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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가 넘어야 할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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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AN FILM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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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와 부산시가 일단 합의했다. 이로써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상화가 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올해 영화제의 개최와 미래의 정상화를 위한 기초는 다져진 셈이다. 이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임 집행위원장이었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을 조직위원장으로 추대한 부분이다. 이것은 영화제 측이 건의한 조건이었고 부산시가 받아들인 형태로 합의된 사항이다.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영화제가 처음 만들어지던 시절부터 장장 15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를 진두지휘했으며 지금까지도 직간접적으로 영화제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영화계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인사다. 또한 현 정부의 문화융성위원장을 맡았을 정도로 정권의 신뢰도 얻고 있다. 한마디로 어떤 '진영'에 속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인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김동호 위원장이 복귀한다면 영화제 보이코트의 재고를 논의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사실 부산시의 한시직 공무원으로 반쯤 남은 임기를 지닌 서병수 시장으로서는 영화제 측의 마지막 카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옹색한 방법으로 전임 이용관 위원장을 압박하자 한국 영화계 전체는 물론 부산 시민들도 등을 돌리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산시가 자랑하는 최고의 문화행사인 부산국제영화제를 망치려고 애쓴 시장으로 영원히 기록되긴 했지만 최악의 상황 앞에서 가까스로 멈춘 셈이다.

물론 이제부터 넘어야 할 산은 한둘이 아니다. 이미 보이코트 선언을 한 한국 영화계는 물론, 이용관 위원장의 해임을 반대해 온 전 세계의 영화제 네트워크들과의 봉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약속한 대로 서병수 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떼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무리하게 진행된 고소고발 때문에 이뤄진, 영화제 집행인들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가. 상처입은 부산 시민들의 자존심은 또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등이다. 그나마 오랫동안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들어 온 이들이 계속 영화제를 진행할 수 있게 됐으니 많은 부분은 잘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치적 논리로 행정가가 창작과 배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확실하게 부산시가 영화제의 프로그램에 개입할 수 없다는 근거를 마련해 놓지 않는다면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시장과 정책이 바뀔 때마다 영화제의 존립 기반이 흔들려선 안된다. 영화를 사랑하는 부산 시민들도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다. 선거 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