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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덫이 된 공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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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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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공영방송에 대해 보도통제를 시도하고, 인사에까지 개입한 사실이 폭로되어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군사독재 시대의 망령이 막후에서 여전히 출몰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할 따름이다.

이번 '신판 보도지침' 사태가 깨우쳐준 것은 공영방송이 아직도 정권의 통제 아래에 있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조건이자 생명이다. 언론 자유 없이 민주주의는 없으며, 언론이 죽으면, 민주주의도 죽는다. 특히 현대의 대중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언론민주주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보도통제, 인사개입 사건은 헌법이 규정한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위헌적인 사건이다. 정상적인 민주국가라면 공영방송의 보도를 통제한 정치인은 구속되고, 공영방송의 인사에 개입한 대통령은 탄핵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외적 침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내적 잠식이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파시즘보다 민주주의 속에서의 파시즘이 더 위험한" 것이다.

공영방송의 진정한 문제는 외부 권력의 비민주적 통제보다, 민주주의를 내적으로 갉아먹는 일상적인 행태에 있다. 비판적인 보도에 대한 은폐와 조작보다 더 위험한 것은 모든 정치적인 것, 모든 사회적인 것을 방송의 영상에서 소거해버린 행태다. 이 탈정치의 공간에서 사회적 진실은 증발하고, 거짓 행복의 가상만이 넘쳐난다.

그 결과 '헬 조선'의 처참한 현실은 공영방송의 화면에 아예 나타나지 않으며, 이런 현실을 타개할 사회적 논의가 공영방송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 사회적 현안이 떠오를 때마다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보도가 뒤따르고,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방송에 출연해 쟁점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독일의 공영방송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문제에 대해 박근혜, 박원순, 문재인, 안철수 등 주요 정치인들이 수시로 방송에 나와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1986년 독일 헌법재판소는 공영방송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판시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독일 공영방송의 기본지침이 되고 있다. 한국 공영방송의 책무도 이와 다를 수 없다.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영방송은 비판적인 성찰능력, 역사의식, 문화적 감수성을 지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 기여해야 하고, 사회적 현실과 역사적 진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공영방송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특히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은 국민을 어리석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진실을 축소, 왜곡하는 보도를 일삼고 있다.

우리는 미디어크라시(mediacracy)의 시대, 언론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언론에 의한 정치의 식민화"(토마스 마이어)가 운위될 정도로 언론의 영향력이 강력한 시대다. 특히 한국처럼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위협받는 사회에서 공영방송의 책무는 실로 막중하다. 공영방송은 민주시민 양성, 광범위한 여론 형성, 권력 비판의 기능을 통해 '민주주의의 학교'가 되어야 한다.

불행히도 오늘날 한국의 공영방송은 민주주의의 학교는커녕, 오히려 민주주의의 덫이 되었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굴종하면서, 저질 프로그램으로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시민을 권위주의 국가의 신민 정도로 깔보고 있다. 공영방송이 쳐놓은 이 우민화의 덫에 걸려 한국 민주주의는 수구 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헬 조선'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