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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다 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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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연필과 나는 권태롭다. 연필 쪽이야 늘 하던 대로 내 곁에 있을 뿐이지만 난 연필에게 완전히 질려버렸다. 슬픈 일이다. 어떤 식으로라도 그림을 그리려면 연필을 잡아야만 하는데도 나는 내 작업의 시작이 늘 탐탁지 않다. 그래서 콜라주를 하거나 붓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 다른 상대를 물색해왔지만 연필만큼 친절한 안내자는 없었기에 다시 연필로 돌아오게 된다. 서투른 이미지의 출발은 연필이었으되 완결을 함께 맞이하고 싶은 것은 연필이 아니어서 나는 다른 표현 방식을 찾고 있었다. 보다 빠르고 즉흥적이며 언제나 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무엇.

인스타그램으로 외국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을 보며 자괴감에 빠져 있던 중 자수를 만났다. 고등학교 가사 시간 이후로 접해본 적이 없으며 자수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요즘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자수들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국에도 유행 중인 프랑스 자수부터 온갖 주제를 담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집요함을 선보이는 다양한 패브릭 아트. 놀라운 자수들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으려니 어느 순간 '나도 한번 해보자'는 시동이 걸렸다. 위험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자수 실과 천, 수틀만 쌓아놓은 채로 '도저히 못 해' 집에 짐만 늘리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아무렴 나도 할 수 있지'는 우리 가족에게 흐르는 피다. 종이공예, 목공예, 가죽공예, 홈패션 및 액세서리 디자인까지 우리 가족이 거쳐간 수공예의 이력은 꽤 길다. 창의적인 삶의 방식이지만 문제는 도중에 열기가 식어버린다는 데 있다. 그렇게 쌓인 짐은 죄책감으로 남고 열정의 작업들은 그저 조그만 추억을 방울방울 내뿜을 뿐이다. 나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실과 자수가 공간을 얼마나 차지할 것인가. 내가 자수의 작업 속도를 참아낼 인내심의 소유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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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를 되짚어가며 명상의 시간을 가지려다 실패. 수틀, 리넨, 예쁜 무늬의 천들, 100개가 넘는 자수 실과 바늘들이 순식간에 내 책상 위를 점령했다. 급한 것도 악덕이다, 침울해질 시간도 없이 나는 도안을 짜고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빠져버렸다. 물론 자수 작업 속도는 내 사랑의 스피드에 관계없이 거북이걸음. 도안을 그리고 천을 다리고 그 천에 그림을 다시 옮기고 수틀에 넣고 바늘귀에 첫 실을 끼울 때까지의 과정 자체도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너무 느려터졌다. 하지만 왜인지 실이 달린 바늘을 들고 천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을 때마다 기묘한 쾌감이 몰려왔다. 어차피 빨리 못하니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성인군자 모드. 성급한 덜렁이라는 자기 규정과의 한 땀 승부. 그리고 자수가 완성되면 느껴지는 '오르가스믹'한 성취감. '와 내가 이걸 다 끝냈단 말이야? 내가?' 자수를 시작한 지 고작 두 달이어서 결과물은 초라하지만 바늘과 나는 안다. 우리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으며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났는지. 그렇기 때문에 꾀죄죄한 완성품이 나오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숱한 직사각형들과 대면하다 만난 동그라미 수틀. 그림을 천천히 천을 메워가다 색이 들어간 것을 확인하며 느끼는 보람은 지금의 내 인생과도 닮았다.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삶. "붙박이장 같이 살죠, 흐흐." 꼼짝 못 해 집에 눌러 앉았다며 농담처럼 던지는 나의 근황은 슬픔과 체념이 뒤섞인 것이었다. 빨리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자수의 과정을 겪고 있노라면 작업 자체가 내 삶의 은유인 듯하여 마음이 가벼워진다. "한이 맺혀서 자수하냐?" 공연한 깐죽거림을 듣다가 히히히 싱겁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단절 속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과 바늘, 실과 나, 아주 조금씩 선을 더하고 면을 더하며 '살아있다, 하고 있다, 진행 중이다'. 연필이 권태로워 어디 빨리 가려다 만나게 된 자수가 나에게 느리고 기쁜 삶의 미덕을 한 땀 더 가르쳐주길 소원한다. 바늘의 뾰족한 끝은 언제나 제가 갈 길을 정확히 알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