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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가 어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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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태어난 해의 두 글자, 월의 두 글자, 일의 두 글자, 시의 두 글자, 이렇게 네 개의 기둥이 서는데 합하면 여덟 글자잖아. 그래서 사주팔자야. 이게 네 원국이 되는 거야." 명리 왕초보인 나는 친구들 앞에서 미간에 주름을 지으며 진지하게 설명했다. 주르륵 뜬 한문을 쳐다보다 질린 친구들은 복잡한 이야기는 사양하겠으니 언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알려달라며 재촉했다. "나 아직 대운, 세운 분석할 줄 몰라." "원래 초보들이 더 신통하다던데. 다시 봐 봐." "그건... 신내림 받은 사람들 말하는 거 아니야? 나는 영험한 능력은 제로고 명리학에 갓 입문했을 뿐이야." 이미 실망한 친구들에게 길게 말을 이어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 나는 사주 카페에서 들어봄 직한 말투로 덧붙였다. "여기 네 월지에 정재가 딱 앉아 있네. 지갑 마를 날은 없겠어." 상황을 수습하고자 사주 용어를 섞어 늦은 대답을 해주었더니 그제야 안심한 친구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떼돈은?" "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재미 삼아 들춰 봤던 〈명리〉(강헌 지음, 돌베개). 한자라곤 월 화 수 목 금 토 일밖에 모르는 내가 간신히 필요한 글자만 익히고 명리 공부를 시작하자 주변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내 어설픈 사주통변을 듣고 흥미로워하거나 '아... 이 사람 또 이상한 것에 빠져버렸어' 사이비 종교 신자를 바라보듯 안쓰러워했다. '운명에 매달려? 신빙성 없는 학문 주위를 맴돌다니 참 한심하기도 하지.' 부정적인 인식을 느낄 때마다 나는 운명론자가 아닌 낭만주의자라고 둘러댔다. 각자가 가진 사주팔자, 원국이 보여주는 풍경과 조후가 신기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라 변명했다. 가까스로 찾아낸 납득 가능한 이유였지만 아주 지어낸 말은 아니었다. 자신을 나타내는 글자 본원과 그 주변 오행들이 풀어내는 인간의 서사. 부대끼고 순환하는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는 일이 정말 즐거웠다. 맞냐, 틀리냐를 떠나 그저 한 사람의 인생 골격을 보고 상상하는 기쁨만으로도 충분히 공부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나쁜 사주는 없다'는 〈명리〉의 문장을 마음에 품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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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뒤로는 유튜브를 보며 다양한 역술가들의 명리 강의도 들었다. 어떤 이들은 '화류계 사주', '사업 실패 사주' 등 자극적인 간판만 걸어 놓고 임상 강의를 했다. 특징이 분명한 '나쁜 사주'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라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났다. 사주에 나타난 흐름이 그 인간의 모든 것이라도 되는 듯 단순화하고 자신의 편향된 가치관을 해석이랍시고 내놓는 경우도 빈번했다. 여성 혐오적이고 보수적인 잣대로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불행을 확대했다. 인간에 대한, 내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듯 보여 안타깝고, 상담가의 균형 잡힌 소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명리 입문자의 의문은 점점 커져간다. 원국의 개성과 시대성을 무시한 방식의 통변으로 사주의 좋고 나쁨을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표면으로 드러난 세속적 자취는 짚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희비의 교차점에서 성장한 인간의 내면은 여덟 글자, 팔자 안에서 찾기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변화하고 움직이는 영혼, 진짜 소중한 것은 전부 사람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