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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스토리] 11. 방송에 나오고 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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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커밍아웃 스토리'를 연재합니다. '커밍아웃 스토리'에는 성소수자 당사자와 성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들의 커밍아웃 관련 이야기들이 담깁니다. 당사자가 이야기하는 커밍아웃을 준비한 과정과 커밍아웃할 때의 감정,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때 부모의 심정 변화와 상황들... 고민과 애환 그리고 감동이 가득한 우리들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커밍아웃 스토리' 연재의 다른 글은 허프포스트코리아의 성소수자 부모모임 블로그 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글 | 정은애(나비)

때 아닌 여름 날씨였던 4월의 어느 토요일. 나는 에어컨이 고장 난 차를 몰고 목적지로 향했다. 고생 끝에 도착한 곳은 (딸)아이가 예전부터 얘기하던 성소수자 부모모임. 그날 나는 처음으로 성소수자 부모님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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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 대한 첫 느낌은 '자식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지지하면 저런 얼굴들이 되는 것일까'였다. 처음 보는 사람을 정말 따뜻하고 너그럽게 바라봐주는 표정들. 나는 세상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을 만큼 내 자식을 지키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 왔는데, 그 마음을 더없이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는 표정이었다. 성소수자 아이들, 그리고 성소수자 부모들에 대한 한없는 공감과 연민이 그 얼굴들을 만든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마음이 참 편안했고 그 감정이 나에게도 스며들었다.

이제 나와 아이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사실 아이는 이미 유치원 즈음부터 종종 '나는 여자아이가 좋아'라고 말해왔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그 또래 아이들의 진한 우정 정도로 여겼다. 다만, 맘 한 편으론 저 마음이 동성애라면 어떨까 막연하게 생각해보기도 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겨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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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아이가 자라선 본인이 성소수자임을 분명히 선언했을 때 "그래서 어쩌라구~ 지금 반항하는 게 그거하고 뭔 상관인데!!"라고 다그쳤다. 너의 성 정체성에는 관심도 편견도 없다는 듯이. 나는 무식해서 용감했던 엄마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의식 있는 엄마인 척하면서 성소수자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렇게 아이가 세상과 혼자 맞서 싸우도록 내버려둔 셈이었다. 엄마의 교만함으로 인해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참 미안한 일이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쳐 요새는 부모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고 새로 만나는 많은 부모님들과도 함께 했다. 운영위원 부모님들이 지방에서 올라오느라 힘들겠다며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아뇨. 이렇게 애써주시는 여러분들이 정말 감사 받아야죠~ 매번 여기 오는 길이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하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는 시간이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난 듯 정말 행복해요'하며 마음으로 인사한다. 초보 성소수자 엄마라서 그런지, 쑥스러워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또, 내가 부모모임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정보와 소식을 아이에게 전달하면, 아이는 '거 봐~'하는 자세로 이제야 그걸 아느냐는 듯 (그간 무심한 엄마로 인해 받은 상처 때문인지) 폭풍 질책하는 바람에 요즘은 아이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쁘기도 하다. 그저 이렇게 애쓰고 있으니 봐달라는 마음으로, 평소 서로 무뚝뚝해서 잘 하지도 않던 문자로 관련 이슈만 공유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피디수첩에서 성소수자와 그 부모들을(나와 아이도) 인터뷰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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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부모모임에서 3년 동안 애쓴 것만큼 공중파 시사프로 한번 나가는 것이 큰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부모님들의 3년 시간이 거름되어 이렇게 방송을 통해 사람들 앞에 퀴어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과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에 마음에 울컥했다.

그리고 피디수첩이 방송되었을 때, 성소수자와 그 가족들 모두 카메라가 비추고 있어도 거리낌 없이 밝고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너무 기뻤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도 방송에 공개되어도 괜찮다고 할 만큼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간 가졌던 엄마에 대한 불만을 카메라에 대고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고 참 다행이다 싶었다.(이 기회에 그간 세심하지 못해 상처 줬던 엄마의 부족함을 싸게 퉁~친다는 맘으로!)

물론 방영되고 나서 어떤 후폭풍이 있을지 가늠하기 힘든 불안함도 있었지만.... 그런 저런 걸 다 고민하면 세상일 아무것도 못한다는 평소의 지론대로 뭐든지 하고 나서 후회하기로 했다. 안하고 생기는 후회는 영원히 숙제로 남겠지만 하고 나서 생기는 후회는 적어도 해결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아이의 반응을 보니 그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나 싶다.

아이에게 방송 후 혹시 누가 비난의 말을 던지면 알아듣지도 못할 멍충이들하고 싸우지 말고 "당신 같은 사람도 이해하도록 우리가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힘드시겠어요~ 어쨌든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 혐오는 사양하겠어요^^"라는 식으로 에너지 아끼는 게 어떠냐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이는 "ㅋㅋ~그냥 조용히 살래"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나보다 더 덤덤한 반응이었다. 오픈 퀴어로서의 삶을 작정하고 나니 더 담대해진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방송 후 피디수첩 게시판에 혐오발언이 난무할 때 걱정되기보다는, '이슈화되어 다행이고 더 크게 논란이 되었어도 괜찮을 텐데...?' 하는 여유가 슬금슬금 생긴다. 거기다 퀴어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열려 있는 삶의 방식에 비해 혐오하며 사는 그 사람들의 방식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안타까움도 생겼다. 세상 사는 게 힘든 건 다른 사람 때문일 때보다 자기의 내면에서 생기는 모순과 분열 때문일 때가 많지 않은가.

장애나 얼굴색을 이유로 혐오하는 게 옳지 않다는 건 알면서 퀴어는 왜?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저 사람들 머릿속은 얼마나 갑갑할까. 무지와 혐오는, 하는 사람이 더 괴로운 것이고 (안타깝지만) 괴로움은 그들의 몫이다. 차별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우리는 옳으니까 당당하게 부모가 나서고 차별을 당연하다 주장하는 저들의 천박함엔 자식들도 부끄러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빛이 어둠을 이긴다고 확신한다.

어떤 차별이든 다른 이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면 나에 대한 차별도 용인될 것이다. 법적인 차별금지와 이후의 사회적 편견에서 언제 자유로워질지 장담할 수 없으나 적어도 머지 않은 시기에 그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닭이 울어서 새벽이 오는 게 아니라 새벽이 다가오니까 닭이 울 듯이 마땅하고 옳은 것에 대한 우리의 노력이 때가 되니 이슈로 드러나는 것이다. 날이 밝기 직전 가장 어둡듯이 사회적 논란이 강하면 강할수록 해결을 위한 시간이 가까워 오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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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제는 아이에게 엄마를 지렛대삼아 세상에 나아가 더 힘차게 외치라고 말하고 싶다.

"이해, 지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능동적인 행동으로 같이 할게. 부모란 자식이 죄를 지으면 감쌀 수는 없어도 같이 돌을 맞아주는 것이니까. 하물며 지은 죄 없이 세상에서 내 자식이 정죄 받는다면 죽을힘을 다해 방패가 되고 창이 되어줄 게.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도 죽을힘을 다해 보호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