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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와 류현진 등판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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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니 좀 더 머물다 귀국하는 게 어때요?"

연구년을 맞아 프랑크푸르트학파로 잘 알려진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에 머물던 지난달 연구소의 한 독일인 교수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던진 말이다.

독일 체류 기간 내내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과 한반도 전쟁 위기가 독일 언론의 최대 이슈였다. 공영방송의 메인뉴스를 장식한 날이 허다했고, 주요 신문도 톱기사로 삼은 날이 많았다. 특히 9월 초엔 한반도 위기설이 절정에 달해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에서는 사설, 칼럼, 분석기사 등 무려 여덟 꼭지에 걸쳐 북핵 문제를 다룬 날도 있었고, <독일제2공영방송>(ZDF)의 간판 시사프로인 '마이브리트 일너'에서는 북핵 위기를 진단하는 프로그램을 긴급 편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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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한국 수구의 '안보 장사'에 어지간히 면역이 된 내게도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한국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오랜만에 포털에 들어갔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 거기엔 북한 핵도, 김정은과 트럼프의 막말도, 전쟁 위기도 없었다.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류현진 등판 일정"이었고, 어떤 여배우의 셋째 임신 소식이 검색어 2위에 걸려 있었다. 검색어 10위 안에 북핵이나 한반도 위기 관련 보도는 없었다.

한국인의 이런 놀라운 차분함도 독일 언론의 뉴스거리였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이 '이해할 수 없는 태연함'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보도했다. 만나는 독일 친구들마다 전쟁이 임박했다는데 어떻게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행동할 수 있느냐며 의아해했다. '촛불시위'를 알고 있는 몇몇 '지한파' 친구들은 질문 공세를 펼쳤다. 왜 거리에서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하는 데 익숙한 한국인들이 이 엄청난 위기의 상황에서 거리로 나서지 않느냐. 한국인의 '침묵'이 당장이라도 전쟁을 벌일 듯이 위협하는 트럼프에게 자칫 잘못된 사인을 주는 것이 아니냐.

모두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정말이지 왜 온 세계가 위기라고 느끼는 이 절박한 상황을 정작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당사자인 우리만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거리에서 외치지 않는 것인가. 거기엔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위기의 일상화이다. 수구들이 오랜 기간 일상적으로 위기를 과장해온 결과가 위기 불감증으로 나타난 것이다. '비상'이 '일상'이 되면 '정상'이 되는 법이다. 둘째, 뿌리 깊은 반공주의도 한 요인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중시하는 세력을 종북으로 악마화해온 역사가 이 땅의 평화운동을 위축시켰다. 셋째, 한국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동시대 최고 형태의 니힐리즘"(프랑코 베라르디)도 한몫을 한 듯하다. 전쟁 불감증은 세계 최고의 자살률에서 보듯 희망이 실종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절망감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위기다. 전쟁의 위기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야구선수의 등판 일정에 관심을 갖는 태도는 용기도, 달관도 아니다. 그것의 본질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느끼는 '오래된 무력감'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 무력감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가 동북아 정세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주도적인 독립변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엄혹한 동서냉전의 시대에 동방정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견인해낸 빌리 브란트의 비전과 용기에서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