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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부모모임 Headshot

나는 성소수자의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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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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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년 시절 동네 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40대 중반이 넘도록 주일이면 교회에 출석하는 일을 우선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등대처럼 삶에 적용하며 살지는 못했지만, 매주 듣던 설교 말씀은 내 삶과 내 속에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나는 큰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너무도 아름다운 한 생명을 보내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이 흘러넘쳤다. 손수 산후 몸조리를 해주신 시어머니는 성결교회 권사님으로 약수를 길러와 아기를 씻겨주시고, 새벽재단에 아이의 이름으로 일천번제를 올려주셨다. 그렇게 우리 큰아이는 가족의 축복을 받고 태어났고, 정말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큰아이는 착하고 말도 잘 듣는 아이였다. 남자아이 치고 여자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를 좋아하고 그 캐릭터가 새겨진 분홍색이나 노란색 옷, 신발을 갖고 싶어 했지만, 나는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고 가끔은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했다.

우리 아이는 자기가 타인과 뭔가 다르다는 걸 초등학교 6학년 때 알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즈음부터 우리 아이가 평범하진 않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매일 울면서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를 설득하지 못한 채 중학교 입학 6개월 만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함께 도서관을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도, 여자아이 같다고 놀리는 것은 하도 당해서 이젠 눈물도 나지 않는다는 아이를 데리고 상담을 받으러 갈 때도, 이것이 '성정체성'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만큼 성소수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배운 적도 없었다. 아는 것이라곤 TV에서 본 홍석천과 하리수가 '호모'라는 것 정도였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대다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잘 다녀주지 않은 것을 속상해 하며 지내는 동안 아이는 키가 자라는 게 싫어 성장호르몬이 잘 나온다는 시간대에는 잠을 자지 않고, 살이 찔까 봐 잘 먹지도 않고, 발이 커 질까 봐 한 치수 작은 신발을 신고 지내서 발뒤꿈치에는 항상 상처가 나 있었다. 아이는 2차 성징이 나타나 맘에 들지 않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혼자서 고민하며 지냈다. 아이의 자존감은 그렇게 낮아졌고, 밝았던 아이의 성격도 점차 변해 말이 없는 아이가 되어갔다. 아이는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이야.", "나는 괴물이야.", "나는 너무 못난 사람이야."라는 말을 가끔씩 입에 올렸다. 함께 신앙 생활을 하며,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아이야.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셔."라고 매일같이 말해주었지만 아이는 긍정하지 않았고, 검정고시 합격 후 미용사 자격증을 따서 취업하여 집을 떠났다.

내 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남자

아직 부모 품에서 응석 부릴 어린 나이에 먼 도시에서 일을 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집에서 직장을 다녀도 될 텐데 하는 생각으로 만날 때마다 집으로 내려오길 권했지만 아이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3년 전 어느 날, 아이가 살고 있는 서울의 어느 경찰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애가 강물에 뛰어들려는 걸 행인이 만류해 경찰에서 아이를 보호 중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 아닐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아이를 찾아갔을 때 옆에서 아이를 꼭 안아주고 있는 남자애가 있었다. 우리 애가 처음 사랑한 남자아이, 그 친구를 보고 아이가 동성인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 거의 1년 동안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와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하신 말씀을 의지했다. 그 당시 교회에서 행한 '감사일기 쓰기'와 '100감사 운동' 등의 활동이 실제로 도움이 된 건지, 나는 우리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동성애'라는 단어를 인터넷 검색창에 가끔 입력하고 무엇이라도 정보를 얻어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던 중 '성소수자 부모모임' 카페를 알고 그 모임을 찾아가게 되었다.

"나는 딸이에요"

2014년 8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모임에 참석하며 알게 된 것은, 다양한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인터섹슈얼, 퀘스처너리 등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친구들을 만났으며, 그들의 이야기와 고민거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아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아이에게 성정체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이는 자기를 여자라고 생각하며 몸도 바꾸고 싶다고 해서 트랜스젠더 여성[MTF(male-to-female) Transgender]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부터 우리 가족은 아이의 호칭을 '딸', '언니'로 바꾸었다. 아직 수술도, 호적 정정도 하진 않았지만 가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여자'로 인정해주니 큰딸도 의상이나 화장 등의 젠더 표현을 더 자유롭게 하고 있다. 아이는 현재까진 호르몬 치료만 받고 가슴이나 성기 수술은 원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하리수처럼 예쁘게 수술한 여성만 있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자기 몸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에도 차이가 있어서 트랜스젠더라도 신체변화의 요구 지점이 각자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여성인지 남성인지 명확한 구분이 되지 않는, 성정체성의 불명확한 상태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수술을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딸과 함께 식당을 가거나 쇼핑을 하면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직접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잠깐의 동행에도 내가 느낀 시선의 불편함을 아이는 매일 느낄 텐데, 하루하루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도 싶다. 작년 8월엔 기억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고로 정신과 보호병동에까지 입원할 일이 생겼는데,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어서 여성병동에도, 남성병동에도 입원할 수 없는 일도 겪었다. 성중립 화장실뿐 아니라 병원에도 성중립 병동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느꼈다.

