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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명,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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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STUDENTS
Shutterstock / hxdbz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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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 교육을 주제로 시민 대상 강연을 몇 차례 한 적이 있다. 독일과 한국의 교육을 비교하는 대목에서, 특히 우리 학생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과 부모들이 느끼는 분열된 감정을 얘기할 때면 으레 중년 여성 몇 분이 슬그머니 뒷문으로 빠져나가곤 했다. 한번은 강연이 끝나자 한 분이 다가왔다. "중간에 자리를 떠 미안합니다. 자꾸 눈물이 나서."

얼마 전엔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멘토 인터뷰'라는 걸 청해왔다. 독문과에 진학할 계획이라는 이 학생은 10개월간 베를린의 한 고등학교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경험을 털어놓았다. "독일 친구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어요. 어딜 가든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는 거예요. 처음엔 무척 당황했어요.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지요. 내가 아무 생각이 없다는 사실 말이에요."

부모의 하릴없는 눈물과 학생의 참담한 고백 앞에서 우리 교육의 파국적 현실을 다시금 절감했다. 부모들은 자식 교육 문제로 울음을 머금고 살고, 학생들은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 사유하는 능력마저 잃어버렸다. 교육의 파탄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사실 한국의 교육은 '교육'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그건 차라리 반교육에 가깝다. 본래 교육이란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아닌가. '교육하다'를 뜻하는 영어의 'educate'나 독일어의 'erziehen'이나 본뜻은 '밖으로 끌어낸다'는 의미다. 세상의 온갖 지식을 '안으로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개인의 재능을 이끌어내는 것이 교육이다. 죽은 지식을 우격다짐으로 머릿속에 채워넣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적 정신에 대한 폭력이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인간적 기품과 소양을 기르는 곳이다. 오로지 '학습'에만 목을 맬 뿐, 정작 교육의 본령인 인간적 품성을 키우는 데 한국처럼 소홀한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독일 교육은 한국 교육과 대척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독일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등수로 줄 세우지 않는다. 아예 석차라는 것 자체가 없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교육의 기본정신이기에 부진한 학생의 첫 번째 도우미는 항상 동료 학생이다. 다양한 차이가 있을 뿐 획일적인 우열이 없으며, 다채로운 개성이 있을 뿐 일등도 꼴찌도 없다. 학생은 학교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부모는 학교 교육에 만족한다.

독일에서 지식교육 못지않게 비중을 두는 것은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이다. 성교육은 강한 자아를 길러주는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중시된다. 강한 자아를 가진 개인만이 불의한 권위에 쉬이 굴종하지 않는 민주시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교육은 타인과의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과 사회적 정의를 혜량하는 안목을 길러주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생태교육은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혜와 미래의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을 길러준다. 다시 말해 성교육은 자신과의 관계를, 정치교육은 타인과의 관계를, 생태교육은 자연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맺는 지혜와 안목을 길러주는 것이다.

한국 학교에는 지식교육만 있을 뿐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이 없다. 한 인간이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교육은 방기하고 있다.

지식의 습득만을 절대시하는 '학습기계'가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최고의 학습기계는 최악의 괴물이 될 위험성이 높다. 우병우, 진경준, 홍만표, 나향욱 - 한국 교육이 키워낸 최우등 '괴물들'의 적나라한 비루함은 오늘 우리에게 교육혁명의 절박함을 증언하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