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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맞서게 된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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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여전한 여성노동 차별과 수치심 강요 ]

글 | 하승우


혐오는 왜 생길까

게임에서 신규 캐릭터의 목소리를 맡았던 한 성우가 "여성은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자신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 티셔츠는 메갈리아4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페이스북과의 민사소송을 벌이는 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고, 이 성우는 메갈리아를 지지한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게임 홈페이지에 성우를 교체하라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게임 회사는 하루 만에 성우를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녹음 비용을 모두 지불했고 단지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 밝혔으며, 이에 대해 '부당해고'이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외부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에서 이를 비판하는 논평을 내놨고, 정의당은 당원들의 반발로 이 논평을 철회하기도 했다.

이 논쟁은 기존의 진보/보수 틀을 비틀며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논쟁은 2015년에 만들어진 메갈리아라는 인터넷 사이트의 성격에 관한 것으로, 메갈리아는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메갈리아가 많이 쓰는,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남성혐오라는 미러링이라는 방법에 대한 비난·비판으로 이어졌다. 이미 신문이나 여러 매체에서 다루었고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 보면 이와 관련된 논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이 논쟁으로 사라진 사건은 한 남성이 처음 본 여성을 화장실에서 흉기로 살해한, 이로 인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 포스트잇이 수없이 붙었던 사건이다. 이 글에서 다뤄 보고 싶은 것은 메갈리아의 성격이나 미러링이라는 방법보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왜 등장했고 무엇을 비틀어 보여 주고 싶었는가라는 그 이전의 질문이다. 왜 여성들은 어떤 혐오에 혐오로 맞서고자 했을까?

사는 게 차별인 여성노동의 현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는 아주 가깝고 구체적인 일상에서 가해진다.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이 쓴 《기록되지 않은 노동》(삶창, 2016)은 여성노동의 민낯을 드러낸다. 창조경제, 공유경제가 논의되는 시대지만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을 뿐 아니라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여전히 여성노동자는 공식적인 노동과 무관한 일들을 노골적·암묵적으로 요구받거나 강요당하면서도 노동의 대가는 언제나 남성보다 낮게 책정되고 노동조건도 더 나쁘다. 그보다 더 심한 건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폭력이고, 이에 반발하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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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노동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씀|삶창 펴냄|2016년

이 책에 담긴 여성노동은 야쿠르트 아줌마, 행사 도우미, 헬스장 트레이너, 대리운전기사, 톨게이트 노동자, 산모 도우미, 초등 돌봄교사, 방과후 교사, 보육교사, 장애인활동보조인, 간병인, 요양보호사, 희곡작가, 시각장애 안마사, 학원강사, 호텔 룸메이드, 급식조리원, 보조출연자, 조선소 하청노동자 등으로 다양하다. 우리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노동현장에서도 차별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동안 우리는 이런 차별에 얼마나 귀를 기울여 왔을까?

예를 들어,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는 매일 반말과 욕설을 듣는다. 똑바로 보지 않는다고, 웃지 않는다고 욕하는 고객들에게 맞서기라도 하면 고객은 바로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직원이 친절하지 않다고 항의한다. 결국 징계를 받는 건 노동자이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 자동차를 바로 접하면서도 이들은 고객을 상대한다는 이유로 마스크조차 쓰지 못한다. 이렇게 모욕을 받으며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2009년부터 비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로, 12년을 일해도 임금인상은 없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들에게 웃음을 요구할까?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비혼모·미혼모들은 일을 구하기 어렵지만 일을 구해야 살아갈 수 있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도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밤늦게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술 한잔 하자, 남편도 없는데 애 맡기고 나와서 한잔 하자, 이런 요구가 들어오고 이를 거부하면 애를 빌미 삼아 일을 그만두라고 한다. 일터만의 일도 아니다. 사는 동네에서도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동네 아저씨들이 "'애기 엄마, 하룻밤 재워줄 수 있어?' '오늘 가면 저녁 먹여주나?'"(215쪽)라고 희롱한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성폭력과 여성혐오가 가부장제라는 권력에 따른 것이라면, 남성혐오는 이런 현실의 반영이다. 이 두 혐오를 같은 위치에 놓고 저울질하는 게 옳을까?

수치심 심기가 목표인 일터괴롭힘

앞서 말한 사건에서 이미 노동의 대가를 지불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글이 인터넷에 많았다. 한국도 노동력을 사고파는 자본주의 사회이니 대가만 지불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류은숙 등은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코난북스, 2016)에서 한국만이 아니라 외국에도 만연한 일터괴롭힘(workplace harassment) 문제를 지적한다. 일터괴롭힘은 노동자의 존엄성과 인격을 모독하고 권리를 위협하는 태도와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일상적인 갈등부터 노조 탄압, 대량 해고 등의 큰 사건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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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류은숙·서선영·이종희 지음|코난북스 펴냄|2016년

일터괴롭힘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중 하나가 바로 수치심이다. 그리고 성적인 괴롭힘에는 수치심이 배가되고 화살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겨냥한다. "'사내에서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 했지.' '행동거지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반응에서 공격의 화살은 피해자를 겨냥한다."(137쪽) 더구나 "개인이 수치심을 거부하더라도 주위에서 수치스러운 일로 구성하고 강요하는 규범을 구축한다. 그런 면에서 일터괴롭힘의 가해자 동맹은 굳건하고, 동맹의 감정은 바로 도치된 수치심이다. 강요된 수치심의 올가미를 쓴 사람은 비인간화된다."(138쪽) 앞선 논란에서도 성우라는 존재는 금방 사라졌다.

일터괴롭힘이 일상화되면 자본가와 노동자 관계는 주인과 노예 관계로 변하고 "노예는 퇴근 후에도 노예다." 자연히 "자본가의 지배는 우리가 노동하는 시간뿐 아니라 프라이버시와 놀이, 친교 등 개인적 삶의 시간에까지 미친다." 나아가 노동자는 물건으로 취급된다. 즉 자본가는 "안 사면 그만이고, 필요 없으면 그만이고, 일을 시켜줬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191쪽) 정말 대가만 지불하면 그만인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는 노력을 다하고,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때로는 부당하고 괴로운 일까지 감수해야 한다. 임금을 받았으니 이 결과물은 네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자본주의 발상 아닌가? 이런 사회에서 인간이 혐오를 느끼지 않을 수 있나? 자신의 수치심을 타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까?

날선 혐오가 겨냥하는 대상은 남성이 군림하는 사회다. 남성들의 드러내 놓고 낄낄대는 이야기와 반대로 여성들이 무리 지어 쉬쉬하며 나누던 이야기가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이제 그만이라고 하기엔 아직 우리 사회가 충분히 듣지 않았다. 가해자 동맹에서 빠져나와야 그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승우 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으로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자치와 공생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날카롭고 까칠해야 하지만 삶의 방향은 우정을 향해야 한다고 믿는 '까칠한 로맨티스트'입니다. 오랜 수도권 생활을 접고 충북 옥천에서 자치와 자급의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