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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는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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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의 개들은 앙상했다. 개들이 마른 나뭇가지 같은 다리를 움직여 관광객들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니지 않았더라면 잿빛 유적의 일부로 보였을 것이다. 갈비뼈가 드러난 몸통, 푸석거리는 털, 주눅 든 표정의 개들 모두가 가엽고 처량해서 눈물이 났다. 나는 깡마른 짐승들 때문에 폼페이에 온 이유를 잊고 말았다.

당시 열두살이었던 나는 이탈리아의 유적보다 눈앞의 살아있는 동물에게 마음이 더 기울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기념품 가게에서 산 초콜릿을 뜯었다. "만지면 안 돼." 엄마의 말을 듣고 초콜릿을 바닥에 던져 놓았다. 납작한 초콜릿이 먹기 힘든지 개들은 주둥이를 여러 방향으로 돌려가며 안간힘을 썼다. 몇몇 녀석들은 방법을 터득한 듯 초콜릿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바닥에 던져서 미안해." 나는 한국말로 사과한 뒤 안심했다. 내가 배고픈 개들을 덜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십년이 지난 뒤 초콜릿이 개들에게 치명적이라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를 읽자마자 폼페이의 개들이 떠올랐다. 내가 준 초콜릿을 먹었던 개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린아이가 뭘 몰라서 그랬다거나, 악의가 없었다고 변명해보아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좋은 마음으로 한 나쁜 짓. 개들은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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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은 당연히 당신도 좋아할 거야. 내게 유익하고 필수적인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당신에게 도움을 줄게. 그 과정에서 나도 위안을 얻을 거야. 네게 애정이 없다면 이런 일을 하지도 않을 테지? 나는 너를 돕는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당신은 나를 잘 모르잖아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요? 나의 방식과 성향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당신이 호의라고 생각하는 행동이 내게는 상처가 돼요."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호의를 베풀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폼페이의 개처럼 주린 배를 채우려, 누군가 내게 던지는 독한 조언을 주워 삼키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쁜 마음을 품지 않았는데도 관계가 상하고 만다. 어쩌면 나쁜 마음, 악의의 정의가 너무 거대해서 무심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상대를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이나 권력, 무지함 자체가 악의인지도 모른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선행되지 않는 호의는 '베푸는 자'의 자위일 뿐이다. "어째서 고마워하지 않아?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배은망덕이란 사자성어를 입에 담기 전에 과거의 친절을 되짚어 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독심술이 없는 이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차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신중해질 순 있다. 상대의 시각으로 문제의 깊이를 재고 고민하며 나의 시간을 나누는 것. 그게 호의의 시작 아닐까.

초콜릿을 먹은 개들, 줄줄이 망가뜨린 관계들을 되짚으며 내가 듣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당신을 다시 알고 싶어요. 성급한 마음이 저지른 일들을 용서해 주세요."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