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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만두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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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자주 딸의 정수리 냄새를 맡는다. 한 번도 가지 못한 곳. 그러나 늘 그리워했던 곳의 냄새를 풍기는 정수리에 코를 묻으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유대감과 사랑이 마음속에서 모락모락 피어난다. 내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아이의 온도는 따뜻하고 다정하다. 세상에서 제일 이쁜 사람. 또 최고 웃기는 사람. 딸이 기발한 말들을 종알거릴 때마다 난 어깨를 들썩이며 껄껄 웃는다. "너 너무 웃겨, 진짜 멋있어."

아, 모성애는 신성함 그 자체!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여성의 삶은 '완전'해지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더 깊은 인생이 눈앞에 펼쳐질 거라던, 사람들의 말을 난 전혀 믿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 새끼가 있는 지금은 어떨까? 그거야 당연히, 지금도 믿지 않는다. 왜냐면 진실이 아니니까. 엄마들의 사랑과 투쟁. 그 치열한 일상을 싸잡아 미화시킨 모성 신화는 정말 헛웃음 나는 이야기다. 퇴로가 없는 어미의 길 위에 선 수많은 여자들. 점점 길어지는 '당연한 희생'의 리스트와 피로, 박탈감, 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성토는 정말 단죄되어야 할 여성의 미성숙함이고 이기심일까. 평생 숨기고 살아야 하는 부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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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한테 왜 이래?" 사랑스럽던 딸의 반전. 유아가 부릴 수 있는 심술과 근력의 최대치를 발휘하며 소리를 지르고 나를 때린 날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왜 이러냐고." 감정 조절이 안되는 유아와 감정 조절에 실패한 삼십 대 중반 여성의 소용없는 대화. 모성과 이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차마 뱉지 못하고 억지로 삼킨 말은 '왜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이렇게 사는데'. 참 처량한 나의 붙박이장 인생. 억압되고 삭제된 욕망들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아이와 함께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너 이런 사람 아니었어, 네 정체성과 이상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자기 연민에 빠져 구명조끼도 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노라니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엄마. 그만하고 싶다. 육아의 블랙홀, 똑같이 반복되는 삶을 찢고 예전의 나에게 돌아가고 싶다....

꽤 대단했다는 듯이 회상하는 과거의 나는 내가 기억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허상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도 죄책감 없는 자유를 다시 한순간이라도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자식이 상팔자, 극단으로 치닫는 상상. 그러나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마음을 들여다보면 내 안의 현인이 '너는 이제 절대로 그녀 없는 삶을 살 수 없어' 부정 못할 메시지를 읊조리고 있다.

그날 딸과의 전투로 욱하는 마음에서 구입한 책 <엄마 됨을 후회함>(오나 도나스 지음)을 읽다가 나의 심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에이드리언 리치의 문장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나에게 생전 겪어보지 않은 지극히 격렬한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모순되는 고통이다. 쓰디쓴 불쾌감이나 찢어질 듯한 신경과 황홀한 충족감과 부드러운 다정다감함 사이의 극단적인 변화다." 맞다. 소화하기 힘든 반대 감정의 양립. 딸을 몹시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엄마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은폐하고 싶지는 않다. 후회 이면의 감정을 해체하고 분석하고 싶다. 나는 다 자란 딸에게 엄마로서의 희생을 이야기하는 대신 내가 겪은 진실, 여성이 살아온 현실을 알려주고 싶다. 고통과 실패의 수집가. 난 흑역사의 트로피들을 진열장에 넣고 기록하는 것을 즐기지만, 그 진열장에 딸의 존재는 없다. 아직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고 사랑할 날들도 많다. 웃기고 힘든 말, 전투육아. 엄마가 전사가 되어야 살아남는 이 전장에서 손자병법식 철학은 없다.

여성들의 광장 '평판 나쁜 엄마'의 깃발을 든 나는 불순하게 살기로 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