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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독서 방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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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마도 3분단. 첫번째 줄. 교탁과 마주한 자리에 앉아 있으니 선생님의 시선이 바로 내 책상 위로 떨어졌다. 내가 교과서에 낙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우개 똥을 뭉쳐 동물이나 만들며 장난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훤히 다 보이는 위치였다. 나는 열한살이었고 담임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는 초등학생이었으므로 나 자신도, 내가, 수업 중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쉬는 시간에 읽기 시작한 책을 수업 시간에도 교과서 대신 펼쳐 놓고 읽다니 그건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다. 특히 선생님이 코앞에 있을 때.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속한 현실 세계를 완벽히 잊은 채 책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새로운 세계, 신비한 이야기에 몰입한 나는 책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게걸스럽게 문장을 따라다니며 나의 모험을 완수 중이었다. 나를 황홀한 읽기 체험으로 인도한 책은 <사자와 마녀 그리고 옷장>. 판타지 세계에 입문한 나는 딴 동화를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좀 더 머무르고 싶으니까 끝나지 마, 애원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페이지에 당도했고 책을 다 읽고 덮자 모든 수업이 끝나 있었다. 마치 주인공들과 함께 옷장 밖으로 나온 듯 짜릿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내가 놓친 수업은 무엇인지 의식하지도 못하고 하교했다. 집에 걸어가는 동안에도 내 의식의 절반은 나니아에 두고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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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을 매우 강렬하게 느낀 그날을 난 지금도 잊지 못하고, 그 체험은 나를 다른 책들로 이끌었다. 차곡차곡 지식을 저장하는 유형의 박식한 독서가는 되지 못했지만 나와 맞는 책 한 권만 있으면 근사한 여행을 떠날 수 있음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나는 정말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축복을 내려준 것은 바로 그날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수업 내용과 무관한 책을 읽는 학생을, 몰입의 순간을 인정하고 방조함으로써 나의 첫 체험이 깨어지지 않게 지켜보며 내게 독서의 기쁨을 알려 준 것이다. 그녀의 세심한 배려로 인하여 나는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한 권의 책을 생생하게 겪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매라도 들어서 아이에게 책을 읽게 하라'는 칼럼을 보고 나는 그 선생님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글쓰기 교육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던 만큼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다 읽고 더는 읽지 않는, 집안의 잠든 책들을 학교에 가져와 우리만의 도서관을 만들자고 했고 교실 뒤편에 놓인 키 작은 책장엔 친구들의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책을 관리하기 위해 사서를 뽑았고 그 아이는 책 대출 목록을 기록해 아이들에게 반납일을 재촉하며 잔소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누군가 내가 가져온 책을 읽고 있으면 가슴이 뿌듯했고 서로 초등학생스러운 서평을 나누기도 했다. 곤충도감을 보고 공책에 따라 그리던 화가, 교육용 만화만 즐겨 보며 제일 우스운 페이지만 떠들어대던 코미디언, 고학년의 책을 붙들고 있는 학구파. 아이들의 독서 방식은 다소 산만하고 제각각이었으나 선생님은 절대로 '옳은 독서'를 가르치며 개입하는 법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과정 자체가 매우 진실한 독서 교육이었다. 우리들은 교실의 자유로운 독서 문화를 만들었고 모두가 신나게 즐겼다. 책은 우리를 경직되게 만드는 글자 괴물도 아니었고 반드시 해야 하는 공부, 의무가 아니었다. 그래서 모두들 책과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종종, 그날로 돌아가곤 한다. 교탁과 마주한 자리. 사자와 마녀, 그리고 선생님이 나를 지켜보던 그 신비롭고 맹렬했던 하루. 매 대신 자상한 방조를 선택했던 선생님, 그녀가 말없이 일러준 독서의 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