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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스의 허풍에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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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amana images 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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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산

깨끗한 유리잔에 담긴 시원한 주스 한 잔은 무더운 여름 오후 어쩌면 구세주 같은 존재처럼 보인다. 새콤달콤한 과일 특유의 맛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는데다 갈증까지 날려 준다. 거기다 주스의 원재료는 건강에 좋다는 과일이나 채소 들이다. 시원하긴 하나 갈증은 해결 못 해 주는 공기와 설탕 덩어리로 알려진 아이스크림이나 이미 많은 성인병의 원인으로 잘 알려진 탄산음료와는 비교도 못 할 만큼 건강한 음료 같아 보인다. 하지만 생각처럼 주스는 과연 무더운 여름 오후의 갈증을 날려 주는 '건강한 음료'일까?



영국 선원들이 괴혈병 예방을 위해 마신 주스

우리가 흔히 '주스'라고 부르는 것은 "과실이나 채소에서 짜낸 즙액을 가공 처리하여 만든 음료"를 말한다. 즉 과일이나 채소로 만든 음료를 통칭하곤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발표한 <식품의 기준 및 규격(제2016-23호)>에 따르면, 음료류란 "과일·채소류 음료, 탄산음료류, 두유류, 발효음료류, 인삼·홍삼음료, 기타음료 등 음용을 목적으로 하는 식품"을 말하는데, 이 중에서 '과일·채소류 음료'는 "과일 또는 채소를 주원료로 하여 가공한 것으로서 직접 또는 희석하여 음용하는 것으로 농축과·채즙, 과·채주스, 과·채음료"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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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2015 가공식품세분시장 현황조사(음료류)>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하루 30mL가 조금 안 되는 과채음료를 소비하며 이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각종 기능성 '즙'을 섭취하고 있다. 과채음료를 마시는 이유는 '커피나 탄산음료의 대용품으로 혹은 간식으로 마신다'는 대답이 가장 많은 편이고, 10대의 경우 '물 대신 갈증 해소를 위해 마신다', 30~40대로 가면 '비타민 섭취를 위해 마신다'는 대답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일반적인 시판 과채음료는 탄산음료의 건강한 대용품이 되지도 못하고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 편이다.

주스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의 시작은 주스의 역사와 관계가 있다. 주스는 기원전 8000년에도 존재했다고 하지만 인류가 본격적으로 주스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최근 수백 년 사이의 일이다. 인류는 16세기가 돼서야 레모네이드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마셨고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주스의 대명사 같은 오렌지주스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18세기에 주스의 이미지에 오랜 영향을 끼칠 발견이 있었다. 영국 해군의 군의였던 제임스 린드는 선원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던 괴혈병을 레몬과 라임 주스를 마심으로써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주스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무서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효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이런 발견이 바로 주스의 대중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주스는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막 짜낸 과즙은 아주 빨리 술이나 식초로 변했다. 과일 껍질에 사는 천연 효모가 원인이었는데 효모는 과즙 속의 당분을 빠르게 발효해 알콜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이렇게 발효되지 않은 과즙은 썩어서 아예 먹지 못할 것이 되어 버린다. 신선한 과일주스는 오랫동안 유통이 쉽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미국의 의사였던 웰치다. 그는 밀봉된 병에 포도주스를 담고 끓는 물에 넣어 가열해 효모를 모두 죽였다. 이제 주스는 장기간 보관과 안전한 유통이 가능한 식품이 되었다. 드디어 인류에게 본격적인 주스의 시대가 열렸고 거대한 식품회사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주스는 더 쉽게 만들고 보급하기 위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원래 과일이나 건강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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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15 가공식품세분시장 현황조사(음료류)>
※연도별 음료류 출하량 기준으로 작성, 탄산수는 탄산음료에 포함
※커피음료는 액상 커피만을 한정하며, 일반 조제커피·볶은 커피 소비는 제외





충치·비만과 당뇨의 지름길

주스 광고를 보면 신선한 과일이 등장하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즙이 바로 병에 담기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산지의 대규모 농장에서 생산된 과일은 대강의 세척 과정을 거쳐 압착되고 필터를 거쳐 식이섬유를 포함한 대부분의 고형분이 걸러진다. 그리고 이를 다시 펄펄 끓여 소독하고 걸쭉하게 농축해 거대한 스테인레스통에 담아 누군가 그 주스를 사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보관했다가 판매한다. 이 걸쭉한 액체를 구매한 기업은 물과 다른 다양한 것들을 섞어 주스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스에는 열에 약한 비타민들은 물론 항산화물질, 식이섬유가 모두 사라진다. 거기에 만일 그해 날씨가 좋지 않아 과일의 당도가 충분히 높지 않으면 설탕이나 과당을 추가하고, 재료를 끓이고 보관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맛과 향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합성향신료를 더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과일주스는 아주 높은 당도와 산도에 약간의 미네랄과 향을 가진 액체 정도가 된다.

이런 주스가 우리 몸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 먼저 대부분의 주스는 산성을 띄고 있는데 주스가 치아에 닿으면 치아를 보호하는 법랑질을 녹인다. 거기다 주스에는 많은 당분이 들어 있어 충치균이 날뛸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거기다 대부분 식후에 또는 간식과 함께 마시는데, 주스가 치아의 음식 찌꺼기에 스며들면 치아는 더 큰 손상을 입는다. 거기다 주스는 배 속으로 들어간 후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주스 속에 포함된 대량의 당분은 우리 핏속으로 빠르게 흘러들어 가 혈당을 크게 올리고 대량의 인슐린 분비를 불러온다. 쏟아져 나온 인슐린은 당분을 지방으로 바꿔 간에 쌓아 놓고 혈당을 떨어뜨려 금방 공복감을 느끼게 해 또다시 무엇인가를 먹게 한다. 주스는 당뇨와 비만으로 가는 지름길을 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주스가 완전한 악의 음료는 아니다. 주스는 설탕뿐인 탄산음료나 무늬만 비타민음료인 각종 건강음료에 비해 여전히 많은 비타민과 무기질, 항산화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질 좋은 오렌지주스는 혈중 지질과 콜레스테롤치를 낮춰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서양자두(프룬)주스는 변비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주스는 주스일 뿐 절대 과일은 아니다. 실제로 2013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일을 섭취하면 2형당뇨 유발 가능성이 떨어지지만, 과일주스는 2형당뇨 발병률을 높인다.

사실 현대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문제는 영양 과잉이지 영양 결핍이 아니다. 신선한 과일의 탈을 쓴 주스는 마시는 사람에게 설탕과 약간의 비타민을 줄 뿐이지 건강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주스 대신 조금 불편한 과일을 좀 더 즐겨 먹고 목이 마르면 깨끗한 물을 마시자. 먹기 편한 음식은 몸에 이로운 경우가 드물다.


김산 님은 '소셜픽션'이라는 사회변화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마을 만들기에서 지역의 비전 수립 및 공공건축과 치유프로그램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먹을거리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두 아이의 밥을 챙기면서 공동체의 시작은 건강한 밥 한 끼를 나누는 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