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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혹은 ㄱ, ㄴ으로 불리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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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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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A이고 B이고 C이고 D 다. 아니면 ㄱ 이거나 ㄴ, ㄷ, ㄹ이다. 알파벳과 한글 초성으로 불리는 가해자들이 지금 어떤 심정으로 지내고 있는지 상상해본다.

정의 구현사제단과 홍위병이 결합되었다며 뒷짐지고 비웃고 있거나 "거 봐, 형 내가 뭐랬어. 조금만 참아. 다 지나갈 거야" 서로를 다독이며 술잔 기울이고 '미친년들' 중얼거릴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공론화에 치를 떨면서 '예술 모르는 무지랭이들' 허위로운 선민의식으로 자위하고 있는 자도 있을 것이다. 고급한 언어로 자신의 모순을 윤색하며 따봉과 갈채를 받는 소셜 미디어의 품으로 돌아올 타이밍을 엿보고, 컴백과 동시에 '억울한 자의 변명'을 아리땁게 써낼 구상을 하고 있는 자도 있을 것이다. 큰 놈 잡지 왜 억울한 우리를 조지냐, '마녀사냥'은 그들이 가장 즐겨 쓰는 말이 되지 않았을까. 보이지 않는 실세, '구조를 바라보라니까 멍청한 것들' 피해자들이 무지하다며 알코오오올에 젖어 휘청거리고 있지 않을까.


문단, 미술, 영화, 사진, 인디씬 그 외 수많은 곳의 성폭력 관련 글을 읽다 보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문단, 미술, 영화, 사진, 인디씬 그 외 수많은 곳의 성폭력 관련 글을 읽다 보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피해자보다 방관자로 살았던 세월이 더 길었던 것 같다. '농담인가? 시시한 농담인가?' 내가 가볍게 여겼던 성추행들도 다른 여성들에겐 깊은 상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겐 '그것도 섹드립이라고 치냐? 상상력이 미천하군' 그런 하드코어 자만심이 있었다, '나도 질 수 없지 저 등신들' 같은 방어기제가 있었다). 가해자들의 '진심, 진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워딩으로 가득한 사과문만큼이나 나의 묵인이나 뒤틀린 대응도 참 비겁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은 섹드립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만해 닥쳐, 여기서 그거 재밌는 거 너 하나야'. 지금도 유유상종 머리 맞대고 지긋하게 취해 서로를 위로하고 고소 전략이라도 짜고 있을 파렴치한 이들을 생각하면 분노마저 느껴진다.


나는 그들의 저열함이, 찌질한 행실이 '보편적 인간 욕망을 탑재한 위대한 예술가의 /쫌 봐줘/ 근사한 모순'의 이름으로 용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는 성폭력 사건들을 보며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모르는 그들의 사정이 있겠지' 피해 사실을 축소하고 질 나쁜 연애사건으로 분류한 채 '그러니까 행실 바르게 하고 다녀' 피해자들에게 손가락질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들에게 익숙한 '꽃뱀 플롯'을 읊으며 '걔가 먼저 꼬셨다네'로 시작하는 기승전결을 보고 싶은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며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지 혼란스러운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공론장에 끌려 나온 이들이 내민 헛웃음 나는 사과문을 읽다 보니 혼란스러운 마음이 단번에 증발했다. 그들의 폭력성은 성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예술가여서 예민하고 고독하고 유혹에 취약하다는 이미지로 자신에게 호감을 품은 이들에게 접근. 심리적인 거리가 좁혀졌다 싶으면 그녀들의 성뿐 아니라 감정마저 착취하고 이름 없는 관계에 발을 묶어두는 사내들이 있다. 정말 있다. 자신들의 권력이나, 정서적 유약함을 앞세워 무상의 감정노동과 무한한 지지, 애정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영감, 권태로운 삶을 자극할 다음 타자를 물색하는 이들이 기생충과 다를 게 뭔가. 후안무치, 나는 그들의 저열함이, 자기 손으로 낳은 작업을 배신한 그들의 찌질한 행실이 '보편적 인간 욕망을 탑재한 위대한 예술가의 /쫌 봐줘/ 근사한 모순'의 이름으로 용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피해를 입고도 입을 다물거나 자신의 재능 펼치지도 못한 채 움츠러드는 일, 이젠 없어져야 하지 않은가.


나는 소셜 미디어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다고 여기지만 그 안에서 나의 위치를 대단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페이스북의 친구들 대부분이 사실 '정태춘 팬입니다' 인 것을 ㅋㅋ 잘 알고 또 나의 글이나 다른 작업들의 사회, 문화적 가치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분한 일상을 투덜대는 글이 미칠 파장이나 호소력도 실로 초라하다는 것이 소셜 미디어에서의 나의 위치에 대한 평가다. 페이스북 상에서의 팬덤을 운운하며 매체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나는 그들의 중의 하나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참 식상한데 멋져) 한참 예민한 주제인 성폭력 관련 글을 적고자 한 이유는 내가 정의롭기보다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발목, 몸짓, 표정, 그녀만의 멋진 광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자랄 내 작은 미치광이가 어떤 식으로라도 권력을 권력인 줄 몰랐다 시치미 떼며 거들먹거리는 남성들에게 농락당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지금의 이 악의적인 순환, 못된 관습(이니?)이 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내 딸뿐 아니라 창작자로 활동하는 다른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눈치 보지 않고 쏟아내고, 소란을 떨고, 창작할 권리가 주어지길 바란다. '목욕하자, 목욕할랭?' 소리만 듣고도 온몸으로 저항하는 딸의 모습(광란의 세 살). 언젠가 다 자라 사회에 나가더라도 그녀가 속한 곳에서는 지금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불길이 활활 유지되길 원한다. 피해를 입고도 입을 다물거나 자신의 재능 펼치지도 못한 채 움츠러드는 일, 그런 전개가 '자연스러운'-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착취 이젠 없어져야 하지 않은가.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까지도 내 글을 읽고 코웃음 치며 시니컬한 댓글을 달(혹은 침묵했다가 살금살금 가해자를 위한 문장을 마련하실 몇 명)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 '절대 성폭력과 관련해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글을 쓴 동기가 이기적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다 해도 오늘은, 내 쟉디 쟉은 목소리로 꼭 밝히고 싶다.

#00_내_성폭행 경험을 어렵게 토해내고 공유하고 연대하여 싸워나가는,
힘든 결정을 한 모든 여성분들을 지지합니다.
해쉬태그로 시작된 움직임이 모든 영역에서 뜨겁게 일어나,
깜놀하여 투명인간 인 척 하는 남자들 까지도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인식하고
이 진통을 함께 겪으며 나아가길 바랍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