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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데 간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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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착한 돌싱 한번 찾아봐. 재혼해서 잘 사는 사람들도 많다더라. 돌싱에게는 또 돌싱들의 세계가 있더라고. 가끔 듣는 얘기다. 애정 섞인 조언이지만 마치 나를 조각 잃은 퍼즐로 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게다가 끼리끼리 잘해보라는, 동일한 조건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 관계가 성사될 것이라 말하는 몇몇 지인들의 편견을 소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해는 한다. 이혼이라는 아픈 과정을 거친 사람들끼리 말이 잘 통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돌싱을 결핍된 종족쯤으로 여기며 제한된 범주 내에서 그 빈틈을 채워보라는 사람을 만나면 몹시 피곤하다.

돌싱. 돌아온 싱글. 농담처럼 가볍게 오가는 단어를 듣고 제법 진지하게 상상해본다. 이혼한 사람들이 돌아온 곳은 어디일까. 다시 싱글이 되었으니까, 가기(결혼) 이전에 머무르던 장소로 온 것일까. 슬프고 웃긴, 기묘한 광경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누군가 입구에 서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준다면 어떨까. 수만번 되풀이했을 위로의 말로 돌싱 월드의 절차를 밟아주는 이름 없는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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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상처, 분노, 비탄, 우울도 데리고 오셨네요. 어쩔 수 없지요. 대부분 그래요, 그래도 일단 홀가분한 분들부터 두고 가셨던 싱글 배지를 다시 달아드리겠습니다. 이번엔 행운이 따르길 바랍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돌아오신 이곳은 예전과는 조금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돌아왔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돌아갈 장소가 필요한 것 같아 붙인 이름입니다. 돌아온 곳은 안전하지요. 딴 데 간 싱글은 어감도 안 좋고 위험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아이가 있으신 분들은 A섹션으로 혈혈단신인 분들은 B섹션으로 가세요. 재혼의 이혼율이 초혼보다 높다고 하지만 우리는 늘 꿈을 품고 살아야죠. 대중매체의 영원한 테마, 치유로서의 사랑, 가족애, 정상성 회복, 그걸 이룩하신 분들의 커플사진은 재혼의 전당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둘러보시고 영감과 투지가 샘솟는 걸 느껴보세요.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얘기가 있습니다. 나는 혼자라도 완전하다, 결혼은 부조리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X섹션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격리 병동입니다. 삐딱한 부적응자들이 모인 곳이죠. 어이! 거기 어린 딸과 고양이도 데리고 있으면서 '고독해도 괜찮아' 허세 떠는 여자분(나요?) 그쪽으로 이동하시는 것이 좋겠네요. 우리 돌싱 월드에서는 불온한 사상을 가진 분들이 악영향을 줄 것을 염려해서 빠른 조치를 취하려고 하는 편이니까 대의를 위해서 좀 잽싸게 움직여주시죠.

상상 속의 나는 당황한다. 저요, 전 사랑이 좋아요. 미래의 연인도... 마음의 준비가 되면 환영이에요. 하지만 내 곁에 꼭 누군가가 있어야만 과거 완전 회복, 애정형 인간으로 보일 것이란 압력에 나를 맡기고 싶진 않아요. 할 말이 많아서 얼굴이 벌게졌는데 나는 그만 쫓겨나고 만다. 내가 아주 모르는 곳으로.

이혼, 고통스러웠던 과거와의 작별. 거친 물살을 뚫고 겨우 헤엄쳐 나온 사람에게, 몸이 마르기도 전에 짝을 찾으라 종용하는 것이 답답하게 들리는 것은 나뿐일까. 내 두 발로 홀로 선 곳에서 천천히 고독을 음미할 시간도 주지 않고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싱글은 커플의 전 단계, 불안과 미완의 상태라는 통념은 한참 과거의 것이 아니었던가. 내가 누구를 만나든, 만나지 않든 나의 결정과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것이 당연하다. 나는 킥킥 웃으며 이혼녀예요, 돌싱입니다, 싱겁게 굴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내게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권리가, 모두를 사랑할 권리가 있어. 바로 내 상처와 욕망이 부여한 권리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나는 딴 데 간 싱글이고 그곳의 규칙은 내 맘대로야!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