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박점규 Headshot

노동장관 청문회 '자괴감'

게시됨: 업데이트됨:
1
뉴스1
인쇄

"새 시대에 동참할 수 있도록 다시 그분들이 산업현장에 재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저희 노동부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93년 3월10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이인제 노동부 장관이 군사독재 시절 해고된 5200명의 복직을 추진했다. 5월에는 무노동 무임금 대신 '무노동 부분임금제'를 추진해 경총으로부터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공격당했다. 7월엔 현대정공 파업에 긴급조정권 발동을 요구하자 "집단행동으로 분노를 나타낸 건 사용자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누적된 감정" 때문이라며 "노동행정의 책임자가 수많은 우리 근로자들의 희생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당청과 갈등을 빚다가 그해 12월 잘렸다. 물론 지금 이인제는 '그때 그 사람'이 아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1999년 노사정위원회 탈퇴 후 18년 만에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했다. 고용노동부는 7월을 '부당노동행위 집중감독기간'으로 정하고 노조가입과 조합활동에 불이익을 주거나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150곳에 특별근로감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자들은 격세지감을 느꼈고 새 정부 고용노동부 장관을 주목했다.

6월30일 국회 청문회. "동진오토텍, 진우제이아이에스(JIS), 유성기업, 갑을오토텍이 어디랑 문제가 엮여 있느냐?"는 정의당 이정미 의원 질문에 조대엽 장관 후보자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현대중공업이라고 답했다. 정답은 현대자동차. 유성기업은 현대차 부품사로 '비정규직 0명 공장'이었다. 2011년 5월 "밤에는 잠 좀 자자"며 파업에 들어가자 이명박씨가 "연봉 7000만원 받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인다"고 비난한 회사다. 직장폐쇄→용역·공권력 투입→대량해고·구속→복수노조로 이어진 '노조파괴 대작전'이었다. 지난 2월 법원은 "현대차가 유성기업 노조 파괴를 지시했다"고 판결했고, 뒤늦게 검찰이 현대차 책임자를 기소해 언론에 크게 보도된 기업을 노동장관 후보자가 몰랐다. 청문회 동영상에는 "뉴스는 아예 안 보고 사나 보군", "헐 현대자동차 유성기업 노조파괴 창조컨설팅... 일자무식인 나도 아는구만"이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게다가 그는 임금체불로 노동부 조사를 받은 한국여론방송 사외이사였다.

악덕 사장이 노조파괴를 획책하는 건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과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악법 때문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09년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일 때 통과시킨 법이다. 법원이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해 유성기업과 갑을오토텍 대표를 법정구속한 것처럼 정부가 정몽구 회장과 악질 사용자들을 조사하고, 교섭창구를 자율로 바꾸면 된다. 그런데 노조파괴 대명사 유성기업도 모르는 장관이 재벌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한다?

아 참, 조대엽 후보자는 왜 현대중공업이라고 했을까? 울산 염포산터널 고가도로 난간에서 85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현대중공업-미포조선 사내하청 해고자 이성호·전영수씨가 생각났기 때문일까? 노조가입을 이유로 13명이 '노동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표적 해고를 당한 게 안타까워서일까? 현대중공업 대량해고로 비정규직 2만713명이 쫓겨난 것이 괴로워서일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후보자까지 '묻지마 지지'를 하면서 대통령 말씀처럼 1년만 기다리면 좋은 세상 올까? 아, 더 있었지. 갑을오토텍 노조파괴 변호 의혹이 제기된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신현수 국정원 기조실장. 휴~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자괴감이 밀려온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