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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노조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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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R UNION
oatawa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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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사립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부임하던 날, 교감은 그에게 학교 교사들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종이와 '빨간 펜'을 내밀었다. 교감은 교사들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밑줄을 치라고 했다. '빨간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고, 밥도 같이 먹지 말라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이었다. 그는 어렵게 구한 직장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규직 발령이 난 뒤에도 그들을 멀리했다. 그러던 그가 최근 전교조에 가입했다. 학교가 부당한 지시를 하면 '빨간 사람들'이 앞장서 싸웠고, 혜택은 그에게도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촛불을 통해 자신감도 생겼다. 노조 가입으로 따돌림당할까 걱정이지만, 그는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기로 했다.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비서실장 때 이야기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가 이 정도면 민간기업은 오죽했을까? 이른바 '민주정부'가 10년을 집권했는데 노동조합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 존중받지 못했다. 노조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되곤 했다. 노조원은 시뻘겋고, 길거리에 나앉고, 잡혀가는 사람들, 시민과 다른 집단으로 덧칠된다. 노조 만들기는 독립운동만큼 힘들다. 그래서일까. 노조가입률이 9.8%(비정규직 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권이다.

아이슬란드(83%), 핀란드(69%), 덴마크(67%), 스웨덴(67%), 노르웨이(54%) 등 유럽 복지국가의 노조가입률은 우리의 6~8배다. 유엔지속가능개발연대 2017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노르웨이 1위, 덴마크 2위, 아이슬란드 3위, 핀란드가 5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56위. 노조가입률이 높을수록 행복한 나라일 가능성이 높다는 통계다.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미국인이여, 노조에 가입하라."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노동절을 맞아 한 말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런 연설을 들어보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재벌을 청와대로 모셔 호프잔을 들었다. 금춘수 한화 부회장이 상시업무자 850명 정규직 전환으로 화답했다. 7월1일 발표한 고용형태 공시에 따르면 비정규 노동자(계약직+소속 외 근로)가 한화건설 8159명, 한화생명 2199명이었다. 46개 계열사를 더하면 수만명인데 겨우 850명을 정규직 시켜준다? ㈜두산과 두산인프라코어도 2354명 중 450명만 정규직화하겠단다. 그런데 언론은 '선물 보따리'라며 호들갑이다.

대형마트 계산원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에서 보듯, 재벌들이 전 산업에서 불법·탈법으로 비정규직을 마구 쓴다.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판결했는데 7년이 지나도 불법은 그대로다. 경총은 대법원에 아예 불법을 봐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대통령이 호프타임을 즐긴 날, 기아차 하청노동자들이 세종대왕상에 올라 "정몽구 구속"을 외치다 끌려갔다. 정부는 재계에 선물을 내놓으라고 할 일이 아니다. 비정규직을 불법으로 사용하고 노조를 탄압하는 사용자를 일벌백계하면 된다.

정권을 바꾼 촛불이 일터를 바꿀 차례, 시간이 없다. 직장 바꾸기 캠페인과 노조 가입 운동이 촛불처럼 타올라야 한다. 박근혜가 제 발로 내려오지 않았듯, 알아서 좋은 직장 만들 사장님은 드물다. 정규직은 정부의 시혜도, 기업의 선물도 아니다. 노동자들 스스로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일이다. 누구나 부모가 필요하듯 누구에게나 노조가 필요하다. 좋은 직장을 원하는가? 한국인들이여 노조에 가입하자.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