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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더 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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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E ZELLWEGER
Lucas Jackson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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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이 좋다. 창조적인 삶을 선택하고, 가끔은 의미가 있는 만족스러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축복이며, 그에 따른 대중 앞에 드러난 삶을 산다는 어려움을 겪을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가끔은 굴욕을 겪게 되기도 하며, 침묵이 더 큰 문제를 지속시킨다는 걸 이해하게 될 때도 있다.

2014년 10월에 한 타블로이드에서 내가 눈 수술을 받은 것 같다는 기사를 냈다.

그건 별거 아니었다. 타블로이드가 매일 만들어 내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에 이야기 하나가 추가된 것뿐이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인터넷 상에서 익명으로 잔인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를 부추긴다.

혼돈과 스캔들을 만들어 내서 굴욕을 주는 것으로 이익을 얻는 타블로이드 저널리즘 속에서 진실은 한 쪽의 주장으로 축소된다. 억지로 만들어 낸 스캔들을 파는 사람들에게 자기 입장을 설명하는 것, 재미로 남들을 놀리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이 존엄할 수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건 어리석은 엔터테인먼트이며, 전혀 중요하지 않고, 나는 언급할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TV에 개인적인 비밀이 나오고 관심을 끄기 위해 위해 자신의 가장 은밀한 이야기까지 밝히는 요즘의 '투명한 문화' 속에서 프라이버시를 소중히 여기는 선택을 하는 사람은 의심스러운 캐릭터로 보이는 것 같다. 즉 비도덕적인 행동을 숨겨야 하는 거짓말쟁이로 보이게 만든다. '그녀는 부정했다'는 말은 타블로이드의 '드러난 진실'을 숨기려는 시도로 보여진다.

요즘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란한 인터넷 이야기가 순식간에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때 잔인한 픽션 장사와 상대하는 대신 존엄한 침묵을 선택하는 사람은 조롱을 받을 뿐 아니라 삶의 내러티브를 빼앗길 위험에까지 처하게 된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공개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어서, 내가 더 이상 픽션 캐릭터의 이상적인 외모가 아니라고 내 작업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평론가가 있어서가 아니다. 또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에 어느 여성이 굴복한다면 그 여성의 가치가 줄어든다거나, 그 여성의 개인적 선택을 대중의 법정에서 정당화해야 한다는 역겨운 생각에 저항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어떤 남녀든,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몸에 대한 선택을 스스로 하고 비판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내가 믿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 공정해지기 위해서는 내 삶의 진실들을 되찾아야 한다. 타블로이드의 헛소리가 추측에서 진실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본다는 게 굉장히 괴롭기 때문에 이 글을 쓴다. '눈 수술'에 대한 타블로이드 기사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 기사는 자기 수용, 외모와 나이에 대한 사회적 압박에 굴복하는 여성들에 대한 제대로 된 기사에 내가 포함되는 촉매로 작용했다. 나는 타블로이드의 추측이 주류 뉴스 기사의 대상에 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건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내 얼굴을 바꾸고 눈 수술을 받겠다고 결정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정말이지 그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그랬을 가능성이 존경 받는 언론인들의 토론, 공론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뉴스/엔터테인먼트의 혼란, 외모에 대한 사회의 집착을 보여주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가치가 외모에 의해 측정되었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우리가 사회의 성공을 결정하는데 여성의 참여가 갖는 중요성을 인지하고, 여성이 모든 영역에서 주목을 받는 위치에서 영향을 주는 지도자라는 걸 당연히 여길 정도로 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기여를 축소하는 이중 잣대는 남아 있다. 매일 같이 괴상한 엔터테인먼트의 형태로 우리의 의식에 들어오는 부정적인 대화로 인해 이 이중 잣대는 영속화된다.

너무 말랐다, 너무 뚱뚱하다, 나이 든 티가 난다, 갈색 머리가 낫다, 허벅지에 셀룰라이트가 있다, 주름 제거 수술을 받은 게 아닐까, 머리가 벗겨진다, 배가 나왔다? 못생긴 신발, 못생긴 발, 못생긴 미소, 못생긴 손, 못생긴 옷, 못생긴 웃음. 헤드라인에 등장하는 말들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의 가치를 정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것들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고통스러운 조롱을 피하려면 유지해야 하는 아주 좁은 범위를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로 전해지는 메시지는 젊은 세대와 쉽게 영향 받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그리고 순응, 선입견, 평등, 자기 수용, 괴롭힘, 건강 등에 엄청나게 많은 이슈를 불러일으킴이 분명하다.

어디에나 있는 온라인 및 뉴스에서 굴욕을 주는 타블로이드 이야기, 악의적 비난, 잘못된 정보를 반복하는 것은 무해하지 않다.

우리의 세계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전례가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일들의 방송 시간을 점점 더 많이 빼앗아간다. 우리의 문화에 스며들고, 불쾌하고 어리석은 이중 잣대를 영속시키고, 사회적, 정치적 담론의 수준을 낮추고, 잔인함을 문화적 표준으로 만들고,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쏟아 붓는다.

중요하지 않은 타블로이드 이야기, 비판, 오해가 저속한 엔터테인먼트의 사탕 통에만 머무르고, 주류 매체에서는 훨씬 더 중요하고 필요한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하는 선택을 보다 주의깊고 의식적으로 한다면 어떨까? 우리의 에너지와 관심을 어디에 쏟을지를 결정할 때 사실 정보와 허구 정보는 상품화되곤 한다는 걸, 우리가 어떤 컨텐츠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개인적, 사회적, 대중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는 걸 기억하면 어떨까?

누군가가 외모와 성격에 대한 공격을 받아 약해지고 굴욕을 겪는 것을 지켜보는 걸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젊은 세대, 평등을 위한 싸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주류 뉴스 매체들이 뉴스/엔터테인먼트의 모호함에 얼마나 취약해졌는지, 그래서 나쁜 지어낸 이야기들이 대중의 의식을 가득 메워 어떤 커다란 결과를 낳는지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의 여러 진정한 사회적 도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말해야 한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US에 게재된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