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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레즈비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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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스토리] 내 딸은 레즈비언입니다. (아암)

뉘앙스가 센 단문으로(마치 '나는 가수다'처럼) 이렇게 제목을 써놓고 보니 뭔가 비장한 듯하다. 하지만 딸애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은 나와 가족에게 민망할 정도로 싱겁게 받아들여진 일이다. 극적인 에피소드도 소동도 없었다.

2009년 말에는 여러 사정이 있어 서울에서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게 되었다. 딸도 연말 술자리에 왔는데,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니 할 말이 정말 많았다. 몇 차례 '위하여'를 외쳤고,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연애 관련 얘기가 오가던 중 딸애가 커밍아웃을 했다. ('느닷없이'가 아니었다. 무려 6개월간 관계에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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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즈비언이고, 애인이 있다."

내 입에서 나간 말도 간단했다.

"아, 그런 이야기 굳이 우리한테 안 해도 되는데... 네 삶이니까"

스무 살 넘은 자식은 해방되어야 하고(부모도 마찬가지로!), 성정체성이란 인정과 허용의 문제가 아니라는 평소 생각이 표명된 것이다.

정말 무덤덤했나보다. 이 글을 쓰려는데 기억에 남은 게 없어서 딸애의 커밍아웃 인터뷰를 참조해서 재구성했을 정도로. 다만 딸의 연애 이력을 모르지 않기에 이 관계가 얼마나 오래갈까만을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관계는 어느덧 8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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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세 명의 여성과 남성 두 명이 내게 커밍아웃을 해왔다. 이 경우에도 내 태도는 다르지 않았지만, 감동이 있었다. 내가 저들에게 믿을만한 사람이구나. 그건 딸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딸애나 당사자가 커밍아웃을 하는 것과 성소수자 부모로서 내가 커밍아웃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부모가 굳이 그래야 할까'하는 의문은 여전하다.) 원치 않는 대상에게 아웃팅 될 수 있다는 점이 조심스러웠다. 뭣보다 성소수자 부모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다가 2014년 겨울, 서울시민 인권헌장의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둘러싼 갈등으로 성소수자 단체가 서울 시청을 점거했다. 딸애는 열일을 했고, 기간 중 일가족(딸애의 파트너 포함)이 지지 방문을 했다. 이때 여동생한테 '네 조카가 레즈'라고 밝혔고, 지지 방문을 부탁했다. 이것이 부모로서 내 커밍아웃 스토리의 시작이다. 동생 반응은 나보다는 현실적이었다. 소수자로서 살아갈 삶에 대한 걱정, 결혼과 출산 등 평범한 가족 이벤트를 기대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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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순차적으로 우리 가족을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료와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딸애를 아는 사람들은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당사자와 사전 의논을 했고, 대상을 선별했고, 막연하나마 기준도 있었다.

그러나 딸애가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실명 걸고, 민낯으로)을 하면서 우리의 커밍아웃은 다소 정치적이 되었다. 자신의 커밍아웃 결정권을 가족 개개인에게 넘겼고, 이런저런 상황 변화에 따라 내 태도는 달라졌다. 보다 적극적으로, 의도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된 것이다. 이유를 달자면 두 가지 쯤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나와 내 딸을 통해 성소수자가 막연한 '그 누구'가 아닌 바로 '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당신 옆에 성소수자가 있어요'를 알리는 운동의 한 방식이라 할 것이다.

둘째, 우리 사회의 흔하디흔한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필요가 생겨서다. 예전엔 '그 집 딸, 남자친구 있어요? 결혼은 언제쯤?' 남자친구 있냐는 질문에는 '애인이 있다'는 말로 넘겨버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남자를 소개시킬 기세로 파고드는 질문을 회피하는 건 의미도 없고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딸애의 파트너를 존중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이, 또 우리 가족이 함께 친밀감과 책임을 나누며 살아온 세월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 과정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작정하고 시행한 적은 별로 없다. 인생은 예기치 않은 소동의 연속이라 대개는 의도치 않게, 느닷없이 이루어졌다. 시민단체 모임에서 관련 이슈가 등장할 때 그들의 되잖은 갑론을박을 잠재우기 위해서, 우연한 일행의 말잔치에 인내심이 바닥난 지점에서.... 나의 커밍아웃은 차분했지만, 매번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자신들이 표방하는 '진보'의 본질을 성찰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커밍아웃을 여러 번 해왔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언제나 가족이었다. 나는 삼 남매 중 둘째고, 남편은 형제자매가 없는 사람이다. 가족구성원이 단출한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서로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친밀감과는 다른 차원의)를 맺게 된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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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빠는 억울할 수 있지만, 나는 일찌거니 그를 커밍아웃의 마지막 장벽으로 지목해 두었다.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랜 관계를 맺어왔고, 보수적일 것이라는 판단과 나의 젠더 편견이 입을 막은 것이다. 딸애의 언론 출현이 잦아지면서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당사자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상황이 그에게 낭패감을 줄 수 있으니까. 최소한 내 입으로 말하자.

올해 2월은 어머니 병환으로 가족 회동이 잦았다. 병실의 보호자들은 돌봄을 둘러싼 긴장관계 속에서도 상냥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병원 대기실과 병실에서 우리는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소중한 가족과 이별해야 할지 모를 절대적인 상황에서 미소한 인간은 겸손하고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평안을 비는 마음만이 간절하다. 나는 이쯤의 어떤 틈을 노렸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차 안에서 드디어 입을 뗐다. 입을 떼고 보니, '이렇게나 쉬운 것을...' 끙끙댄 시간이 쓸데없이 길었다. 오빠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고, '충실하게 살면 된다.'는 말을 내놓았다. 그래 맞다. 충실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지금 딸애는 제 인생의 가장 충실한 시기를 살고 있다.

모든 부모가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로 고통스러운 건 아니다. 고통스럽지 않았고, 불행하지 않았다. 그래야할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존중하며 존중받으며 살아갈 것인가. 그 길에서 동료 시민으로 어떻게 협력하고 연대할 것인가. 그런 과제가 앞에 놓여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 커밍아웃할 특별한 대상이 또 떠오른다. 만날 때마다 딸애를 며느리 삼고 싶다는 애의 중학교 시절 한문선생님...(자녀가 성장해서 이런 말 듣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아드님이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 딸이......' 빈칸은 상대의 반응에 따라 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