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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대통령' 시대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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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에 저는 이대 한국여성연구원에서 열린 국제 워크숍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퀴어 페미니즘으로 제기하는 쟁점들"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했습니다. 저의 발표는 문재인에서 시작해 보수 개신교계와 TERF의 '의도치 않은(?)' 조우에 대해 짚고, 페미니즘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을 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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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두 개의 모순된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인데요, 하나는 '최초'로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을 한 사람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초'로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동성애에 반대합니다"라는 말을 한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의 이런 모순은 이 정부에서 벌어질 정치와 페미니즘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시대의 모순이기도 하겠구요.

'페미니스트 선언'이 세상의 불평등과 착취 구조에 관한 총체적인 인식론이 되지 못하고, 단지 젠더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인정받는 주체되기'에만 집착하게 될 때, 몇 개의 가시적인 성과는 드러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나 허약한 모래 위의 집이 됩니다.

최근 비정규직 운운하며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차별금지 항목에서 '성적지향' 빼고 '고용형태'를 추가하자고 한 김경진 위원의 사례에서처럼, 이미 보수는 경계짓기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토론회에서는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를 외치는 이들이 토론회장을 난입하고 무산시켰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양성평등에 관심이 있느냐, 물론 아닙니다. 이들의 구호에서 양성평등은 성평등을 반대하기 위해 동원되었을 뿐. 이 행사를 보도한 기사의 댓글에는 "성평등이 되면 트랜스젠더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고 어쩌고"하는 내용, "성전환 수술을 세금으로 대줘야 하나", "수술하고 호르몬 맞고 자궁이식한다고 남자가 여자 되나", "정신병은 치료의 대상이지 그대로 살라고 법으로 인정해줄 대상은 아니지 않나" 하는 등의 논리가 등장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문장들이죠?
그러나 이것은 보수 개신교계에서 조직된 댓글입니다.

저는 다른 소수자에 대한 비하와 배제의 언어가 담긴 주장들은 더 이상 미러링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른 이들을 공격하고 모욕을 주기 위한 "부랄리즘"이니 "자지패치"니 하는 용어들, "남페미 챙기느라 부랄 쓰다듬는다"는 표현 등도 마찬가지구요. 그런 식의 운동은 오히려 운동의 장을 좁혀나가고 더 많은 오해와 공격을 불러올 뿐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상시민'의 경계 구분짓기가 본격적으로 강화될 것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이전의 다른 보수 정권에서보다 더욱, 합리성과 부드러운 가부장, 이성애 가족주의의 명분을 쓰고, '다른 안보'의 기치를 걸고, 국뽕과 팬심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 펼쳐지겠죠.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격이 과연 '여성' 전반에 대한 영향과는 무관할 수 있을까요? 남성 페미니스트에게 엘라이로만 남으라고 하는 요구가 과연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에 도움이 될까요?

적어도 페미니즘에서 우리는 모두가 '당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대신 함부로 다른 이의 경험을 전유하거나 대변하려 하지 않으면서, 또한 다른 이의 경험을 내 경험과 생각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고 단정짓고 낙인찍지 않으면서요.

페미니스트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찰하는 것입니다. 페미니즘은, 단지 젠더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인식론이고 따라서 세상의 모든 착취와 억압에 대해 이야기하고 행동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