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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인터넷게시물 1만7천여 건 단속, 유권자는 구경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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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선거 기간 동안 내가 올린 게시물을 감시하고 있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기간 동안(주로 2015년 12월경부터 2016년 4월 13일까지) 인터넷에서 내가 올린 게시물이 '나도 모르게' 삭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유권자는 많지 않다. 인터넷 게시물 삭제요청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소속 '사이버 공정선거지원단(구 선거부정감시단)'의 합법적인 활동이다. 공정선거지원단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자동검색시스템을 활용해 선거 기간 동안 인터넷상에 올라온 게시물, SNS 등을 들여다보고 선거법을 위반한 게시물이 있는지 검열한다. 종종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유저(user)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한 게시글에 "이런 거 올리면 삭제 된데요. 법 위반입니다."하고 댓글을 남겨준다. 서로들 자체 검열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왜 선거법 위반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지만, 선관위가 그렇다고 하니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위축될 수밖에.

지난 8월, 한국인터넷투명성보고팀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각급 선관위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 업체에 삭제 요청한 인터넷게시물 17,101개의 체증 자료를 받았다. 각급 선관위의 단속 자료 중 미디어오늘이 중앙선관위 자료를 분석하여 보도하였고(7월 7일 보도, "지난 총선 때 나경원 비판 게시물 192건 무더기 삭제") 인천일보가 인천선관위 자료를 조사해 기사화(8월 24일 "총선 댓글 1031개 사라져... '표현의 자유' 논란")했으며, 참여연대는 서울선관위 자료를 추가로 분석해 '선관위의 인터넷게시물 삭제 내역 보고서'를 10월 4일 발표했다.
 
각급 선관위가 단속한 자료 17,101건 가운데 중앙선관위·서울시선관위·인천시선관위가 단속한 4,050건의 분석한 결과, 45%에 이르는 게시물이 '여론조사 결과공표 금지 등'을 이유로 삭제할 것을 요청받았다. 이어서 '허위사실 공표'가 27%, '후보자비방'이 17.63% 순서였다.

게시된 웹사이트는 포털사이트 다음이 992건으로 가장 많았고, 트위터(699건), 네이버(451건), 일간베스트(392건), MLBPARK(263건), 페이스북(235건) 순이었다.

단속 대상이 된 인터넷게시물은 △여론조사 결과 단순 인용, △시민참여형 온라인 설문조사 진행, △후보자에 대한 풍자 및 비판 적 내용 게시, △후보에 대한 의혹 제기, △투개표 과정에 대한 의혹 제기 등으로 유형화 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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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단순 인용도, 자체 설문조사도 삭제... 유권자는 구경꾼?
 
중앙선관위와 서울선관위, 인천선관위가 단속한 사례를 살펴보면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만 해도 삭제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여론조사 기사 내용을 스크랩하거나, 심지어는 "A후보자 지지율이 앞서가니까..."라는 댓글도 단속 대상이 되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여 공표할 때는 최초 보도출처와 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도록 표기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다. 여론조사 결과를 유권자들이 온라인에서 서로 공유하고 의견 나누는 것마저 '결과 공표'로 보고 여론조사 기관이 준수해야 하는 사항을 시민들에게 똑같이 요구하는 셈이다. 시민들이 이 모든 사실을 숙지하고 인터넷을 사용해야 한다면, 구닥다리 규제 중심의 선거법은 처음부터 새로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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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나 정치게시판 등에서 선호도를 묻는 설문조사도 삭제 대상이 되었다. 전계층을 대표할 수 있도록 피조사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규정 등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온라인 상 주요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묻는 등 각종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방식은 선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정책과 후보자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지만, 선관위는 유권자들의 자발적인 설문조사도 '여론조사'로 보고 단속한 것이다. 정책에 대해, 후보자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물어볼 수 없는 조건에서 유권자들은 여전히 선거의 주인이 아니라 구경꾼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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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 글' 후보자가 직접 삭제 요청할 수도 있어, 비판적 여론 검열?
 
후보자 비판에 대한 검열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법적으로 온라인 선거운동이 허용되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후보자비방죄 등을 적용해 공직 후보자로서 허용되는 수준의 풍자와 자질 검증, 의혹 제기 성격의 게시물을 삭제한 것이다.

특히, 현행 선거법은 선관위 뿐 아니라 후보자가 직접 선관위에 요청하거나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해서, 자신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검열하고 단속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도 높다. 실제 중앙선관위가 '허위사실 공표'를 이유로 단속한 사례 중에는 나경원 후보의 자녀 입학비리 의혹을 담은 게시물이 다수 포함되었고, 인천시선관위는 '후보자비방'을 이유로 윤상현 후보에 대한 비판 게시물을 단속했으며, 윤상현 후보 관련 게시물이 인천시선관위 자료 중 절반에 이른다. 이와 같이 특정 선거구에서 특정 후보의 비판적인 글이 집중적으로 삭제된 사례를 볼 때, 선관위가 후보자의 삭제 요청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단속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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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러한 조치에 이의를 제기한 사례는 없었을까? 선관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대 총선, 각급 선관위가 단속한 1만 7천여 건 중에 이의신청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홈페이지 관리자는 삭제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3일, 이용자는 게시물이 삭제된 날로부터 3일 이내에 선관위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선거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이용자가 기한 내에 제대로 통지받고 인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포털사이트 가입 약관에 '동의'한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매우 미약하다. 
  
포괄적으로 온라인 단속하는 선관위, 국감에서 면밀히 따져야
 
2011년 12월, 헌법재판소 한정위헌 결정(2007헌마1001)으로 온라인 선거운동이 허용되었다. 온라인에서만큼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반대하는 의사표현이 가능한 듯 했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도 후보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풍자하고 패러디 했다는 이유로,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여론조사 공표 기준을 일일이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권자 말할 권리는 소리 없이 삭제됐다.

최근 홍철호 의원은 각급 선관위가 1만 7천여 건의 인터넷게시물을 선거법 위반으로 삭제하고도 고발 건수는 62건으로 매우 적어 공정선거관리가 부실하다고 발표하기도 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보지 않고 건수로만 평가할 경우 선관위의 단속 활동만을 부추긴다. 국회의 역할은 선관위가 헌법 위에 존재하지 않도록,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기본권이 선관위의 단속과 검열로 침해받지 않도록 제대로 견제하는 것이다. 13일로 예정된 선관위 국감에서 인터넷게시물 무더기 삭제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