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새난슬 Headshot

딸의 학교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1

"할아버지가 영어 가르쳐줬다. 샬라샬라 샬라라. 히히." "그거 영어 아니야." "영어야!" "저기 책 가져와. 엄마가 가르쳐줄게." "싫어. 샬라샬라." "영어 아니라니까!"

나의 아버지는 왜 내게 시련을 주시나. 기껏 영어라고 가르친 것이 샬라샬라 샬랄라라니. 네 살 아이가 장난치는 걸 진담으로 받아들인 나는 알파벳 노래를 틀고 따라불렀다. "에이비시디이에프지" "아비시비이비디! 샬라샬라!" "너 진짜 그럴 거야?" "그럴 거야."

딸이 일부러 약 올리는 듯해서 부아가 치밀고 가슴이 갑갑했다. 파란색을 보고 빨간색이라고 하질 않나. 네 살이면서 세 살이라고 우기질 않나. 오른손! 하면 왼손 내미는 엉터리 영어 구사자가 평소에 하는 늦된 행동들이 모두 떠올랐다. '또래보다 뒤처지면 어쩌지' 위기감이 느껴졌다. 다른 부모들이 어떤 마음으로 조기교육 열풍에 합류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지냈을 뿐 내게 확고한 교육관은 없었던 것이다. 미풍에도 강풍 맞은 듯 휘청이는 갈대. 사소한 계기가 조바심에 불을 지핀다. 인터넷 쇼핑몰을 탐색을 하며 유아 교재를 장바구니에 쓸어 담는데 딸이 이번에는 아기 말을 하겠다며 다가왔다. 옹알옹알. 아기 말은 옹알옹알. 혼자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같은 패턴으로 여러 언어를 구사하더니 마지막으로 '도깨비의 말'을 한 후 딸은 '너무 재밌지?' 실눈을 뜨고 폭발하듯 밝게, 크게 웃었다. 공기 중으로 흩어진 행복감, 몽글몽글 실없는 웃음이 내게도 번졌다. 아이가 뿜어낸 기쁨을 흡수해서 쥐어짠 소리는.... 흐흐흐.

왠지 음흉했다. 딸만큼 신나게 웃는 법도 모르면서 나는 아이에게 뭘 가르쳐보겠다고 부글부글 끓었을까.

딸의 세계는 나의 것보다 훨씬 근사하다. 영어도 한글도 숫자도 모르는 아이는 내가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다. 그곳의 풍토와 거주민의 모습은 딸의 상상에 따라 변한다. 솜사탕 만드는 언니가 사는 달콤한 자매의 집, 팬케이크만 훔치는 괴물이 숨어 있는 아침밥 도둑의 산, 나쁜 곰이 통치하는 버려진 장난감의 숲. 만화와 동화, 딸에게 흘러들어온 이야기들은 콜라주가 된다. 현실과 상상이 뒤섞여 예쁜 소용돌이를 만든다.

나는 잠든 동심을 깨워 딸의 문장을 이해하려 하지만 자꾸 길을 잃는다. 이성으로 저항하는 나와 달리 딸은 혼란한 이야기의 파도 속에 주저 없이 몸을 던진다. 내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를 때조차 가만히 듣지 않고 매번 개입한다. 장난감 도둑이 와서 경찰을 불렀더니 밉다던 도둑과 동반 도주하고, 딸을 잡아가려는 괴물을 동굴에 가둬 놓았더니 바로 풀어주며 해방가를 부른다. 자주 정체를 바꾸는 딸은 입체적 인물 묘사를 즐기는 시나리오 작가이며, 진정한 무정부주의자, 때론 열렬한 평화운동가다.

나는 딸의 무구한 감성과 충동이 부럽다. 내게도 화폐 없이 미지와 조우할 수 있었던 날들이 있었다. 터무니 없는 일로 내가 나를 웃기고 즐거워하던 능력이 있었다. 세상의 지루한 부품(그러나 통념과 아직 투쟁중이라 자위하는...)이 되기 전에는 말이다. 촉촉한 새싹 같은 딸에게, 색의 명칭을 알거나 글자를 이해하는 일은 아직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을 한껏 즐기는 아이에게 '미래'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공부하라 재촉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진짜 제대로 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딸이다. 그러니 교육이 필요한 대상은 딸이 아니라 나다. 엉터리 상식과 강박, 조바심을 제거하고 딸의 나침반을 보는 법을 익혀야 한다. 나는 진지하게 '너를 가르쳐 줘' 부탁하고 딸의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 샬라샬라 희한한 외국어. 남들은 모르는 언어로 농담하며 배꼽이 빠지게 웃고 싶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