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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으로 치유될 상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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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페이스북을 달군 중학생 폭행 사진... 여기저기 달린 댓글들과 논평들이 내내 불편했다. 이건 아주 오래된 논쟁이다. 찢어진 상처와 벌건 몸이 고통을 호소했다. 이렇게 못된 짓을 했어!

그러나 14살 소녀의 피 흘린 사진 없이도 소녀가 얼마나 아팠을지, 그런 사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고 아파할 수 있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봐야만 아픈 건, 아직 덜 아픈 거다.


"가해자들의 인권을 왜 두둔해?"
"가해자들에게도 인권이 있어?"

곧 논쟁은 인권단체에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아주 익숙한 레파토리이기 때문에 기시감마저 든다. 그럴 때 죽어도 외칠 수밖에.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돌을 우리가 맞겠지.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청원에 몇 만이 순식간에 서명을 했다. 복수심과 분노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인권을 빼앗자며 얼굴을 노출시켰다. 역시 보복일 테다. 그리고 공권력은 늘 이런 심리에 호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국가는 늘 '통제'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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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 인권에 관한, 오래 전 썼던 글을 찾았다.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그때의 심정이 더 정확할 것 같어서 일부를 옮겨 보고 다시 읽는다. 글의 제목은 그랬다.

'보복으로 치유될 상처는 없다.'

(하나 마나 한 소리일 테지만, 가해자들이 당연히 마땅한 벌에 처해져야 하며, 피해자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글이라는 것을, 이 위험한 논쟁 앞에 소심한 전제를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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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나주에서 어린이들이 성범죄의 피해자로 등장했다. 얼굴을 아는 이웃 아저씨들이었다. 나주 범인은 놀란 어린이에게 "삼촌이야, 괜찮아..."했다고, 한다. 끔찍한 일이다. 인권활동가이기 전에 여성으로 살고 있고, 딸을 두고 있는 처지에 할 말이 없다. 끔찍하고 무섭다.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원한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보다, 나쁜 놈을 처단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의사출신의 새누리당 의원은 나쁜 놈들의 고환을 적출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나쁜 놈들에게 보복을 하거나 성욕을 도려내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믿는 것일까. 그게 궁금해졌다. 비뚤어진 성욕이 고환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뇌의 문제가 아닌가, 그럼 뇌를 적출할 것인가? 그런데 신체절단형이 국회에서 통과될까. 헌법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만들어 봤자 위헌이 분명한 법안이 분노의 정서를 등에 업고 공적 장소로 나오고 있다. 이것도 나는, 끔찍하다.

이러한 정부의 대책은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로익 바캉이 쓴 "가난을 엄벌하다"는 미국산 형벌국가가 어떻게 전 세계로 파급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로익 바캉은 맨해튼에서 연구한 미국산 형벌국가라는 수출품이 워싱턴과 뉴욕을 출발하여 대서양을 횡단, 런던에서 도착한 다음 전 대륙의 배급망을 통해서 유포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출발처는 20여년 전부터 '범죄 엄벌주의' 홍보 업무를 공식적으로 맡은 미합중국 국가기관이다. 범죄율이 정체, 감소하던 기간에 이 서비스로 모순적이게도 형무소 수감자 수는 이례적으로 4배나 증가했다"고 쓰고 있다. 결국 강력한 형벌정책이라는 서비스가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었다는 통계는 없거나 적은 반면, 서비스로 인해 감옥은 넘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서비스의 수혜자는 미국연방 사법부, 국무부, 경찰 및 형무 관련 행정기관들, 그와 연계된 준 공공기관 및 직업단체들, 피의자 변호단체, 언론 미디어, 형무 산업의 붐을 타고 세워진 사설 교도회사 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한국사회에서도 톨레랑스 제로 즉, 무관용 원칙이라는 말로 등장한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법무장관의 일갈은 용산참사, 쌍용사태 등의 과잉된 공권력 대응으로 드러났다. 결국 강력한 형벌정책이 목적으로 하는 종착점에는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목적이 아닌, 다른 결론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서울지방경찰청(이하 서울청)이 주폭 척결을 표방하며 벌이는 치안단속을 보자. 서울청은 지난 6월 12일 "서민의 생활을 위협하는 주폭단속 한 달여 만에 주폭 100명 구속"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구속된 주폭의 82명이 무직, 전과 평균 25.7범이다. 이들의 주된 범죄 사실은 영세상인 등 서민들을 상대로 업무방해, 갈취, 폭행 등이다.

이 자료에는 "상습적으로 만취한 채 주민센터를 찾아가, "몸이 아픈데 왜 장애인 판정을 해주지 않고 도와주지도 않느냐"며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인근 약국, 내과, 분식집 등에서 손님들을 상대로 욕설 및 행패 등 난동을 피운 피의자에 대해 주민 153명의 연명부를 제출받아 첫번째 주폭으로 구속하고"라는 대목이 있다. 결국 주민이 이웃주민을 고발하도록 부추기고, 이런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켜 사회에서 배제, 격리시키겠다는 조치가 정말 범죄예방에 근본적인 대책일까, 우리는 고민해 봐야 한다. 이들이 자신들의 절망을 딛고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는 방법이 아닌 사회구성원으로 들어서도록 만드는 체계가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쓰레기처럼 버리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쓰레기가 되는 삶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낙오되는 일군의 사람들, 일자리와 희망을 잃어버리고 행패를 일상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구속하고 척결해서 쓰레기 없는 마을을 만든다면, 문제는 없어지는가? 끊임없이 실직하고 더 많이 빈곤해지는 사회에서 이러한 사람들이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바우만은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당신 없이도 잘 할 수 있고, 당신이 없으면 더 잘 할 수 있다... 마치 환불해 주지 않는 빈 플라스틱병이나 일회용 주사기,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아무도 사지 않는 상품, 조립 라인에서 품질 검사관이 버리는 바람에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기준 미달 제품이나 불량품처럼 말이다"라고 했다.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삶들이 범죄자가 되고, 솎아내고 버려지는 불량품으로 굴러다니고 있다. 범죄의 양상과 유형이 말해주고 있다. 교도소는 범죄의 딱지를 늘려주는 학교가 되었다. 교도행정의 빈 구석이 전과자만을 늘리고 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자신들의 국기에 담고 있는 프랑스 사회는 오히려 철저히 구획화되어 있었고 뿌리 깊이 차별적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시내가 구획한 도시의 공간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백인과 흑인, 아랍인이 사는 구역은 도로 하나를 차이로 확연히 구분된다. 치안상황이 그것을 증명했다. 짧은 여행으로 성급히 판단할 수 없겠지만 흑인이 몰려 사는 거리는 대낮에도 걸어 다니기가 위험하다는 주의를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결국 슬럼화된 지역의 치안상황은 위험한 것이 당연했고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구역들은 상대적으로 아주 안전했다. 교정과 통합이 아닌, 구획과 분리, 배제는 결국 삶의 질에 있어서의 차별을 결론으로 맺게 되지 않겠는가. 지금 주폭과 골목조폭이 없어져 당장은 안전할지 모르지만 어느 날 내가 주폭, 골목조폭이 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을 때는 어떠할까.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절망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지 못하면 우리는 끝없이 잘려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에게 범죄를 이용해 국가권력을 확대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피해자를 구제하고 범죄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라고 일러야 한다. 그리고 본질에 빈곤의 확대와 같은 근본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해야 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