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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경제기적을 낳은 노동자 경영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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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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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지난 10일 국내 최초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선언했다. 노동자가 기업 및 기관의 이사가 되어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는 우리에게는 무척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상당히 보편화된 제도다.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가운데 18개국에서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중·북부 유럽 국가 대부분이 노동이사제를 채택하고 있는 반면 이 제도가 없는 곳은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영어권과 남유럽권 몇몇 국가뿐이다. 최근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아일랜드 등이 모두 노동이사제가 없는 나라다.

노동자 경영참여가 가장 모범적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에선 노동이사제를 '공동결정제'라고 부른다. 노동자 가운데 선출된 노동이사와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주주이사가 동수로 이사회를 구성하여 주요 안건을 공동결정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노동자가 이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노동자와 주주가 동등하게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한 1951년 '광산철강산업(Montan) 공동결정법'이 출발점이었다. 이 법은 첨예한 노사갈등을 잠재워 산업평화를 이루고,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린 놀라운 경제기적을 낳은 토대가 되었다. 공동결정제의 경제적 사회적 효과에 주목한 이들이 그 적용 대상을 모든 기업으로 확대하려 했고, 마침내 1976년 노사 동수의 이사회 구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공동결정법'이 의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법이 통과되는 과정이다. 이 '혁명적인' 법이 연방의회에서 압도적인 다수로 가결된 것이다. 찬성 389 대 반대 22였다. 보수당인 기민당(CDU)도,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우는 자민당(FDP)도 대부분 찬성표를 던졌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은 "입법기관을 선출하고 정부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시민'이 '경제시민'으로서는 노예로 강등되어서는 안 된다"는 자민당 원내대표 볼프강 미슈니크의 연설이었다. 진보-보수-자유주의자 모두를 아우르는 '거대한 합의'를 통해 독일은 노동자가 이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가 된 것이다.

독일에서 공동결정제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빌레펠트대학 베르너 아벨스하우저 교수는 공동결정제를 "독일 산업의 역동성과 경쟁력의 원천이자, 경제적 성공의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최고경영자들도 공동결정제의 장점을 대체로 인정한다. 연방화학산업경영자연맹의 베르너 베닝 회장은 "사회적 시장경제는 공동결정제를 중시한다"며, 공동결정제가 "독일의 민주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정치인들도 공동결정제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 제도를 독일이 이룬 "위대한 업적"이라고 극찬했고,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은 "독일은 기업에서 공동결정제를 필요로 하고, 노동의 일상에서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며 이 제도가 독일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독일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민주적인 기업이 강한 기업이고, 노동자를 중시해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공동결정제를 통해 기업 민주화, 노사협력, 산업평화를 이루었고, 그 바탕 위에서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실현할 수 있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노동이사제가 사용자의 횡포와 노동자의 저항이라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거대한 전환'의 신호탄이 되길 기대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