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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서 그런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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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고개를 젖히며 상쾌히 웃는 딸. 아이의 웃음을 신호로 움직이는 '우울하면 반칙 기동대'가 잽싸게 다리미를 들고 내 마음에 뛰어든다. 자글자글한 기분의 주름을 완벽하게 다려준다. 막가파 유아 역할을 접어두고 '모든 것이 멋져' 모드로 전환한 딸의 웃음을 듣고 있자면, 흐린 날의 기억들이 전부 왜곡된 것이 아니었나 착각이 든다. 딸의 머리카락에 붙은 밥풀을 뗀 것 외에 아무런 성취 없이 지나간 하루도 용서할 만한 것이 된다. 맑고 밝게 퍼지는 웃음소리에 담긴 강력한 확신 덕이다. '엄마, 나는 앞으로도 계속 세상을 이렇게 느낄 거야.' 근거 없는 낙관을 걸쳐도 어색할 것이 없는 나이. 딸의 웃음은 힘이 세다. 상념의 피로를 덜어주는 아이의 웃음에서 나는 '천사' 미소의 은근함이 아니라 '전사'의 대범함을 느낀다. '쬐그만 게 대단한데....' 주책 없이 따라 웃으면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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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도 그렇게 웃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진심으로 웃는 순간을 좋아했었다. 방어적이거나 시니컬한 구석 없이 낮은 음성으로 훌훌 털어내는 소탈한 웃음소리. "잘 웃네. 듣기 좋다." 간지러운 칭찬을 하면 그는 유약한 면을 드러내서 부끄럽다는 듯 어색해했다. 어쩌다 내가 그를 크게 웃긴 날에는 굉장히 기뻤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새어 나오는 그의 솔직함, 다정함, 유년의 추억이 뒤엉켜 내 귀에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서로를 포기하려고 작정한 날까지도 나는 그의 웃음을 한번쯤 더 듣고 싶었다. 법원에서 이혼 가정의 자녀 양육에 관한 비디오를 시청하던 날. 눈물을 터뜨리며 훌쩍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전남편과 크게, 마지막으로 함께, 웃고 싶었다. '후후후... 우리는 이러려고... 깔깔깔... 사랑을 했을까.' 이혼을 마무리한 뒤에도 그의 웃음소리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짙어졌다. 잃어버렸으니 잊어버려야 하는 시절에 대한 상징으로 자리 잡아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곤 했다. 미워하게 된 사람은 눈치도 없이 자꾸 내 안에서 웃었다.

바야흐로 봄. 산책을 나갔다가 한 무리의 남학생들과 마주쳤다. 교복 입은 어깨를 흔들며 소란스레 웃는 모습을 보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기억이 안 나. 그가 어떻게 웃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 전남편의 웃음소리는 언제 사라진 걸까. 서서히 조금씩 빠져나간 걸까? 어느 날 단번에 증발했을까? 괴롭고도 소중한 기억이 없어져서 살짝 쓸쓸했지만 곧 무지 홀가분해졌다.

우리가 헤어지던 당시 11개월이던 딸은 이제 네 살이다. 딸은 나를 꼭 닮았다. 크게 웃을 때나 인상을 쓸 때만 전남편의 모습이 나온다. 끝으로 갈수록 넓게 퍼지는 눈썹과 고집스러운 눈매, 미간의 주름. 딸이 자신을 많이 닮지 않아서 그는 약간 억울하려나, 그렇진 않을 것 같다.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 충분히 사랑하고 미워했던 연인의 기록이 공평하게 반반씩 새겨져 있을 테니까. 서로에게 던진 날선 말들의 모서리가 뭉툭해지면 나는 전남편을 만나 다시 농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웃는다면 나는 '내 딸의 아버지는 웃음소리가 좋구나. 다행이네....' 초연히 감탄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