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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유럽에서 동북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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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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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유럽을 다녀왔다. 독일의 남서부 오첸하우젠에서 열린 '유럽 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술 캠프는 오늘의 유럽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주었다. 난민위기와 브렉시트, 독일 헤게모니 등 현안들을 두루 살피고, 슈트라스부르크, 솅겐, 룩셈부르크 등 유럽통합의 현장도 직접 둘러볼 수 있었다. 통합된 유럽의 속살을 만져본 기분이었다.

유럽의 속살은 우리 언론에 비친 외적 이미지와는 달랐다. 몰려드는 난민, 그치지 않는 테러, 극우파의 선동, 브렉시트로 상징되는 '위기의 유럽'은 없었다. 난민과 이주민 문제는 상당히 진정되어 있었고, 극우파의 발호는 우려했던 수준은 아니었다. 테러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도 의외로 차분했다. 브렉시트가 유럽연합의 미래에 치명타를 입히리라고 보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유럽통합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민족국가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내려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실험은 일단 성공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유럽호는 난민, 테러, 국가부채라는 거대한 삼각파도에 부딪히면서도 부단히 전진하고 있었다.

유럽연합의 '순항'은 무엇보다도 유럽연합에 대한 유럽인들의 폭넓은 동의에 기반한다. 유럽인들은 자국 정부나 의회보다 유럽연합을 더 신뢰한다. 유럽연합에 대한 신뢰도가 정부나 의회에 대한 신뢰도보다 30%나 높다. 또한 유럽연합의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하는 이가 20% 정도 많고, 유럽연합에 더 많은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15%나 높다.

게다가 유럽인들은 이미 '하나의 유럽'에서 살고 있다. 국경통제 없는 자유통행에 합의한 '솅겐 협약'에 26개국이 참여하고 있고, 4억2천만명에 이르는 유럽인들이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그로스레기온 자르-로르-룩스'(Großregion SaarLorLux)에서 국경이 사라진 유럽의 달라진 일상을 충격적으로 경험했다. 그로스레기온은 독일의 자를란트, 프랑스의 로렌, 룩셈부르크, 벨기에의 왈로니아를 포괄하는 지역으로, 4개국 1100만명의 시민들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프랑스에서 독일로 일하러 가고, 오후엔 전차를 타고 독일에서 프랑스로 장보러 가며, 오전에 룩셈부르크 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독일 대학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 되었다.

사실 유럽연합은 그 많은 위기 담론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공한 실험이다. 전후 유럽연합을 구상한 동기를 상기해보라. 유럽연합은 더 이상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합의, 영구평화의 이념에서 탄생했다. 그것은 1,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전쟁의 대륙'이 역사에서 얻은 값비싼 교훈이었다. 오늘의 유럽을 보면 이런 평화의 이념은 이미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경이 사라지면 전쟁도 사라지는 법이다.

부러운 마음으로 하나 된 유럽을 체험하며 불안한 눈으로 분열된 아시아를 돌아본다. 문제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다. 특히 동북아가 문제다. 만약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 전쟁터는 유럽이 아니라 동북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 한국과 일본의 역사 논쟁, 중국과 한국의 '사드 갈등', 북한의 '핵정치' 등은 동북아가 얼마나 위태로운 지역인지를 새삼 환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지역에서 진지한 위기의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위기다. 왜 우리는 위기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유럽연합과 유사한 '동북아연합'을 꿈꾸지 않는가. 동북아의 '평화 세력'이 평화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