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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bad)타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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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딸은 잠들기 전에 유독 말이 많다. 한국어 초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가는 시기인지라 어휘력이 풍부하진 않지만 자신이 가진 단어를 총동원하여 다채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한다. 왜 하필 자기 전에 말이 많은 것일까. "이제 자자." 유아 연설의 종지부를 찍고자 아이에게 수면을 권하면 딸은 제 본심을 드러낸다. "자기 시러, 앙 자." 잠들기를 거부하는 딸의 앙탈이 시작되려는 낌새가 보이면 나는 멋대로 지어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서양식으로 '베드타임 스토리'(bedtime story), 우리 말로는 잠자리 동화, 이상한 엄마가 지어낸 환상(황당) 세계의 이야기. 다람쥐가 문어에게 다리 하나만 달라고 생떼를 부리고, 소피아 공주는 옷걸이로 우주 대마왕을 무찌른다. 어설픈 작가의 즉흥 동화를 골똘히 듣는 딸은 간간이 등장인물을 추가하고 또 주인공으로 참가하며 더 흥분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어쩔 수 없이 '악의 존재'가 나타난다. 착한 이야기에 잠들지 못하는 아이에게만 나타난다는 미지의 괴물. "밤은 괴물들의 시간이야. 밤에 안 자는 아이는 새카만 괴물이 확 잡아간대". 유아용 권선징악의 전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딸의 안위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고 선언해야 아이는 "나 자. 자꺼야." 이불 속에 숨어 꼼지락거리다 잠이 든다. 딸을 겁박하여 잠재운 나는 기분이 영 찜찜하다. '공포심을 자극한 수면 유도는 어리석다'. 잘 알면서도 최후의 수단, 그 편의성 때문에 자꾸 "들려? 어둠 속을 걷는 괴물의 발자국 소리!" 드라마틱한 엔딩을 선택하고 만다. 위안이랍시고 중얼거리는 것이 "내 딸은 괴물들을 참 좋아해서...." 그러나 내게는 다른 변명거리도 있다. 예쁘고 고운 이야기만 들려주려고 해도 우리가 사는 현실은 기괴한 '배드타임 스토리'(badtime story) 그 자체가 아닌가. 아이를 꿈 길로 인도하기엔 실로 부적절한, 나쁜 나라의 이야기. 요즘 뉴스들에 비하면 어둠 속에서 뭉그적거리는 괴물은 그나마 귀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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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씰!" 부스스하게 일어난 딸이 사과를 집어먹다가 외쳤다. 뉴스 중독 상태로 지내는 가족들의 대화를 듣고 외운 이름 하나.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생각하다 결국 폭소했지만 자신이 외친 이름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모르는 딸은 거듭 그 이름을 불렀다. "최순씰, 최순씰." 난감함도 잠시. 나는 그 상황을 동화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겨우 쥐어짜낸 말이 "나쁜... 사람이야(더 나쁜 사람이 하나 더 있는데 그 이름은 네가 즐겨 타는 그네와 발음이 비슷하지)." 눈치 빠른 딸은 최순씰이 만만한 캐릭터가 아닌 것을 알고 내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는 최순씰이 무서워? 싫어?" 내가 머뭇거리자 할머니가 나서서 "싫지, 싫어, 우리는 안 무서워해" 수습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잠자리 동화 속 악당들은 당연한 듯 제 죗값을 치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니까. '최순씰' 무리를 물리칠 정의로운 용사, 죄를 깨닫고 자리에서 물러날 사악한 여왕, 고개 숙이고 흩어질 악당, 주술에서 깨어날 어버이들이 작금의 '배드타임 스토리'에 등장할 수 있을까? 괴담이 되어가는 역사, 촛불 든 시민들이 '대통령 사퇴' 그 꿈이 실현되길 염원하며 투쟁하는 나날,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떤 엔딩을 맞을까? 남녀노소 모두를 악몽으로 안내하는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만약 우리가 뒤틀린 이야기에 저항하는 작가, 역사 속 살아있는 인물, 주체로 참여해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다가올 미래는 암담할 것이 뻔하다. 딸은 아직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뒤늦게나마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최순씰은 싫지만 엄마가 진짜 무서워하는 것은 내 안의 무기력이야. 보이지 않는 세력에 조정 당하니 체념하자는 무기력. 불신과 분노의 또 다른 얼굴 냉소. 네게 그것을 물려줄 수 없으니까 나도 촛불을 들 거야, 이야기 속 작은 조연들,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과 함께할 거야."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