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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트 정부와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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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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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독일' 하면 으레 '동방정책', '과거청산', '복지국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독일이 빌리 브란트 정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전후 서독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과는 전혀 다른 나라였다. 아데나워 정부의 '서방통합' 정책에 따라 '반공의 방어벽'을 자임한 냉전의 최전선 국가였고, 1960년대 중반까지도 나치 전력이 있는 키징거가 총리에 오른 사례에서 보듯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악취'(귄터 그라스)가 진동하는 나라였으며, '라인강의 기적'이 상징하듯 복지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한 나라였다. 이런 독일이 브란트 정부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탈바꿈한 것이다.

브란트는 동방정책으로 미-소 냉전을 주도적으로 허물면서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의 길을 열었고, 과감한 사회개혁으로 복지국가의 기틀을 놓았으며, 나치 과거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담대한 청산을 통해 독일을 과거청산의 모범국가로 만들었다. 브란트 정부하에서 독일은 '새로운 나라'로서 '제2의 건국'을 이룬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은 정확히 말하면 '브란트 이후의 독일'이다. 브란트는 정치 지도자의 용기와 비전이 한 국가를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독일 현대사의 거목이었다.

브란트 정부가 독일 역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1960년대 후반 전 유럽을 휩쓴 '68혁명'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정부였기 때문이다. 브란트 정부는 전후 정권교체를 이룬 최초의 사민당 정부로서 68혁명의 계승자라는 '혁명정부'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거대한 전환을 추동시킨 원동력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 점에서 브란트 정부와 닮았다. 첫째는 혁명정부라는 점이다. 브란트 정부가 '68혁명'의 후예라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적자이다. 두 정부가 모두 선거라는 민주적 형식을 거치기는 했지만, 두 정부를 탄생시킨 것은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혁명적 열망이었다. 둘째는 두 정부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과거 브란트 정부 앞에 놓인 문제, 즉 분단국가, 과거청산, 사회개혁, 권위주의의 문제는 그대로 오늘 문재인 정부가 마주한 문제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브란트 정부처럼 혁명정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거대한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 한국 현대사의 적폐를 청산할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역사의식과 변혁의지를 가지고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개혁해야 한다. 기존의 틀 안에서 새로운 정책을 수행하는 것을 넘어, 기존의 틀 자체를 부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한다. 냉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성장경제에서 분배경제로, 권위주의 사회에서 탈권위주의 사회로,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실체적 민주주의로, 발전이데올로기에서 행복담론으로, '청산 없는 역사'에서 철저한 '과거청산'으로 역사적 대전환을 이루는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3기 민주정부'나 '2기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시민혁명이 잉태한 '1기 혁명정부'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난 70년간 이 나라를 '기형국가'로 불구화한 강고한 기득권 체제를 혁파하는 것, 새로운 '정책'을 넘어 새로운 '체제'를 창출하는 것,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시대의 선봉장이 되는 것- 이것이 문재인 정부에 부여된 시대적 과제다. 독일 현대사가 브란트 정부 이전과 이후로 나뉘듯, 문재인 정부도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분수령이 되길 기대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