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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시민혁명을 두려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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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ANANMEN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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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몇몇 중국 변호사와 활동가들이 '외세', 즉 미국과 공모하여 '국가 전복'을 획책했다는 명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과 아랍의 봄과 같은 '색깔 혁명'(시민혁명)으로 중국의 정권 교체를 유도하는 것이 미국의 궁극적 목표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유죄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TV에 나와 국가를 제소한 것이 서구 사상의 유해한 영향에 문을 연 것이라고 고백한 사람도 있는데,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공산당 지도부는 다당제 선거나 사법부 독립 등의 서구적 관례를 주장하는 것 역시 자신들의 집권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본다.

메시지를 대내적으로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 중국 최고인민검찰원은 재판과 함께 서구가 민주주의를 주창하려 했던 전세계에서 대혼란과 폭력, 불안이 일어나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어 자막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제공했다) 중국이 누리는 안정은 일당제 때문이라는 걸 중국 시청자들에게 전한 것이다. 이런 영상은 반응이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퓨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중국인 79%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외국의 영향'으로부터 지켜져야 한다고 대답했다.

중국의 일부 고위층은 중국의 정권 교체나 '색깔 혁명' 조장이 미국의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렇지만 미국 정치인들은 중국의 통치 체제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면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고 그러므로 실패할 운명이라는 이념적 기대를 갖고 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이에 대해 한 점 의구심도 없다.

케빈 러드 전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는 전세계 최대의 경제 규모를 가진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서 이것이 영원한 장애물이라 말한 바 있다. 그는 하바드 벨퍼 센터 보고서에서 중국은 '미국은 중국이 자유로운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 정권의 근본적 정치적 정당성을 받아들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중국은 결론 내렸다고 썼다. 푸잉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회 주임은 중국 측 입장을 밝힌다. "서구는 우리에게 고르바초프가 있지 않는 한 우리가 개혁하고 있다는 걸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작년에 베이징에서 내게 한 말이다.

현재 미국의 주요 정치인들 중 중국의 통치 시스템이(민주주의에도 단점은 있지만) 정당할 뿐 아니라 최근 30년 동안 빈곤을 크게 줄이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올리는 등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면이 존경스럽다고 공공연히 말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는 중-미 관계의 모든 면의 뒤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타당성의 대칭'에 대한 인정이 없는 한, 앞으로도 어떤 새로운 관계에도 냉전의 분위기가 감돌 수 밖에 없다. 더 충만한 관계를 가로막고 모든 계획에 의심을 갖게 한다. 체제 전복을 두려워하는 중국은 변호사와 인권 활동가를 잡아들인다. 그러면 중국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압제적이고 이를 뒤집어야 한다는 서구의 시각은 강화될 뿐이다.

중국이 이것을 위협으로 보는 한, 중국은 '서구의 가치'를 계속 비난하며 이러한 적대적 공생의 파괴적 순환을 계속 키울 것이다. 중국은 기본적 정당성 인정에 뿌리에 내린 비판은 덜 방어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예를 들면 검열은 덩샤오핑 이래 개혁을 이끌어 온 '실사구시' 실용주의를 지연시킨다는 것 같은 비판은 그들의 통치 체제를 전복하려는 계략이나 음모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미국의 총기 권리, 도시의 인종간 다툼, 높은 재소자 숫자를 툭하면 비판한다. 미국인들은 유럽이 이민자들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을 툭하면 비판한다. 이런 비판은 받는 쪽에서는 언제나 짜증이 나지만, 상대의 정치 체제의 기반에 대한 공격으로 보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comrade deng xiaoping
연안의 정유소를 시찰하고 있는 덩샤오핑을 그린 1985년 삽화

레닌주의적 단속인가 유교적 통치인가?

중국의 이른바 '시민사회'에 대한 탄압은 무엇을 의미할까? 옛 소련에서 부패한 특권 계급이 계속 인민들을 착취하기 위해 어떠한 반대도 짓누르는 레닌주의적 충동인 것인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오랫동안 이끌고 있는 막강한 당 간부 등을 대상으로 한 부패와의 전쟁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더 심오한, 중앙 정부와 사회, 통치자에 대한 수천 년에 걸친 중국의 역사적 생각에 뿌리내린 것이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학자 판웨이는 이것을 중국의 '제도적 문명'이라고 부른다. 이것의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 것은 압제를 정당화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는 한 사회의 유기적 진화 과정 바깥에서 변화를 주입시킬 수 있다는 독선적 환상을 깨는 것이다.

