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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대부분의 논평은 요점을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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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ON JACK
Peter Nicholls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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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on jack

아슬아슬한 표차로 영국이 EU를 떠나게 된 투표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근 아래와 같은 주제들에 대한 논평을 지겹도록 봤을 것이다. 모든 논평들은 진실의 편린을 담고 있지만 전부 기본적인 사실을 놓치고 있다.

비이성적 인종 차별. 이번 투표는 피부색이 짙은 외국인들이 자신들과 함께 있는 것에 분개한 영국인들의 인종 차별적 반응이었고, 영국인들은 그게 EU 탓이라고 오해했다. 영국은 대부분의 EU 가입국들에 비해 출입국관리를 더 엄격하게 한다. EU 가입국 대부분을 자유롭게 출입하게 해준 1985년의 솅겐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입국시 유럽인들은 시리아 인이나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여권을 제시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EU를 경제적 불만의 희생양으로 삼기. 영국은 대부분의 EU 국가들보다 더 조건이 좋았다. 일단 영국은 자신만의 화폐를 유지했고, 통화 및 재정 정책을 스스로 정한다. 그러나 EU의 회원국인 영국은 대륙에 무관세 수출을 하고 런던은 유럽의 주요 금융 센터로 기능한다. 이 모든 게 이제 위험에 처했다.

EU는 각오하고 있었다. 브뤼셀은 고립된, 책임을 지지 않는 관료제이다. 민주적 통제를 넘어서 규제를 시행한다. 옳았든 틀렸던 이번 투표는 잃어버린 국가 자주권에 대한 갈망이었다.

진보적 국제주의에 대한 거부. 영국은 1973년 EU 가입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세계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브렉시트 지지 투표한 사람들은 정보가 부족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것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발등을 도끼로 찍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논평들의 잘못은 무엇일까? 진보주의 국제주의는 한 가지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 말들이다. 1990년대 이후의 EU(그리고 1970년대 말 이후의 대처주의)가 대표하는 국제주의는 거의 금융 엘리트들에 의해, 금융 엘리트들을 위해 운용되었다.

1940, 50년대에 후에 EU가 될 조직이 처음 생겼을 때 국제 체계는 대공황과 전쟁의 잔해 위에서 완전 고용과 광범위한 번영의 경제를 만들기 위해 설계되었다. 그 체계는 아주 잘 돌아갔다.

1970년대의 혼란에 대한 반발로, 1980년대에는 영국에서 마가렛 대처가, 그리고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했다. 그들은 엘리트들에게 이득이 되고 보통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냉혹한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정책을 폈다. 1990년대에 EEC는 더 긴밀한 EU가 되었고, 이 역시 신자유주의의 대리인이 되었다.

규제 완화 정책은 2008년의 금융 몰락과 함께 끝이 났다. 브뤼셀, 프랑크푸르트, 베를린이 강제한 처방인 긴축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병 자체보다도 더 나빴다.

대중의 불만은 커졌지만 이런 정책을 도입한 엘리트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는 체제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 상위 1%는 정책을 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민심을 지키는 데는 실패했다.

브렉시트 지지에 투표한 영국인들은 여러 가지 사실을 잘못 알고 있다는 건 맞다. 그리고 이 투표 결과로 영국의 상황은 아마 더 나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한 경제 체제가 자신들이 아닌 엘리트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파악했다.

EU 개혁이 더욱 멀어졌다는 게 비극이다. 1944년의 정신에 더 가까운 진보적 EU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국의 탈퇴는 긴축을 설계하고 강제하는 앙겔라 메르켈의 독일에 힘을 더 실어 줄 것이다.

유럽 다른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그리스에, 정치적으로 영국 우파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다른 국가들에서도 EU를 벗어나자는 극우 포퓰리스트 운동이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EC의 설립국이었던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이미 이런 운동은 시작되었다. 또한 모든 것을 감안하면 이 두 나라는 EU에서 이득을 얻는 국가들이다.

인종은? 이 투표에서 인종 문제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리고 최근 난민들, 경제적 이민자들이 늘어난 것에 대한 반발만은 아니다. 영국이 제국을 영연방으로 바꾼 1950년대 이래, 영국은 과거 식민지 국가들에 대해 비교적 진보적 이민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충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당근이기도 했고, 죄책감 때문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 토리당 우익 정치인 에녹 파월은 이미 이민자들을 공격하는 캠페인을 펼쳤고, '깜둥이가 이웃이 되기 원한다면 노동당을 찍어라'는 슬로건이 등장했다.

15년 전인 2001년에 이미 영국의 인구 중 백인이 아닌 사람은 8%였다. 전통 산업이 쇠퇴하고 삶의 수준이 떨어지면서 비백인 인구가 늘어나, 경제적 불운과 인종 변화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익 포퓰리즘은 늘 경제적 요인과 이민 배척주의의 혼합이었다. 영국이 완전고용이던 1960년대에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반발이 거의 없었다. 유럽에서 반유대주의는 늘 수면 바로 밑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1920년대와 1930년대 초 독일이 경제 붕괴를 겪고서야 히틀러가 나타났다.

우익 반란은 늘 상당히 비이성적이며, 브렉시트 투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EU와 신자유주의가 자기 편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경제적으로 올라갈 길은 보이지 않고 내려갈 길만 보이는) 영국인들은 진실을 파악한 것이다.

이 투표가 정말 비극적이었던 것은 영국이나 유럽 대륙에 더 나은 것을 제시할 수 있는 깨인 리더십이 없었다는 점이다. 당내 분열을 덮으려고 전략적으로 무모한 도박처럼 투표를 제안했던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는 하나가 아닌 두 가지 결합을 해체한 건지도 모른다. 스코틀랜드가 분리 독립할 경우 EU뿐 아니라 영국도 분열될 수 있다. 그는 네빌 체임벌린에 맞먹는 최악의 영국 총리로 기억될 것이다. 브렉시트에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펼치지는 않았던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도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영국의 두 주요 정당은 현재 혼란에 빠져 있다. 한 가지 긍정적인 면은 생각할 수 있다. 투표는 법적 효력은 없으며, 탈퇴를 위한 리스본 조약 50조는 아직 하원 투표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영국 하원의원 대다수는 브렉시트에 반대한다.

브렉시트가 갖는 함의가 뚜렷하며 영국 자체의 해체까지 의미할 수 있으므로, 하원이 50조 발동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영국은 총선을 앞당겨 치르게 될지 모르며, 어쩌면 정당 재편성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한 당은 영국을 EU에 잔류시키되 평범한 영국인들에게 더 혜택이 가도록 EU를 현대화시키겠다고 맹세하고, 다른 당은 편협한 국수주의를 지지하는 것이다. 나는 현대화를 주장하는 쪽이 이기리라 본다.

정치와 정치적 선택의 이러한 재편성이 없다면 우리는 초 국수주의자들과 네오 파시스트들이 계속 세를 키워가는 암울한 시기를 살게 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Brexit: Why Most Commentaries Miss The Poin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