차별 없는 세상이라면

부모모임 활동 이후 많은 성소수자들과 부모들을 만났으며 전화상담을 받았다. 부모나 자식 모두 서로가 상처받길 원하지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었고, 마땅히 터놓고 상담할 곳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모모임의 한 아버지는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이라면 성소수자인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작년부터 나는 '퀴어 퍼레이드'에도 참석하였는데,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는 취지의 축제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수 기독교 단체의 반대집회는 그 규모도 크고, 축제를 방해하려고 조직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주변 사람들 중에 대놓고 동성애를 비판하는 이는 없었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우리 교인들과 가족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구역예배 시간에 우리 아이가 트랜스젠더임을 밝혔다. 모두들 동정 어린 위로를 해주었고 트랜스젠더에겐 좀 더 너그러운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성애는 성경에서 죄라고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사실 그들의 위로와 동정은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을 뿐인데 그것을 부정한 채 던지는 동정이니 말이다.

몇 달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서 주최한 김조광수 감독 초청 이야기 마당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너무나 충격적인 대치상황을 목격했다. "동성애자를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에 들이냐."며 피를 토하듯 지르는 소리, 동성애를 반대하며 두 손을 높이 쳐들고 해대는 통성기도에 쫓겨 인파를 헤치며 떠나가던 김조광수 감독의 모습. 그때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고성은 마치 드라큘라 영화에서 십자가를 들이대고 주문을 외우며 흡혈귀를 퇴치하는 장면에서 듣는 것과 같았다. 그들은 김조광수 감독이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을 보고 이야기 마당을 방해하는 데 성공했다고 기뻐하며,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라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저주와 혐오의 표현일 뿐이었다.

성경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예수님은 남을 판단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판단과 정죄는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성소수자도 이웃으로 품을 줄 아는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되길 바란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재정이 속히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더불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부터 성소수자의 존재를 교육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도 동등한 행복추구권이 있으며, 차별하고 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육해야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시도율은 47%가 넘는다. 그것은 교육의 부재에도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성소수자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겪는 또래집단으로부터의 놀림과 따돌림에도 그 원인이 있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배운 적이 없어서 오는 자기부정과 자존감의 결여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모두를 위해서 차별금지법은 꼭 필요하다.

동성결혼 합법화가 속히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내 딸아이가 자기는 성전환수술을 해도 아기를 낳을 수 없다며 통곡하는 걸 몇 차례나 보았다. 그럴 때면 "아이 없으면 어때."하고 위로했지만, 동성결혼이 합법화된다면 자녀를 키우며 살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제로 지난 6월 부모모임에, 미국에서 살고 있는 레즈비언 부부가 자녀 둘을 데리고 방문을 했다. 여느 가정과 다름없이 화목하고 가족 모두 행복해 보였다. 힘들게 이룬 가정이고 아이들이니, 여느 부부보다 얼마나 더 노력하며 살겠는가. 동성 부부나 트랜스젠더를 배우자로 맞는 가정도 입양, 정자 기증, 대리모 등의 방법으로 자녀를 키우며 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정정 요건이 완화되어 효율적으로 바뀌길 바란다. 미국의 경우 성기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신분으로 바꾸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으며, 원하는 성별의 1인 1실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고 미국의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또 우리나라의 트랜스젠더 남성[FTM(female-to-male) Transgender]은 군대를 가고 싶어도 못 가지만 미국에선 트랜스젠더도 군대에 갈 수 있다고 발표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트랜스젠더 여성이 군 면제를 받으려면 고환적출을 해야 하고, 호적정정을 받으려면 성기 수술까지 완료해야 한다. 트랜스젠더 남성은 자궁과 난소를 제거해야만 호적정정을 할 수 있고 군대는 가지 못한다. 이것은 참으로 비인간적인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의 경우 성인이 되어 자신의 성별에 맞는 주민번호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지구촌 시대에 살면서 국경에 따라 성소수자에 대한 법이 이렇게 다르니 성소수자들이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는 것은 이유가 있는 말이다.

성소수자가 행복할 권리는 당신과 우리 모두가 행복할 권리와 같다.

라라(활동명) | 23세 트랜스젠더 딸을 둔 엄마이다. 2014년부터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 이 글은 <기독교사상>(2016년 8월호, 대한기독교서회)의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