가정의 식탁에서, 매체에서, 종교 시설과 입법부에서 수십 년간 감정적 토론을 벌인 끝에야 진보적 미국 문화는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이제 오바마 정권은 모든 공립 학교에 트랜스젠더 화장실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현대의 중국과 그런 경험이 없는 훨씬 덜 진보적인 사회들이 당장 이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인권 침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나? 자유로운 시민사회의 서구적 가치는 모두를 위한 건 아니다. 그리고 보편적이라고 간주된다 해도, 역사의 발전은 모든 곳에서 같은 속도로, 혹은 같은 길을 거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변화는 직접 일으켜야 확립된다.

공산당은 최근 몇 십 년 간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주었다. 심지어 서구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아도 공산당은 중국 인구 대부분의 충성을 확보한 것으로 나온다. 불만을 품은 대중의 반란이 일어나기에 적합한 곳은 절대 아니다. 2013년의 퓨리서치 연구에 의하면 중국인 80% 이상은 중국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같은 물음에 미국인들은 31%만이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2015년의 조사에서는 공직자 부패와 오염 등 큰 우려가 있었음에도 중국인 77%가 5년 전에 비해 지금이 더 낫다고 대답했다. 이런 수치를 보면 적어도 지금은 중국의 공산당은 20세기 초의 이탈리아 정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성취했음을 보여준다.

하바드의 조셉 나이가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란 개념을 주창하기 훨씬 전에 그람시는 이와 비슷한 두 종류의 헤게모니를 제시했다. 그람시는 국가의 헤게모니는 힘, 즉 하드 파워에 기반한다고 보았다. 국가는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고 유지하기 위해 폭력의 수단을 독점해야 한다. 그러나 시민사회, 즉 마음의 헤게모니는 합의에 기반해야 한다. 그람시는 세계관에 대한 대중의 충성을 얻어야 하며 강제로는 할 수 없다고 보았다. 대중이 정부의 서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그 서사는 정당하지 않다. 그람시의 이론에 의하면 소프트 파워가 하드 파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람시는 자신이 창당한 이탈리아 공산당을 국가가 아닌 시민사회의 일부로 보았다. 그는 시민사회가 정당의 서사에 수긍하고 나서야 국가 권력을 쥘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에서, 공산당의 당국가 체제는 두 가지 헤게모니를 합쳐 권력을 유지하는 데 강제와 합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경제 성장이 느려지며 합의가 불안해진다고 당 지도부가 느끼면 이들은 주저없이 검경의 하드 파워를 사용해 '불순분자들'에게 충성을 강제한다.

시민사회와 국가의 분열은 중국과 서구에서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대립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봉건적 다원주의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중국은 늘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된 국가였다는 것이 학계의 주류 의견이다.

그래서 중국의 통치 철학은 결코 제도적 분권을 추구한 적이 없다. 심지어 시진핑으로 하여금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하게 만든 영감이 됐다는 진나라(BC 221~206)의 법가 사상도 통합 국가의 행정 능력 강화를 위해 사용되었다. 중국의 '법치(rule by law)'는 개인에게 독립된 사법부에 개인이 소송을 통해 권력 남용을 바로잡게 해주는 서구의 '법치(rule of law)'와 다르다. 개인의 유교적 윤리가 흔들릴 때 통치자와 시민 공히 국가가 정한 법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다른 헤게모니나 경쟁하는 서사가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의 당국가는 전통적 견해를 유지하고 독립적 시민사회나 사법부가 나타나는 것을 막으려 한다 (최근 개혁에서 부패한 지역 당 간부의 영향을 막기 위해 지방 법원을 만들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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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주석이 2015년 전승절 행사에 참가하는 모습

그리하여 비록 국가 통제를 벗어난 삶의 자율성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국가는 대중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종의 체계를 만들었다. 싱가포르의 학자 정 용니앤이 지적한 대로, 중국에서 시민영역의 발달은 당과 시민사회를 모두를 변모시킨 '정당화와 지배가 동시에 일어나는 과정'이다. 정은 공산당이 "다른 사회적 세력의 이익을 고려하고 이를 자신의 이익과 연결함으로써 스스로 변모했다"고 말한다.

