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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지 못'해도 된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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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은(참여연대 간사, 병역거부자)

내 손목은 가늘다. 어렸을 땐 손목이 굵은지 가는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손목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어느 날인가 친구들에게서 내 손목이 '여자손목' 같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부터 시나브로 신경이 쓰였다. '손목이 가늘다, 여자손목 같다'는 말은 '남자답지 못하다', 즉 '문제가 있다'는 말로 들렸다. 가느다란 손목과 마른 몸을 지닌 내가 왜소하게 느껴졌다. 그 후로 내 손목이 싫어졌고, 굵은 손목을 지닌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내 가는 손목은 콤플렉스가 됐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우유·시금치를 열심히 먹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그 음식들을 먹으면 뼈대가 두꺼워진다고 생각했다.

우유와 시금치는 내 손목을 두껍게 만들어주지 못했고, 그렇게 20대가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 사회과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페미니즘을 접했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어떻게 사람들을 재단하고 억압해 왔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였다. 혼란한 감정과 함께 해방감을 느꼈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남성인 내게 요구되는 '남성다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려줬다. 페미니즘으로부터 '남자가 그러면 못 쓴다', '남자는 어떠어떠해야한다'는 당위에 저항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태어나서 세 번 넘게 울어도 되고, 억지로 외향적인 것처럼 행동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난, 내 가는 손목이 좋다. 가늘고 긴 내 손목이 마음에 든다. 가는 손목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굵은 손목을 부러워했던 게 남성성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이었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 손목은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니었다. 페미니즘 덕분이다. 내가 내 손목-내 몸을 긍정할 수 있게 된 건 페미니즘을 만났기 때문이다.


페미니즘과 평화주의의 연결고리

페미니즘은 손목만이 아니라 내 인생 많은 곳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당장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입영일자가 다가오자 군대에 들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누군가에게 총을 겨눌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군대의 위계문화와 남성성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내 몸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삶의 주요한 가치관은 '평화주의'와 '페미니즘'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군대에서 요구하는 가치들과는 상반됐다. 사고회로를 끊고, 나를 비로소 긍정하게 만들어 준 가치들을 배반하고, 나의 정체성을 부정해야 군대에 적응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겁도 났고, 내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병역을 거부했다.

병역거부를 준비하던 초기에는 평화주의와 페미니즘을 별개의 관점으로 생각했지만, 내 생각보다 병역거부를 비롯한 평화주의는 페미니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많은 페미니즘/평화주의 학자들이 얘기하듯이 군사주의와 가부장제는 아주 밀접하고 서로를 강화시킨다. 위계질서와 복종 같은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군사주의는 위계적 성역할에 기반한 가부장제를 더욱 폭력적인 모습으로 재생산하고 강화한다. 마찬가지로 가부장제는 여성을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로 설정하고 전형적인 성역할을 강요하면서 군사주의의 근거가 된다.

그렇기에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평화주의'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페미니즘'은 밀접할 수밖에 없다. 군사주의와 가부장제가 상호작용하듯이 이에 저항하는 평화주의와 페미니즘 또한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병역거부는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페미니즘적 실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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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병역거부 선언 축하 파티. 그는 소견서에서 평화주의자로서, 페미니스트로서 병역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페미니즘과 평화주의는 '안보'의 영역에서도 연결된다. 그동안 안보의 영역에서 여성은 주체가 아니었고, 여성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어 왔다. 최근 불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 이제야 터져 나오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맞서, '군대 가서 나라도 안 지킨 것들이, 국가 안보에 기여한 것도 없는 것들이'라는 비아냥으로 대응하는 일군의 남성들이 많다. 이들이 말하는 '안보'는 '군대에 가야만 지킬 수 있는', '무장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는' 무엇인 것 같다. 이 논리대로라면, 무장을 한 자들만이 안보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군사의 영역에서만 '안보'가 논의될 수 있고, 정치의 영역 역시도 '국방'을 근거로 잠식될 수 있다.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에 맞아 돌아가신 故 백남기 농민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군사집단, 경찰집단이 사수하려는 '국가 안보'에 시민들이 설 자리는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 생명에 대해서도 '부수적 피해'라고 말할 텐가? 나는 백남기 농민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가는 비정규직 문제, 생존권 문제를 요구하기 위해, 농민, 노동자, 민중의 '안보'를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를 죽인 물대포는 '국가 안보'의 논리로 가해의 혐의를 벗고 있다.

페미니즘은 군사력 위주의 전통적인 국가 안보 개념에서 벗어나 일상의 삶에서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중시하는 '인간 안보',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의 안보'를 고민하게 한다. '안보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여성들도 군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여성•평화주의의 시각에서 기존의 안보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게 한다. 페미니즘과 평화주의는 이러한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살피지 못하는 이들에게 권함

'군대에 가는 것'이 곧 '남자다움'이라면, 나는 '남자다움'을 기꺼이 버렸다. '남자다움'을 버리고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로 인해, 사회는 나를 '자격이 없는 2등 시민'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인터넷에서 병역거부자를 주제로 한 기사가 나오면 으레 '병역의무를 하지 않는 자는 이 나라에 살 자격 없다', '나라를 누군가 대신 지켜주길 바라는 비양심적 인간들'과 같은 댓글이 달린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험은 '군대나 다녀와서 말해라'라는 말을 수시로 듣곤 하는, 주변의 여성 동료들의 입장에 함께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병역거부 이후에도 페미니즘은 나에게,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 페미니즘은 내 손목을 포함한 '나'를 긍정하게 하는 동시에 내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며, 평화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동력이자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연대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내가 지닌 권력을 성찰하게 하고, 부당한 권력에 대해 꾸준히 저항하며 수평적인 질서를 만들어가는 감수성이다. 아직 사회 곳곳에 자신의 권력과 발화의 파급을 성찰하지 못하고, 자신의 오류를 보지 못하며, 기존의 위계질서를 공고화하는 데 기여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페미니즘을 권하고 싶다.

* 이 글은 [전쟁 없는 세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