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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통일은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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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일은 우리에게는 개천절이지만, 독일에서는 '통일의 날'이다. 오늘, 한반도에서는 닫힌 하늘이 열렸고, 독일에서는 갈린 나라가 합쳐졌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는 누구보다도 독일 통일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독일 통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는 잘못된 것도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다'는 인식이다. '흡수통일론'은 우리가 만든 신화다.

독일에서는 '흡수통일'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통일', '재통일', '가입', '연방 확대' 등이 서독과 동독이 합쳐진 역사적 사건을 명명하는 데 흔히 쓰이는 개념이다. '흡수'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통일 25주년 기념사에서 나온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의 말이다. "통일은 평화혁명으로부터 생겨났습니다. 동독인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강력한 민중운동을 통해 억압자들에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독일 역사에서 처음으로 피억압자들의 열망이 실제로 성공하는 영예가 주어졌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독일 통일은 '평화혁명'의 결과라는 것, 이 혁명의 주역은 동독 민중이라는 것을 독일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화혁명은 1989년 10월9일 라이프치히에서 일어났다. 동독 사회주의통일당의 에리히 호네커는 예고된 '월요시위'에 대해 군대를 동원한 무력진압을 공언했고, 재야시민단체는 시위의 강행을 선언했다. 유혈충돌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에서 전세계 언론은 라이프치히에 집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예상을 깨고 평소의 두 배에 달하는 7만명의 시민이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에 놀란 군과 당국은 일촉즉발의 찰나에 발포를 포기하고 물러섰다. 동독 민중이 스탈린주의 정권을 무너뜨린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독재자를 굴복시킨 '무혈혁명'이었고, 동독 민중이 쟁취한 '동독혁명'이었다. 또한 독일 역사상 최초의 '성공한 혁명'이었다. 그 후의 과정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호네커는 사임했고, 재야인사들을 중심으로 원탁회의가 구성되어, 1990년 3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인민의회 선거를 치러냈다.

인민의회 선거는 '통일 선거'였다. 통일의 찬반과 완급이 선거의 핵심 쟁점이었다. 기민당 계열의 '독일연맹'은 서독 기본법 23조에 따른 신속한 통일을, 사민당은 기본법 146조에 의거한 점진적 통일을, 재야시민단체 선거연합인 '동맹 90'은 동독의 개혁과 존속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선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독일연맹'이 48%를 얻어 21.9%에 그친 사민당과 2.9%에 머문 '동맹 90'에 압승한 것이다. 이처럼 신속한 통일을 결정한 것은 서독의 압력이 아니라, 동독 주민들의 민주적인 의사였다.

문제는 헬무트 콜 총리가 동독혁명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통일의 전 과정을 주도한 것처럼 연출하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서독이 동독혁명에 적극적으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동독 주민들을 통일의 당당한 주역으로 받아들였다면, 통일독일은 생동감 넘치는 새로운 공화국으로 탄생했을 것이다. 동독인들이 생명을 걸고 일구어낸 통일의 결실을 서독 정치인들이 찬탈한 것, 이것이 통일 이후 동서독 갈등이 심화되고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근본원인이다.

독일 통일이 보여주듯이 통일도 결국 사람의 일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선전포고' 하듯 윽박지르는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한 태도로 북한 주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