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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의 교육권을 거부하는 사회 |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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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장애인부모연대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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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일 오후 7시 30분,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모임의 성격은 "토론회"이지만, 사실상 상대방의 주장을 인내심 있게 경청하고 그 의견에 대하여 동조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합리적 토론은 보기 어려웠다. 우선 진정한 토론은 그 토론을 하는 이들 사이에 그 어떤 "권력의 불균형"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미 특수학교설립을 반대하는 이들은 "권력자"로서 군림하고 있고, 반면 설립을 찬성하는 이들은 그들의 "시혜"를 구걸해야 하는 "시혜대상자"로서 자리 잡고 있다. 토론의 의미는 "설득의 예술"을 통하여 특정한 주제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로 나아가는데 있다. 따라서 토론에 나온 사람들은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경청과 그 주장이 담고 있는 강점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또는 문제점/약점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반론을 펼침으로써 양쪽 모두 특정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보다 확장하는 것이 이러한 "토론회"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설립의 반대 이유가 경제적 이유이든 또는 여타의 다른 이유에서든, 학교설립을 반대하는 입장의 정당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의 생명과 연관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교육권/학습권과 연결된 "인권"의 문제이며, 따라서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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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서 우선 물어야 할 것은 "토론의 주제"에 관한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토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떠한 주제는 토론을 거친 투표를 통해 그 의미가 결정해서는 안 되는 주제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의 문제이다. "모든" 인간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인간"에서 "모든"은, 추상적 지칭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을 지칭한다. 성별, 계층, 인종, 장애 여부, 나이, 종교, 성적 지향 등 인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아우르는 "모든" 인간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성별, 인종, 계층, 장애여부 등에 따라서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해 온 "배제의 역사"이기도 하며, 그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바로잡는 의미의 "포괄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국의 역사에서 한때는 "교육권/학습권"을 거부당하고 배제되어왔던 여성이나 상민들이 이제 공공교육을 받고 있다. 육체적/정신적 장애를 지닌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교육권/학습권"을 지니고 있다는 것, 따라서 필요한 곳에 그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짓는 것은 토론을 통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학교"란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혐오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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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우리가 차용하는 이 "장애인"이라는 표지가 참으로 문제가 많다. 편의상 만들어놓은 것 같은 호칭들은 "중성적"이 아니다. 그 호칭들은 인간의 의식 속에 어떤 특정한 가치를 주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1996년에는 공식문서들에서 "불법 이민자(clandestins; illegal)"라는 호칭을 "미등록이민자 (san-papiers; un-documented)로 대체할 것을 촉구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호칭의 대체가 일어나기 시작하게 되었다. "불법"이라는 말은 이미 그 대상을 사회적 위협이 되는 대상인 "범죄자"로 낙인 찍게 하는 가치를 주입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나는 "장애인"이라는 호칭과 범주가 지닌 지독한 한계와 위험성을 본다. 소위 "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는 다른 "별종인간군"이며, 뭔가 열등한 존재로서 "비정상인"이며 따라서 "정상인"에게 뭔가 해를 끼치는 존재라는 시선과 가치를 "자연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영어로 장애인(disabled)에 대하여 "differently-abled" 또는 "physically (mentally) challenged" 등 다양한 대안적 호칭이 등장하게 된 이유이다. 한국어로도 이러한 대안 언어들이 등장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언어들이 비록 '공식화'되지 못한다 해도, 이러한 대언 언어들을 통해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바로잡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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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시혜"로 보장받아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정의"에 관한 문제이다. 장애인들의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권/학습권을 보장받기 위해 그 권리를 거부하는 이들 앞에서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동정과 시혜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지점에서 정치적 지도력이 단호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이 문제에서는 "의견수렴"이 민주적인 것이 아니다. 어느 한 그룹에 속한 이들의 학습권/교육권의 문제는 "다수결"에 의하여 결정되는 주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별인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단호한 행동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확산하고 제도화하는 민주적 지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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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을 위한 주민토론회'에서 장애아동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