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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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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인스타그램은 폼 재는 힙스터들이나 하는 거지." 몇 년 전 미드에 나온 대사를 듣고 인스타그램은 나를 위한 플랫폼은 아니겠구나 짐작했다. 먹고 입은 것을 기록하는 데 별반 관심이 없는데다 트렌디한 사람도 아닌데 어찌 감히 인스타그램을 하겠는가. 내게는 이미 페이스북이 있지 않은가. 페이스북은 나의 성향에 딱 맞는 소셜 미디어였다. 사진과 동영상, 장문의 글을 게시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좀 더 산뜻한 플랫폼을 원하는 친구들은 천천히 페이스북을 떠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이사한 그들의 일상을 기웃거리기 위해 나도 뒤늦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당도한 그곳은 신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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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페이스북을 떠난 이유 중의 하나는 인스타그램이 훨씬 감각적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서사 중심이라면 인스타그램은 이미지가 중심이다. 정치색도 옅고 논란이 있다면 대체로 연예인에 관한 것이다. 예쁜 사진들의 나열, 인스타그램에서는 글을 쓰거나 읽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사진첩 같은 인스타그램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전부 근사한 일상을 즐기는 듯이 보인다. 개개인이 발행하는 패션, 인테리어, 푸드 매거진 같달까. 인스타그램의 하트는 따봉만큼이나 쉽게 건넬 수 있는 호감의 표시다. 가혹하게 묘사하자면 타인들의 허영, 미화를 눈감아 주고 서로에게 하트를 보답하는 나르시시즘 대잔치다. 편집된 현실의 작은 조각을 올리는데 인스타그램보다 더 적합한 플랫폼은 없다. 사기꾼과 셀카라는 말을 합친 #셀기꾼, 현실과의 간격, 귀여운 자괴감 섞인 해시태그가 유행했던 것은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의 양심이 움직인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너도 뻥치고 나도 뻥치고 알 사람 다 알지만 잘생긴 나에게 하트 뿅'. 내가 나 같지 않은 사진을 올리고도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곳. 관대하고 (갖은 물질로) 풍요로운 인스타그램이여! #소통해요 해시태그가 남발하지만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이 정말 선호하는 것은 적절한 거리감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감정을 단어, 단어 다 받아낼 수 없어요, 우리 짧고 강렬하게 소통해요'. 똑같은 심경을 호소하는 게시물이라도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과는 다른 방식의 교류를 제안한다. 페이스북이 공유, 공감을 위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한다면 인스타그램은 더 즉각적이지만 구차함이 제거된 입장을 '보여 줄 수' 있게 되어 있다. 오늘의 기분을 대표하는 사진 아래 이모티콘과 뒤섞인 몇 줄의 글. 읽지 않아도 좋아, 오늘 내 마음이 이렇게 생겼어. 스크롤, 하트, 스크롤, 하트.

하지만 피상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스타그램의 검색 기능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전 세계 예술가들의 작품을 담은 거대한 포트폴리오, 뛰어난 아카이브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작가의 이름을 치면 그 작가의 전시장 풍경, 최근작을 빠르게 접할 수 있고 매일 신선하게 올라오는 작품과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장르가 무엇이든 아주 간단하게 찾을 수 있어 '뒤지기 모드'로 전환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래서 검박하고 진지한 나는 순전히 예술가의 마음으로만 인스타그램을 사용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 솔직히 내가 인스타그램에 푹 빠지게 된 계기는 바로 #셀기꾼 때문이었다. 나는 사각형 속의 사기꾼. 사랑에 굶주린 자. 뷰티 앱으로 하얗게 세탁된 피부에 감탄하며 '나 역시 아리땁지?' 사진을 게시하며 착각할 수 있는 순간은 얼마나 황홀한가. 소셜 미디어의 세속성과 뻔뻔함, 어차피 우리 모두 관음과 배출의 죄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특히나 요즘 같은 때에는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게 보인다. 진심을 가장한 문장, 교활한 단어들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글보다 뻔한 속물티 팍팍 풍기는 이미지가 더 정직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shallow_senan 과 #셀카그램의 이름으로 화사한 인스타그램에 하트를 날린다. 초라한 하루를 보정하며 그 세련된 때깔에 자꾸 반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