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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양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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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여자가 아니야... 야망도 있고 만만하지 않아." A에 대한 어떤 남성의 평가였다. 내가 아는 A와 전혀 달랐다. A는 자기 분야에서 착실하게 경력을 쌓았다. 성실하고 야무진 사람이지만 야망과 가까워 보인 적 없었다.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권력 의지 때문이 아니라 친화력 덕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달랐다.

그때부터 나이 마흔 넘겨 생존한 여성들을 살펴보았다. 학문, 정치, 문화예술, 시민사회 등. '부장' 정도까지 자리를 지키는 여성 자체가 별로 없었다. '부장'이 된 여성을 보니 평가는 비슷했다. "까칠해", "이겨 먹을 수가 없어", "성격 대단해". 지인들에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보여?" "몰라서 물어?" 너는 특히 더 지랄맞다, 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걸크러시... 나쁘게 말하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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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남성들이 누구는 인덕이 풍부해서, 누구는 일을 잘해서, 누구는 정무적 능력이 뛰어나서, 누구는 인맥이 넓어서, 얻는 평가의 종 다양성이 여성들에겐 없다. 마흔 넘어 '부장'이 된 여성들은 일도 잘했고, 정무적 능력도 있어야 했으며, 술도 잘 먹고 인맥도 넓어서... 결론은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센' 여자가 되어야만 했다.

경력 있고 전문성 있는 '여성'을 찾는 주문이 많다. 할당제 덕에 '그럴듯한' 여성이 있어주면 금상첨화인데, 드물다. 추천 요구받고 눈 씻고 찾아도 안 보인다. 그녀들은 모두 결혼과 동시에 경력단절이라는 쓰디쓴 스펙만 남았다. B는 장부(丈夫) 스타일이다. 학교 다닐 때는 매번 회장이었고 졸업 후엔 끝없이 사업을 벌였다. 그녀가 꼬리를 내린 것은 사업 실패 때문이 아니었다. 뒤늦게 낳은 둘째 뒷바라지하느라 집 안에 처박혔다.

C는 통찰력이 뛰어나 뭐든지 몇번 생각하면 답을 냈다. 현명한 조언 덕을 여러번 봤다. 현재 그녀는 가계부를 쓰는 데, 자녀들 스펙 쌓는 데 능력을 쓰고 있다. D는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부장'도 되지 못했다. 자신의 전문 기술로만 살아남았다. 정년 보장되는 직장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기적이다. 비슷한 실력의 남성 동료들보다 훨씬 적은 연봉에 대해 왜 불만이 없겠는가. 그러나 눈에 띄지 않고 정년까지 버티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E, F, G는 먹고살기 위해 마트 계산원, 학습지 교사,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 중이다.

반면 남성 친구 H, I, J... Z에 대해 말해줄까? 집안 살림을 하려 대외활동을 완전히 중단한 경우는 없다. 아직 부장이 되지 못한 남자 사람도 없다. 그들의 고뇌는 남성의 종 다양성만큼 백만가지이며 깊이도 깊다. 끝없이 실수하고 넘어지고 부대꼈다. 그만큼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는 지위를 얻었다.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평등한가?

소위 보수기독교계가 '성평등 노(NO), 양성평등 예스(YES)'를 목 놓아 외치고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본계획에서 '양성평등'과 '성평등' 용어를 혼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남성과 여성 차이를 보존하겠다는 의도로 읽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평등'은 합법적으로 동성애를 법제화할 수 있는 위험성이 높다, 여성가족부가 우리나라 전통 가족제도를 위협한다"는 그들 풀이대로 읽힌다. '양성평등' 주장이 불쾌한 이유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쌓은 지위와 권리, 제도가 그토록 행복한가. 전통 가족제도를 위협한다고? 빛나던 많은 여성들이 자기 인생을 희생해 유지한 대가다. 여성이건 성소수자건 함부로 대해도 될 존재는 없다. 그리하여 '양성평등 NO, 성평등 YES!'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