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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어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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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소심하다. 솔직하지만 방어적이다. 인맥이 좁고 활동도 제한적이다. 지인들은 내 성격을 읊으며 의아해 한다. "넌 처음엔 센 캐릭터 같은데 알고 보면 겁도 많고, 부끄러워하고.... 물론 실망하진 않았지만 (실망했다)." 나는 내성적인 다혈질에 가깝다며 부연 설명하고 사람들에게 추가 경고를 보낸다. 첫인상과 다르다는 말이 기분 좋은 적은 없었다. 마치 나의 사회적인 페르소나(그냥 SNS 인격)나 외모의 요란스러움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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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0여 년 전. A백화점 1층 로비 분수대에 기계인형이 들어있는 꽃 조형물이 있었다. 나는 특별한 날에만 작동하는 예쁜 인형을 꼭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드디어 어린이날 행사 당일, '꽃의 요정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아요' 이벤트가 열렸다. 분수대 앞은 인형에게 질문을 하려는 어린이들로 북적였다. 인형을 볼 수 있어 기쁘긴 했지만 마이크를 들고 질문하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멀리서 보는 인형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두려웠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조심스러운 아이였고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너무 내성적이라고 걱정했다. 사람이 좀 더 적극적이어야지, 나는 엄마의 손에 떠밀려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 차례가 와서 마이크를 손에 쥐었을 땐 요정이 상냥하게 여러 번 '뭐가 궁금하니?'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덜덜 떨다가 뒤로 밀려났다. 다른 아이들은 잘하는데 너는 왜 아무 말도 못했어? 엄마를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너무 한심해.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주춤거리다 엄마를 놓치기까지 했다. 맙소사, 나는 에스컬레이터도 무서웠다. 겁 많은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대체 내 딸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그런 표정이었다. 분수대 인형 사건 이후로 나는 성격을 개조하리라 다짐했다. 엄마가 강조하는 대로 좀 더 외향적인 아이가 되고 싶었다. 조용한 나를 다그치고 명랑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으며 전투적으로 적극적인 아이가 되었다. 초등학생이 되어 악동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을 때 나는 '그래, 이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어.'

"어릴 때는 지금 하고 달랐는데, 정말 순했어." 변해버린 딸의 유년기를 회상하는 엄마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가자미 눈을 뜬다.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이렇게 된 건데. 극과 극을 횡단하다 겨우 안착한 지금의 성격을 유난스럽다 얘기하면 더는 할 말이 없다. 정말 치열하게 나 자신과 투쟁하며 이 놀라운 인격을 형성했다니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성격의 상반된 면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하도 지적하니 이제는 무엇이 진짜 내 성격인지 나도 헷갈릴 지경이다. 운동회 편 가르듯 내향적, 외향적 두 가지로 구분하면 편하겠지만 인간은 원래 복잡하다. 소심한 성격도, 그것을 고치려던 투지도, 또 어중간한 자리에 주저앉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소' 중얼거리는 것도 나다. 더는 과도한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게으름까지 합세하여 알 것 같은데 모르겠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소심하든 적극적이든 사람에게는 다 세상을 살아가는 저만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작가라면 자기 캐릭터가 분명한 게 좋지 않겠어?" 충고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분수대 인형의 교훈을 아는가? 다들 어찌어찌 살아가게 되어있다네." 뜻 모를 말을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