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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존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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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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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월 15일 자 JTBC 뉴스에는 대통령에 대한 여러 가지 뉴스가 등장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였던 '기간제교사'의 순직 인정을 지시한 대통령, 그리고 노후 화력발전소 '중단' 지시를 하면서 한 초등학교에서 미세먼지 대처에 대한 수업을 참관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나왔다. 이러한 소식들은 참으로 반가운 뉴스들이다.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이, 이렇게 많은 문제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새로운 방향으로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이 뉴스에서 내게 신선하게 다가온 것 중의 하나는 대통령이 초등학생과 대화하는 어투였다. 대통령은 미세먼지에 대한 경험을 열심히 이야기하는 한 학생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그 학생에게 "미세먼지 걱정 때문에 바깥에서 놀기도 걱정되고, 바깥에서 수업도 걱정되고 그렇죠. 그 이야기를 하는 거죠?"라고 응답하고 있었다.


2.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대통령'이 작은 초등학생에게 그 흔한 '반말'이 아닌 '존댓말'을 하면서 그 아이와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몸짓, 눈빛, 그리고 언어를 전하고 있다는 것 - 내게는 참으로 신선한,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러한 '평등성'의 모습이 한국사회에서는 얼마나 보기 힘든 모습인가. 반말과 존댓말이 있는 한국어는 '반말'이 친근성의 표현으로가 아니라, '위계주의적 관계'를 강요하는 '언어적 폭력'의 기능을 하는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알지도 못하는 '어른'이 단지 '아이'라는 이유 때문에 얼마나 다양한 폭력을 행사하는가는 이러한 문제에 예민한 아이들만이 인식하고 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이는 물론 다른 아이들에게도 글이나 말에서 '반말' 쓰는 것을 의도적으로 극소화해왔다.


3.

주간잡지 〈시사IN〉에 "아이는 '작은 인간'이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도 밝혔고, 다양한 다른 글들에서도 나는 한국사회에서 '아이'란 '절대적 희생자'로서 다층적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 왔었다. '아이'를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고유성을 지닌 평등한 존재로 대하지 않는 사회에 민주주의가 성숙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나는 본다.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그 제도적 실천이야말로 민주주의적 성숙도의 측정기준이기 때문이다.


4.

한국의 모든 '아이'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대통령의 존댓말 속에 담긴 존중과 평등적 시선을 받으며 자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대통령의 존댓말--이 '사건'은 새로운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중요한 민주주의적 행위라고 나는 본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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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찾은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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