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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Headshot

주문에 걸린 듯한 연기, 비밀은 주문 않는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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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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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 영화계를 뒤흔들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 나왔다. 제목은 <우리들>이다. 주인공은 최수인과 설혜인.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연기자가 된 어린이들이니까. 감독 윤가은은 단편영화 <손님>을 통해 아시아인 최초로 클레르몽페랑 영화제의 대상을 수상한 바 있고 연기 천재로 불리는 아역배우 김수안의 주연작 <콩나물>이라는 단편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경력의 소유자다. 그런 스펙이 중요한 게 아니다. 윤가은 감독은 첫 단편영화였던 <사루비아의 맛>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일관되게 어린이들의 세계를 다뤄왔으며 첫 장편인 <우리들>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화면이 밝아지면 피구를 하기 위해 '편을 먹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주인공 '선'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빙긋 웃으며 자기가 어느 편에 속하게 될까 기다리고 있던 선의 얼굴은 조금씩 어두워진다. 아무도 자신을 뽑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선택받지 못한 한 명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한쪽 편에 들어가게 된다. 그나마 "다른 아이와 바꾸면 안 될까?" 하는 소리나 들으며 말이다. 그렇게 외톨이로 지내던 선은 방학식 하는 날 전학 온 지아와 친구가 된다. 벗이 그리웠던 선은 지아에게 정성을 다하며 둘은 숙식을 함께할 정도로 단짝이 된다. 반짝이던 여름이 지나고, 개학을 하면서 지아는 선을 따돌리던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선은 다시 외톨이가 되어버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초등학교 4학년,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의 선은 인생의 서늘한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우리들>을 보고 나면 제일 먼저 궁금해지는 것은 '이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은 배우들은 어디서 나타났나' 하는 점이다. 일단 오디션부터 독특했다. 어린이 연기자들을 대여섯명씩 묶어 2시간에 걸친 연극 워크숍에 참여하게 했다. 그러면서 윤가은 감독은 그들에게 개인적 질문을 던졌다. '연기하는 능력'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그들의 '진심'으로 접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연출법 역시 비범했다. 연기자들에게 '대사와 지문'을 준 것이 아니라 찍을 장면의 상황을 설명하고 스스로 행동과 말을 만들어내게 했다. 영화라는 허구의 예술을 가장 진실에 가깝도록 유도하는 연출법이다. 그 결과물은 참으로 놀라웠다.

영화 <우리들>에는 신비로울 정도로 진짜인 연기가 담겨 있고 현실 속의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담담하지만 서늘하게 펼쳐진다. 결정적으로 한국영화 사상 주인공들의 감정이 이렇게도 높은 밀도로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영화는 지극히 드물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고 그들이 할 법한 고민만을 하고 있지만 모든 연령대의 관객들이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한다. 적어도 나는 지난 수십년간 이 정도의 한국영화를 만난 적이 없다.

[관련영상] "나도 친구를 사귀고 싶다" 우리들 감독·배우 인터뷰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