'합의'가 정당성을 보장하는 서구와는 달리, 전통 유교의 관점에서 정당성은 지도자의 '미덕'에서 나온다. 논어에서 공자는 계급 질서 안에서의 상호간의 의무를 말한다. "만약 옳은 사람이라면 명령을 하지 않아도 복종한다. 그러나 옳지 않은 사람이라면 명령을 해도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한 이러한 반응성의 역학은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실용적으로 정책을 바꿔가며 살아남은 공산당의 '조정된 권위주의'와 '포괄하는 헤게모니'의 핵심이다. 정책은 변하지만 당은 과거의 황제 제도처럼 바뀌지 않는다. 공산당은 마오쩌둥이 처음 만들었던 농민 단체에서 8천만 명이 넘는 당원을 지닌 오늘날의 넓은 조직이 되기까지 끊임없이 변해왔다. 당원 중에는 불교도인 억만 장자도 있다.

그 결과는 공산당과 인민이 서로 의존하는 경계가 모호한 권력이다. 공산당은 사용자들이 형태를 정하는 도구다. 공산당의 유용성은 할 일을 해내고 사회적 우려에 반응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러지 못한다면 합의가 부식되고 공산당의 권력을 굳히는 사상적 헤게모니가 풀어질 것이다.

이 모호한 경계는 계속 변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계속해서 변하는 사회의 힘의 균형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가 스튜디오를 짓는데 필요한 허가를 당국으로부터 받았다가 나중에 그 당국이 불도저로 그 스튜디오를 밀어버리는 일이 생긴다. 그는 어느날에는 감옥에 갇혀 구타당하고 가택연금에 처해지고 여권을 압수당했는데 그 이후에는 여권을 돌려받고 유럽의 유명 전시회에 매우 정치적인 작품을 전시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는다. 2015년 3월, 중국의 유튜브라고 할 수 있는 유쿠에 한 언론인이 만든 동영상이 올라갔다.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중국의 환경 오염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영상이 너무 널리 퍼지자 당국은 이를 검열했다. 환경을 정화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참혹한 환경에 대한 비난을 받을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뒤늦은 시민사회의 탄생

이러한 중국 권력 체제의 모호함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서구의 영향을 받은 시민사회를 위한 자율적 영역이 부상하면서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안정과 변화 사이에서 오랫동안 균형을 유지해 왔던 시스템은 유례없는 도전을 받고 있다.

2,000년 이상 제도적 문명을 유지했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이 다른 것은 누구나 통치자와 똑같이 수준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정보화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소련 공산당이 맞이한 운명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공산당 최고위층의 불안은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잘못된 은유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다.

시진핑과 그의 동지들은 소련 공산당이 고르바체프의 '글라스노스트', 즉 투명한 정보 정책 때문에 몰락했다고 본다. 그리하여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을 통제해서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사실 소련 공산당이 몰락한 것은 중국과 비슷하게 전반적인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서사를 만들어서 현실을 가리려 했기 때문이었다. 글라스노스트로 허구가 사라지자 그 자리엔 남은 것이 없었다.

중국 공산당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물론 (서구의 동화와는 달리) 중국의 황제는 벌거벗지 않았다. 공산당은 지난 30년 동안 현실을 왜곡하는 대신 실사구시라는 실용적 원칙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해냈다. 시민사회의 활동가들과 소셜 미디어로 인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실수를 숨길 게 아니라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이 모두가 모든 걸 아는 정보화 시대에 정당성을 얻는 방법이다. 계급적 통제라는 낡은 시스템은 한때는 권위주의적 서사를 강제할 수 있었지만, 이젠 정보의 민주화로 그런 시절은 끝났다.

부르주아가 유럽에서 절대 왕권에 대한 시민 사회 공간을 만들었듯, 오늘날의 여성들이 이슬람권에서 신정과 가부장제에 대한 민주적 공공 영역을 만들었듯, 현재 중국에서는 소셜 네트워크와 미디어가 시민사회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오래된 문명에게 있어 이것은 새로우며 전례가 없는 일이다. 중국이 역사를 거스를지의 여부는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통치와 아래에서 새로 부상하는 시민사회 사이의 균형을 잡는 능력에 달려 있다. 서구는 중국이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지, 서구의 유산을 중국의 미래에 투사하면 안된다.

* 이 글은 월드포스트에 게재된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