을 탓한단 말이죠."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듯도 하다.

"세계 어느 술이나 많이 먹으면 독이 되고 적당히 먹으면 약이 되는 건 똑같겠죠. 우리 전통주는 건강성을 더했다고 보면 돼요. 어차피 먹는 술이라면 건강에 좀 더 유익한 걸 먹자 해서 채소, 과일, 약재를 넣어서 만드는 거죠. 또 찹쌀로 빚은 술은 굉장히 단 편이에요. 술이 달면 많이는 못 먹거든요. 반주로 한두 잔 먹으면 좋습니다."

장인정신의 술 빚기 3보(寶) 3계(戒)

3보 - 세 가지를 귀하게 여긴다
정신: 베풀고 모시는 마음으로 한다.
장인: 기술력, 우직함, 섬세함, 일관성, 지속성을 갖춘다.
법식: 전통주 빚는 원칙을 지켜 나간다.

3계 - 세 가지를 경계한다
욕심: 재료비 원가를 아끼지 않고 주원료로 유기 쌀만을 사용한다. 돈만 추구하는 장사꾼이 되지 않고 정직하게 일한다.
조급: 서두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로 술 빚기에 임한다. 빚는 기간을 준수하여 곡물과 식물에서 발효된 맛과 향을 내며, 첨가물로 인위적인 맛을 내지 않는다.
태만: 잘못을 답습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개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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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 벽에 3보 3계를 붙여 두고 언제나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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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찐 고두밥을 넓게 펼쳐서 식힌다. 너무 오래 식히면 떡이 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찹쌀로만 지은 고두밥은 쫀득쫀득해서 더 맛이 좋다. "뜨겁지만 고무장갑 끼면 답답해서 못 해요. 맨손으로 해야지." 술에 손맛 드는 중.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