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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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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예쁘지 않아? 나 엄청 용감하지? 그림도 너무 잘 그리고 똑똑하지?"

아름답고 용맹하며 총명한 스스로와 사랑에 푹 빠진 딸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내게 동의를 구한다. 겸손은 인간이 가진 최고의 미덕 중 하나이고, 유머러스한 자기 비하는 지루한 인생의 맛깔난 사이드 디시라고 믿는 나는 매번 당황한다. 네 살 된 딸의 엄청난 자신감과 자기 자랑에 놀라서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응... 너 최고야." 나의 뒤늦은 대답을 듣고도 딸은 의문을 품지 않는다. 또다시, 자신의 멋진 점에 대해 크게 떠든다.

낯선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면 부끄러워하는 듯이 행동하지만 칭찬 자체를 부정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당연히 올 것이 왔다! 정당한 자기 몫의 칭찬인 양 부드럽게 집어삼킨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찬 딸의 표정, 나도 그런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을까. 딸은 자존감에 대한 베스트셀러를 집었다, 놨다, 고민하는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근사한 나' 네 살 된 딸의 정신 승리. 마냥 부럽고 신기했지만 자만심으로 가득한 아이가 될까 봐 살짝 걱정이 되었다.

"너 잘난 척이 뭔지 알아?"
"모르는데. 그게 뭐야?"
"내가 이것도, 저것도 혼자 너무 잘한다! 난 다 가졌다! 내가 너희들보다 훨씬 낫다! 그렇게 행동하는 게 잘난 척이야."
"나는 잘난 척 안 하는데?"
"가끔 어린이집에서 네가 뭐든 제일 잘한다고, 그러잖아."
"내가 제일 잘해."
"아니, 그게 사실이어도 말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왜?"
"다른 사람들 생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 네 말 듣고 기분 나쁠 수도 있어."
"왜 기분 나쁘지? 내 생각에는 그래. 내가 제일 잘해."
"그래? 그래... 맞아."

딸이 부쩍 향상된 한국어 실력으로 또박또박 반론을 제기하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간혹 딸에게 세상일을 설명한답시고 내가 덧붙이는 말 '내 생각에는 그래'.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말을 되풀이했다. 겸손 대신 잘난 척의 못된 점을 가르치며 딸의 기를 꺾으려 했던 것은 나의 실수다. 남들이야 뭐라든, 자신이 최고니까 최고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딸은 잘난 척한 적이 없다. 그녀가 가진 떳떳한 팩트를 공표할 뿐이었다.

아이의 행동이 도를 지나친 것처럼 보던 것은, 자학과 겸손을 혼동하는 나의 문제다. 나는 남이 한 칭찬을 순순히 받아들이거나 스스로를 칭찬해서는 안 된다고(비뚤어지고 거대한 자의식을 남몰래 사랑하면서) 믿고 있었다. 나에 대한 타인들의 기대를 낮추고 응석을 부리려고 꾀를 쓴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못났다고 떠들고 다니면 꼭 누군가는 지치지 않는 위로를 건네곤 했다. 소화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한 칭찬과 응원의 맛은 달콤했다. 겸손의 탈의 쓴 비겁함은 딸의 잘난 척보다 유아적이었다.

위선적인 엄마에게 일침을 가한 딸은 오늘도 자기 자랑을 한다. 예쁘고 용감하고 똑똑한 딸의 말엔 거짓이 없고, 나는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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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