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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이 무슨 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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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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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케이(SK)브로드밴드 개통기사 장연의씨는 오늘도 전봇대에 올라 아파트와 상가에 인터넷과 텔레비전을 설치한다. 2005년 케이티(KT)에서 인터넷 기사로 일하기 시작해 2011년 에스케이로 옮겼다. 에스케이브로드밴드는 아이피티브이(IPTV)와 기가인터넷 가입자가 늘어 올해 영업이익이 1천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직원은 1677명, 1인당 연봉은 8천만원이다.

장연의씨를 비롯해 인터넷 기사 5200명은 에스케이브로드밴드 직원이 아니라 103개 홈고객센터 소속이다. 그가 속한 하청업체는 세 번 바뀌었다. 이달 통장에는 세금 떼고 170만원이 찍혔다. 대출 이자 22만원을 빼 가면 15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장씨와 동료들은 2014년 노조를 만들어 에스케이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싸웠다. 회사는 업체와 계약을 해지했고 연의씨는 해고됐다. 그는 서울중앙우체국 광고탑에서 80일간 고공농성을 했다. 해고자는 복직됐고, 고객센터가 재하도급을 주는 도급기사는 사라졌지만 비정규직 신세는 그대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이후 정규직화 발표가 유행처럼 번진다. 에스케이브로드밴드가 자회사를 만들어 비정규직 5200명을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41개 공공기관이 '새 정부 비정규직 대책회의'를 열고 정규직 전환에 들어갔다. 금융권과 민간기업을 포함하면 대상 인원이 7만명에 이른다.

"해마다 업체가 바뀌어 불안했는데, 고용안정 측면에서 반기는 분위기예요. 하지만 원청이 아니고 왜 자회사냐, 변하는 게 없으면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도 많아요."

에스케이가 '자회사 정규직화'에 이어 시급을 1만원으로 올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데 식대, 통신수당, 지역수당 등을 통상수당에 넣고, 내년 임금인상분까지 포함시켜 월급을 209만원(시급 1만원×209시간)으로 맞춘다는 내용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눈 가리고 아웅 하기다. 같은 일 하는 정규직 월급의 30% 받는 정규직이라니.

정부가 고용안정성이 높다는 이유로 비정규직으로 분류하지 않는 무기계약직. 97개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연봉은 정규직의 59%였고, 국민연금공단은 3분의 1 수준이었다. 매년 격차는 더 벌어졌다. 유통업계 무기계약직은 죄다 최저임금이고, 학교 무기계약직은 해고되기도 한다. 당사자들이 '짝퉁 정규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자회사 전환이 일부 고용안정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처우가 그대로라면 무슨 소용인가. 경총 김영배 부회장이 "정규직화 요구가 넘쳐나게 되면 산업현장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가 대통령에게 사회 양극화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깨갱' 하고 있지만, 정권의 힘이 빠진 후 자회사를 분할하거나 다시 외주화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서 당사자 대화가 중요하다. 정부와 기업은 적선하듯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노사 협상을 통해 ①고용불안 ②장시간 노동 ③저임금이라는 '비정규직 3대 굴레'를 없애는 정규직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감지덕지'할 게 아니라 대거 노조에 가입해 당사자의 힘을 키워야 한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1월22일 엘지유플러스 콜센터 '욕받이 부서'에서 일하던 홍수연님은 실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그는 엘지유플러스 자회사인 엘비휴넷 정규직이었다. 그가 가장 많이 받은 월급이 137만원이었다. 문재인표 정규직화가 홍수연님 같은 정규직이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